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빙워크에 문화센터까지… 백화점 부럽지 않은 재래시장

지난 9일 오후 2시 경북 경산시 하양읍 하양시장 입구. 저층에 낡은 상가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길을 따라 들어서니 구름다리로 이어진 산뜻한 새 건물 두 동이 눈앞에 들어왔다. 외벽엔 '하양공설시장'이란 간판이 붙어 있고, 개점을 알리는 플래카드가 곳곳에서 펄럭였다. 건물 앞 이벤트 광장에서는 노래 공연이 한창이었다. 70·80대 노인 300여명이 모여 앉았고, "여기가 시장 맞나" 하는 감탄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건물 주변 상가 상인들도 나와 손뼉을 쳤고, 마침 장날(9일)이라 모여든 5일장 상인들도 장사를 뒤로한 채 공연을 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공설 시장이 새로 문을 열면서 역사가 100년도 넘는 하양장(場)이 다시 태어나게 됐어.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던 시장의 옛 명성을 되찾았으면 좋겠어."(이병수·81·경산시 하양읍)

경산 하양공설시장이 2008년부터 추진한 현대화 사업을 마무리하고 지난 8일 문을 열었다. 국비와 도·시비 등 184억원을 들여 6995㎡ 대지에 연면적 9108㎡ 규모의 최신식 건물을 지어 108개 점포를 들였다. 무빙워크와 엘리베이터를 설치했고, 쇼핑 카트, 푸드코트, 문화센터, 어린이 놀이터 등 다양한 편의 시설을 갖췄다. 모습은 대형 마트를 닮았지만, 상점과 물품은 재래시장 것을 그대로 옮겨놨다. 경산시 공설시장TF 김성환 팀장은 "중소기업청 지원을 받아 재래시장을 현대화한 곳은 전북 군산시 공설 시장과 여기 둘뿐"이라며 "전국 지자체마다 재래시장 현대화에 나서고 있지만 하양시장은 백화점과 마트·양판점의 장점을 살린 현대식 시장과 기존 5일 전통시장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는 게 다른 곳과 다른 특징"이라고 말했다.

하양시장은 조선시대부터 4와 9로 끝나는 날짜에 열리는 5일장과 우시장이 이어져 왔고, 1931년 경산시가 시유지를 공설 시장으로 만든 뒤 주변에 상가가 속속 들어서면서 규모가 커져 왔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대형 수퍼마켓과 마트·편의점 등이 들어선 뒤 쇠락의 길을 걸었다. 현재 인구 2만7000여명인 하양읍에만 대형·중형 마트 6곳이 들어서 있다.

경산시는 시장 반경 3㎞ 이내에 대학만 5곳이 있고, 자취를 하거나 하숙·기숙사 등에 있는 20대가 2만여명에 이른다는 데 주목했다.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신개념 복합 시장'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2008년 중소기업청 재래시장 현대화 지원 사업에 응모해 국비 75억원을 따냈다. 그러고는 경북대 지역시장연구소와 함께 시장을 분석해 청사진을 그렸다.

사업 추진은 만만찮았다. 기존 상인 대부분이 재임차를 놓은 상태여서 임대 상인들이 이주를 거부했다. 명도 소송 등으로 기존 상가를 철거하는 데만 2~3년을 허비했다. 상인 대부분이 70·80대로 고령화된 것도 문제여서 경산시는 자녀들과 함께 운영하도록 유도해 상인 평균연령을 53세로 낮췄다. 상인 모두 중소기업청의 '상인대학'을 통해 경영 수업을 받도록 했고, 신용카드·재래시장 상품권 거래도 가능하도록 했다. 강지윤 연구원은 "옛 재래시장 상인들은 '내 것만 팔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옆 가게가 잘돼야 나도 잘된다'는 의식을 갖도록 바꾸는 데 주력했다"면서 "개점 직전까지도 상인들은 기대 반 걱정 반이었지만 개점 이후 점차 표정이 밝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개점 후 12일까지 5일 동안 공설 시장엔 하루 4000~5000명이 찾아 당초 목표였던 1일 매출 7000만원을 훌쩍 넘어섰다. 대구양품점 주인 황현도(68)씨는 "새 단장 이틀 만에 250만원어치를 팔았다. 공사 기간 상점을 운영할 때 1년 매출보다 많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