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긴 신선한 작품 춤추는 '물좋은 미술시장'

9일 낮(현지 시각) 뉴욕 5번가에서 택시를 타고 "랜달섬(Randall's Island)으로 가자"고 했더니, 기사는 몇 번이나 "거기가 어디냐"고 되물었다. 맨해튼 동쪽 이스트강(江)을 낀 랜달섬은 19세기엔 빈민원과 소년원이 있었고, 요즘은 간간이 서커스나 운동 경기가 열리는 공원이다. 뉴요커들도 잘 모르는 이 섬이 세계 최첨단 현대미술의 경연장으로 탈바꿈했다. 지난해 창립 10주년을 기념해 뉴욕에 진출한 런던의 프리즈(Frieze) 아트페어가 13일까지 이곳에서 행사를 여는 것이다.

◇'파격'과 '실험'의 아트페어

전시장 북쪽 입구를 장식한 24.3m짜리 거대한 강아지는 폴 매카시의 '풍선 개(Balloon Dog)'. 미국 미술계의 '악동'으로 불리는 이 작가는 같은 모양의 제프 쿤스 작품을 훨씬 크게 부풀리고, 재질을 스테인리스에서 고무로 바꿔 패러디했다. 상업주의에 대한 이 냉소는 프리즈 아트페어의 '이념'이기도 하다.

프리즈 아트페어는 '실험정신'과 동의어다. 2003년 영국 현대미술 전문잡지 '프리즈' 발행인들이 만든 이 아트페어는 실험성 강한 생존 작가 작품을 주로 선보였다. 이 덕에 10년 만에 '세계에서 손꼽히는 현대미술 시장'으로 우뚝 섰다.

◇캔버스천으로 지은 전시장

이 아트페어에서는 전시장도 거대한 '설치미술 작품'. 미국 건축가 그룹 SO-IL은 방수 처리한 캔버스천으로 2만3225㎡ 규모의 흰색 천막을 지었다. 아트페어 기간 동안만 설치됐다 페어가 끝나면 철거되는 가건물이다. 아만다 샤프 프리즈 디렉터는 "아트페어란 문화 이벤트다. 특색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뉴요커들조차 모르는 이 섬을 택한 건 우리에겐 '모험'이었지만 유연하게, 우리가 원하는 모양으로 전시장을 지을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고 했다.

결과는 대성공. 기존 전시장의 '무거움'에 질린 뉴요커들은 '천막 전시장'에 열광했다. 프리즈 뉴욕 측은 "워낙 관람객 반응이 좋아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같은 건축가를 섭외해 같은 형태로 건물을 지었다"고 밝혔다. 아만다 샤프 디렉터는 "많은 관객들이 페리를 타고 와서 이 독특한 공간을 즐기고 간다"고 했다.

◇40여 개국서 180여 개 화랑 참여

성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올해가 겨우 2회째지만 전 세계 40여 개국에서1000여 명 작가가 참여했다. 가고시안(미국), 화이트큐브(영국), 갤러리 페로탱(프랑스) 등 전 세계 유명 화랑 180개가 몰렸다. 지난해 관람객은 4만5000명이었다. 뉴욕의 유서 깊은 아트페어 아모리 쇼가 지난 3월 '100회 특집'에도 불구하고 파리를 날린 것과는 대조적인 분위기다.

VIP 대상 프리뷰가 있었던 9일 오후 전시장에서 기자와 마주친 에마뉘엘 페로탱(갤러리 페로탱 대표)은 "개막 3시간밖에 안 됐는데 작품이 10점 넘게 팔렸다. 좀 전에도 미국 컬렉터가 70만달러(약 7억7000만원)짜리 무라카미 다카시 그림을 사 갔다"면서 들떠 있었다. 그는 "아트페어란 나이트클럽과 똑같다. 어느 순간 물이 나빠진다. 언젠가부터 아모리 쇼에서는 도무지 그림이 팔리지 않아 4년 전부터 참가를 그만뒀다. 대안으로 프리즈 뉴욕을 택했는데 탁월한 선택"이라고 했다.

오전에 폭우가 쏟아졌는데도 전시장은 명품을 휘감은 관객들로 붐볐다. 지난해에도 프리즈 뉴욕을 관람했다는 미술품 컬렉터 스티브 비키위츠(52)씨는 "전 세계 수많은 아트페어를 다 가 봤지만 이만한 아트페어는 드물다. 복잡하지 않고 양질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볼 수 있어 바젤 아트 페어보다 오히려 낫다"고 했다. 프랑스에서 이 페어를 보러 왔다는 미술 애호가 플로랑스 라보트(65)씨는 "프랑스 피악(FIAC)과 비교해가며 보고 있다. 쾌적한 분위기가 마음에 든다"고 했다.

뉴욕 화랑 리먼 머핀이 서도호의 '베를린 집 복도'를, 파리 화랑 카멜 메노가 이우환의 '대화'를 내놓는 등 서구 화랑 부스에서도 한국 작가 작품이 간간이 눈에 띄었다.

☞프리즈 아트페어(Frieze Art Fair)

2003년 영국 현대미술전문잡지 ‘프리즈(Frieze)’ 발행인인 아만다 샤프와 매슈 슬로토버가 창설한 미술 시장. 매년 10월 런던 왕립 레전트 공원에서 열린다. 생존 작가 중심의 실험적인 현대미술작품을 선보이는 게 특징이다. 지난해 창립 10주년을 기념해 뉴욕으로 진출해 올해가 2회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