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갑 닫는 女心… 싸건 비싸건 화장품 안 산다

2년 전까지만 해도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던 화장품 업계가 최근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저가부터 고가 제품까지, 국내 브랜드부터 수입 브랜드까지 매출 신장률이 뚝뚝 떨어지고 있다.

원래 화장품은 소득이 낮아져도 소비자들이 웬만해선 지출을 줄이지 않는 소비품이다. 비용 단위가 작고, 가방이나 옷처럼 아껴쓴다고 오래 쓸 수 있는 제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업계에선 "여성들이 화장품 소비를 줄일 정도로 불황이 심각해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뚝뚝 떨어지는 매출 신장률

신세계백화점 화장품 매출 신장률은 2011년 17.6%(전년 대비)에서 작년에 3.1%로 하락했다. 올 4월 매출은 작년보다 2.7% 감소한 마이너스 성장으로 돌아섰다. 신세계백화점 심한성 바이어는 "최근 백화점 화장품 매출은 화장품이 아닌 향수가 먹여 살린다는 말이 나올 정도"라고 말했다.

화장품 매출 하락은 가격대를 가리지 않고 있다. 롯데백화점에 따르면, 시슬리나 SK-∥, 설화수 같은 고가 화장품 매출은 작년 1월만 해도 5.5% 증가했으나, 올 4월에는 1.4%까지 떨어졌다. 키엘, 크리니크 같은 중가 화장품 매출도 작년 1월 11.9% 증가했으나, 올 4월엔 0%로 성장이 멈췄다.

'백화점의 꽃'으로 불렸던 수입 화장품도 마찬가지다. 현대백화점의 수입 화장품 브랜드 매출 신장률은 2011년 14.8%에서 지난해 3.4%로 뚝 떨어졌다. 올 4월 매출은 마이너스 2.1%로 성장세가 완전히 꺾였다.

국내 화장품 브랜드의 올해 1분기 실적도 좋지 않다. 국내 화장품 업계 1위 아모레퍼시픽 그룹의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각각 1737억원과 1169억원으로, 전년보다 각각 4.3%, 17.8% 줄었다. 저가 브랜드 1위인 미샤(에이블씨엔씨)도 올해 1분기 영업이익(62억원)과 순이익(57억원)이 전년보다 각각 36%, 32.7% 감소했다. LG생활건강은 영업이익이 증가했지만, 이는 해외 사업 매출 때문이란 분석이다.

◇불황과 경쟁 심화로 화장품 업계 고전

업계에선 매출 하락의 가장 큰 이유로 불황을 꼽는다. 지갑이 얇아진 여성들이 화장품에 쓸 돈을 줄인다는 것이다. 특히 고가, 수입 화장품 매출 감소 폭이 큰 것도 같은 맥락이다. 현대백화점 문태훈 바이어는 "경기 침체에도 지나치게 비싼 가격을 고수한 수입 화장품 업체들의 전략이 소비자들을 더 이탈하게 만들었다"고 했다.

백화점들은 이런 상황을 감안해 최근 스킨푸드나 더페이스샵 같은 저가 브랜드를 속속 입점시키고 있다. 반면, 명품 브랜드인 버버리의 뷰티 매장은 롯데백화점에 입점한 지 1년 3개월 만인 지난 2월 문을 닫았다.

소비자들이 고가 제품에서 중·저가 제품으로 발길을 돌리자, 업체들이 이들을 잡기 위해 과도한 경쟁을 벌인 것도 화장품 업계의 침체를 불러왔다. 최근 높은 성장률을 보였던 저가 라인 화장품들의 매출이 감소한 것은 마케팅 비용 증가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미샤가 매월 10일 정기 세일에 나서자, 더페이스샵도 지난해부터 '노세일 정책'을 포기하고 대대적인 할인 행사에 나섰다. 이니스프리, 에뛰드하우스 등도 지난해 가격 인하 마케팅에 합류했다.

특정 브랜드에서 한 제품이 히트하면 그와 똑같은 제품을 만드는 '미투(me too) 전략'도 화장품 업계의 제 살 깎아먹기에 한몫했다는 지적이다. SK-∥의 '피테라 에센스'가 인기를 끌자, 미샤나 아이오페 등이 똑같은 제품을 내놓은 것이 대표적인 예다. 업계 관계자는 "'미투 전략'이 일시적으로 제품 매출을 올렸을지는 모르나 전체적으로 봐서는 마이너스로 작용했다"며 "올 하반기까지는 화장품 업계가 고전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