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인문학] 新綠<신록> 짙어진 문헌서원<文獻書院> 걸으며… 오롯이 가족애를 되새기다

  • 서천·서산=유종인·시인

입력 : 2013.05.16 04:00

충남 서천·서산

"저 초록빛을 보니까 행복해지는 거 같아."

도심을 벗어난 들과 산의 갓 밝은 애기초록에 대해 누군가 말했다. 오월의 신록은 그 자체로 선연한 축복이었다. 국립중앙도서관과 교보문고, 조선일보가 공동주최하는 '길 위의 인문학' 탐사가 11~12일 충남 서천·서산 지역에서 '재미있는 가족사'라는 주제로 열렸다. 60여명이 참여한 탐사에 박종기 국민대 교수가 강사를 맡았다.

고려시대 이곡(李穀)과 이색(李穡) 선생 등을 모신 서천 문헌서원(文獻書院)은 안온하면서도 웅숭깊은 지세를 가진 기린산 자락에 자리했다. 원나라 과거에 급제해 벼슬을 할 정도로 국제적 식견을 가진 분들이었다. 서원 뒤편 기린봉에 모신 목은(牧隱)선생의 유택(幽宅)을 찾아가는 소슬한 산길엔 고사리와 애기똥풀, 지칭개 같은 풀들이 눈길을 끌었다. 한 어린 학생은 산길의 도드라진 두더지두둑을 신기한 듯 푹푹 밟으며 유택으로 향했다.

충남 부여군 외산면 만수산에 깃든 무량사(無量寺)는 부처님오신날이 가까운 탓에 오색 연등의 꽃밭이었다. 주변 신록에 둘러싸인 2층 극락전은 고색창연했다. 동양 최대의 불좌상인 아미타여래삼존상을 모신 극락전은 때마침 개금불사(改金佛事) 중이었다. 대신 5층 석탑과 석등은 그 고아한 자태로 탐방객들의 서원(誓願)을 오롯이 대신 들어주는 듯 했다. 박종기 교수는 "'생사고락의 종합병원' 같다"고 하였다. 생육신의 한 분이었던 매월당 김시습의 영당(影堂)까지 품어 안는 말 그대로 대승 청정도량이었다.

1 충남 서산에 있는 조선시대 읍성(邑城)인 해미읍성. 2 충남 서천에 있는 고려시대 학자 이곡의 묘. 3 충남 보령 성주산 자연휴양림 안에 있는 캠핑장.
1 충남 서산에 있는 조선시대 읍성(邑城)인 해미읍성. 2 충남 서천에 있는 고려시대 학자 이곡의 묘. 3 충남 보령 성주산 자연휴양림 안에 있는 캠핑장. / 국립중앙도서관 제공
저녁 가까워 성주산 자연휴양림 안에 있는 캠핑장에 들었다. 가족 단위로 텐트와 취사도구가 준비됐고 각자 준비한 음식을 야외에서 조리해 먹으며 가족애를 다졌다. 맑은 공기와 숲의 기운을 만끽하며 자연에 깃드는 일의 호젓함과 호연지기를 맛보았다. 이튿날 휴양림 강의실에서 가족들이 모인 가운데 명심보감(明心寶鑑) 강의와 돌려 읽기를 했다. 지식이 아닌 실천으로서의 앎을 마음에 새기는 남녀노소의 목소리가 낭랑하게 어우러졌다.

해미읍성은 충청병마절도사 감영이라는 군사적 요충지로서의 의미와 더불어 천주교 박해로 1000여명이 순교한 곳이기도 하다. 충청도 사투리로 호야나무라는 회화나무 동쪽 가지에 효수됐던 순교자들의 눈빛이 한낮의 숨은 별빛처럼 서늘했다.

개심사 경내엔 그윽한 소나무와 더불어 왕벚나무 꽃이 한창이었다. 안양루의 〈象王山開心寺(상왕산개심사)〉 현판은 해강 김규진 선생의 큰 전서(篆書) 글씨로, 담대하여 눈이 시원하였다. 대웅보전에서 흘러나오는 목탁 소리는 경내의 모란꽃 봉오리를 두드려 깨우고 애기초록에서 신록으로 넘어가는 둘레 산빛을 재촉하는 듯했다.

서산 운산면 용현리 근방에 보원사지(普願寺址)를 찾았다. 고려 광종 때의 대찰인 보원사엔 1000여 승려가 머물렀다 한다. 당간지주와 석탑, 석조(石槽)만 남은 허허로운 폐사지엔 뻐꾸기 소리가 염불과 목탁 소리를 대신했다. 탐방객들은 가늘게 눈을 뜨고 흥성했던 대가람을 그 마음 안에 자신만의 절로 다시 세우는 듯했다.

기행의 끝은 가야산 계곡 층암절벽에 돋을새김으로 조성한 서산 마애삼존불이었다. 원만하고 평화로운 그 미소는 이번 답사길이라는 꽃대 끝에 맺힌 시들지 않는 꽃과 같다. 백제의 미소는 누구든 그 미소를 가슴에 품는 순간 평화와 상생의 원력으로 피어나는 꽃이었다. 길은 그걸 가능하게 하는 즐거운 넘나들이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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