中서 수요 늘자… 정유·석화업체, PX(파라자일렌·석유서 얻어지는 기초원료) 생산 올인

국내 정유·석유화학 기업들이 너도나도 파라자일렌(para-xylene· PX)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이 연산(年産) 76만t에서 278만t으로 늘리는 투자를 추진하는 등 국내 6개사는 현재 649만t인 한 해 PX 생산 능력을 내년 말까지 1051만t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지난달부터 가동을 시작한 현대오일뱅크의 연산 85만t 설비를 감안하면 불과 2년 사이에 국내 기업들의 생산 규모가 2배 수준으로 늘어나는 것이다.

PX는 원유 정제 과정에서 나오는 석유 제품인 나프타에서 얻어지는 기초원료다. 중간 제품인 TPA(고순도테레프탈산)를 거쳐 합성섬유와 페트(PET)병, 필름 등으로 만들어진다. 석유화학 업체보다는 원료인 나프타를 확보하는 데 유리한 정유사가 주로 생산한다.

지난 1일 정부가 투자 활성화 대책을 발표하면서 업계의 PX 투자는 더 탄력을 받았다. 에쓰오일은 공장 부지 확보에 숨통이 틔어 향후 8조원에 달하는 신규 투자의 상당 부분을 PX 증설에 집중할 것으로 알려졌다. GS칼텍스와 SK이노베이션의 자회사인 SK종합화학도 정부의 공정거래법 개정 방침에 따라 외국 업체와 PX 설비 합작투자에 속도를 낼 수 있게 됐다.

◇중국, 인도 등 섬유 소비 확대

PX는 중국, 인도 등 신흥시장을 중심으로 섬유 소비가 늘어나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최종 제품 시장이 커지면서 중국이 최근 들어 TPA 공장 증설에 나섰고, 이 때문에 TPA의 원료인 PX 공급이 부족해진 것이다. 중국은 연 2400만t 수준인 TPA 생산 규모를 내년까지 연 4400만t으로 늘릴 계획을 갖고 있다.

김평중 한국석유화학협회 연구조사본부장은 "TPA를 2000만t 생산하려면, PX는 1400만t가량이 필요하다"며 "이 물량을 먼저 확보하기 위해 앞다퉈 뛰어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석유화학 제품과는 달리 중국이 단시일 내에 설비를 확대하기 어려운 점도 국내 기업들이 투자를 확대하는 배경이다. 김 본부장은 "PX 설비는 100만t 규모를 갖추는 데 1조(兆)원이 드는 데다 원료를 확보하기 위해선 원유 정제 설비를 늘려야 해 금방 증설하기가 어렵다"며 "한국은 정제 역량이 있기 때문에 투자가 활발한 것"이라고 말했다.

◇해외 업체와 함께 시장 공략

정유 부문 수익성 악화에 시달려온 국내 업체들과 최대 수요처인 중국 내 현지 투자에 부담을 가진 외국 기업들의 이해관계도 맞아떨어졌다.

SK종합화학은 일본 JX에너지, GS칼텍스는 일본 쇼와셸·다이요오일과 합작해 증설을 추진 중이고, 현대오일뱅크는 일본 코스모화학과 함께 투자했다. 에쓰오일은 사우디 아람코가 대주주이고, 삼성토탈도 삼성과 프랑스 토탈의 합작사다.

정유 업계 관계자는 "수익성이 떨어지는 정유 부문의 비중을 점점 줄이면서 정유사가 가장 잘할 수 있고 수요가 확대되는 분야라는 점에서 PX가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 공급 과잉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아직은 수요가 충분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신흥시장에서 섬유 소비가 폭발하고 있지만 면화 등 천연섬유는 경작지 부족과 기후 문제 때문에 증산에 어려움이 있다. 대체재인 합성섬유의 수요가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업계에선 향후 5년 동안 PX 수요가 연간 7% 이상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과거 국내에서 호황을 누리던 TPA가 중국의 대규모 증설로 실적 악화에 빠졌던 전철(前轍)은 참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산업연구원 심우석 연구원은 "셰일가스가 확대되면서 북미 지역에서 PX 생산이 줄어드는 추세는 국내 업계엔 긍정적"이라며 "앞으로 중국 PX 업체의 증설 일정 등이 수급 상황을 결정짓는 관건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파라자일렌(para-xylene·PX)

석유 제품인 나프타에서 얻어지는 기초원료. 중간 제품을 거쳐 합성섬유와 페트(PET)병, 필름 등으로 만들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