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운 어머니의 바느질… 네 남매 키운 '배냇저고리 母情'

"이 앞에서 우리 남매는 다시 젖먹이가 돼 엄마 품에 안깁니다."

중년의 네 남매가 태어나 처음 입었던 배냇저고리 네 점이 벽면 한쪽을 채웠다. 무명베는 해어져 작은 구멍이 났고 부드럽게 아기의 몸을 감쌌던 융(絨·보풀)도 모두 닳았다. 그러나 앙증맞은 이 저고리들은 다른 아기에게 지금 입혀도 될 만큼 바느질이 촘촘하고 튼실하다.

이 저고리들은 솜씨 좋은 어머니 이정자(74)씨가 직접 만들었다. 서울에서 은행 지점장으로 명퇴한 정명성(50)씨가 지난 1일 고향 전북 정읍(井邑)에 '갤러리 정(井)'을 열면서 그 기념으로 이달 말까지 '엄마의 장롱' 전을 열고 있다.

"어머니가 장롱 속에 간직해온 보물입니다. 어머니는 부산으로 서울로 10차례 넘게 이사 다니면서도 이 보따리를 챙기셨어요."

어머니 이씨는 막내가 태어나던 해 홀로되면서 네 자녀를 바느질로 길러냈다. 중학교 때 교복을 직접 지어 입을 만큼 솜씨가 뛰어났다. 졸업 후 양재학원에서 익힌 재단 솜씨로 네 남매의 옷을 만들어 입혔다. 바느질은 남편이 떠난 뒤 가족의 생계 수단이 됐다. 서울 종로에서 단칸방에 세들어 살며 밤새워 옷을 지어 명성씨와 두 동생을 대학까지 가르쳤다. 솜씨가 알려지면서 사미자씨 등 중견 연예인들도 한복을 지어 갔다.

"어머니가 주무시는 모습을 거의 보지 못했어요. 윗목 어머니의 재봉틀 소리에 스르르 잠들었고, 그 소리로 새벽에 눈을 뜨곤 했어요."

이번 전시회엔 어머니 이씨가 두 딸을 시집보내며 지어 입혔던 색동 치마저고리와 베개·버선·모자, 그리고 다양한 보자기도 진열됐다. 친정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바늘 쌈지와 골무도 내놓았다. 가족의 옷을 걸어두던 횃대 보는 수백번 삶아 빨고 풀을 먹여 밟은 뒤 다듬이질을 하면서 자수가 닳아 해어졌지만 네 남매는 어린 시절 그 뒤에서의 숨바꼭질을 추억으로 떠올린다.

이씨는 "네 남매가 장성할 때까지 조각 잠을 자고 밤을 새웠다. 이제 자식들이 잘 보살펴주니 볼에 살이 붙고 웃음도 나온다"고 했다.

아들 정씨는 바느질을 10년 전 그만두고 고향에 먼저 내려온 어머니를 다시 모시면서 보에 싸여 장롱 속에 간수된 배냇저고리를 찾아냈다. 어머니는 배냇저고리를 간직하면 아이들이 오래 산다는 말을 믿었다. 정씨는 눈시울이 붉어졌고, 어머니가 자랑스러웠다고 했다.

정씨는 "사랑과 헌신으로 이어진 어머니의 일생을 돌아보며 이 땅 모든 어머니의 은혜를 다시 한 번 되새겨보려 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