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술은 일종의 꽃 성기 수술은 열 개, 그 가운데 암술 하나가 툭 튀어나와”
밤송이의 가시는 3000개 솔방울의 비늘은 100여개 민들레꽃 홀씨는 123개
권오길(73) 강원대 명예교수에게 전화를 거니, "인터뷰할 거리가 없어요. 책은 이것저것 냈는데 내 마음에 맞는 책을 못 냈어요"라고 반응했다. 잠자코 기다리니 얘기를 계속하다가 "정 그러면 한번 해봅시다. 내 작업실은 부엉이집 오소리굴 같아요. 청소를 안 해도 괜찮다고 하면 그리로 오시오"라고 말했다.
그는 국내에서 생물(生物)과 관련된 글을 가장 많이 썼다. 책만 43권을 냈다. 고등학교에서 15년 교편을 잡다가 늦게 교수가 된 뒤로 일 년에 꼬박꼬박 두 권씩 썼다고 한다. 이번에 출판된 '생명교향곡'의 서문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요새는 밭 갈고 씨 뿌리기에 눈코 뜰 새 없다. 손바닥만 한 밭뙈기가 나에겐 버거워 한바탕 쏘대고 나면 허리가 내게 아니다. 그러하나 푸성귀도 뜯어먹고, 몸 운동하며, 때론 글감을 줍고 하니 일거삼득이다. 몸이 예전만 못해 걱정이지만 닳아서 없어질 때까지 쓸 것이다.'
몸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쓰겠다는 대목이 내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춘천시 후평동에 있는 15평짜리 낡은 주공아파트로 찾아가니 과연 지저분하기 이를 데 없었다. 2005년 교수 퇴임하면서 작업실을 얻었다고 했다. 그가 "커피 마시겠소?" 하고 물었을 때, 이런 공간에서도 커피는 끓여 마시는구나 싶었는데, 과연 캔커피를 내밀었다.
―이번 책에서 "모기는 보통 때는 꿀물이나 식물의 진액을 먹고 산다. 하지만 짝짓기를 한 암놈은 '흡혈귀'가 된다. 온혈동물(조류와 포유류)의 피에 든 단백질이나 철분이 알의 성숙과 발생에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암놈은 1~2주를 살고 그동안에 알을 3~7회 번갈아 낳으니 모두 합치면 한 마리가 낳는 알이 700개가 넘는다"고 되어 있더군요. 정말 그런가요? 짝짓기 때도 아니고, 심지어 겨울철에도 무는 모기는 뭡니까?
"돋보기로 수놈의 주둥이를 보면 확실히 못 찔러. 무는 놈은 암놈이 맞아요. 그런데 예리한 질문이오. 암놈이 피를 빠는 것은 아무래도 짝짓기와는 무관한 것 같아. 지금까지 상식이 잘못된 것 같아."
―지금까지 본인의 가장 위대한 발견은요?
"아무래도 달팽이지.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달팽이 110종을 모두 찾아냈으까요. 크기가 2㎜부터 시작해 아기 주먹만 한 것도 있어요. 달팽이 연구로 박사 학위를 땄고 대한생물도감 전집에서 '달팽이' 편을 내가 만들었어요. 내 별명도 '달팽이 박사'요. 전국을 돌아다니며 달팽이를 잡다가 죽을 고비도 많이 넘겼네."
―달팽이가 식인 상어도 아닌데 어쩌다가?
"1970년대 말 거문도에 들어갔어요. 낙엽과 돌멩이 틈새에서 달팽이를 찾고 있는데, 섬뜩한 느낌이 와요. 예비군들이 '너 간첩이지' 하면서 둘러싼 거야. 그 얼마 전에 거문도에서 고정간첩 사건이 있었다는 거요. 또 한번은 시외버스를 타고 가는데 정류장에 안 세워주고 그냥 달려요. 파출소 앞에 세우고는 안내양이 경찰과 함께 올라타서 나를 지목하는 거야. 수염을 안 깎아 터부룩하다고 간첩으로 보였다는 거야. 그때는 바보가 많았어."
―달팽이를 연구하면서 무얼 배웠나요?
"이놈들이 굼뜨지만 꾸준하거든. '슬로 앤드 스테디', 이게 괴테의 좌우명이오."
그는 경남 산청의 궁벽한 마을에서 출생했다. 초등학교 졸업 후 형편이 어려워 중학교를 못 갔다. 지게를 지고 나무하러 다녔다. 이듬해 20리 떨어진 마을에 중학교가 생겨 다닐 수 있었다. 공부에 대한 열망으로 고등학교는 외가와 고모 집에 기식하면서도 다녔다. 교과목 중에서 생물은 3년 동안 모두 '수(秀)'였다. 그래서 학비가 거의 없다시피한 서울대 사범대 생물학과에 입학할 수 있었다.
―거머리·지렁이·달팽이 등 하등동물은 자웅동체(난소와 정소를 다 가짐)인데도 반드시 다른 놈과 짝짓기를 해 정자를 교환한다면서요?
"자기 몸 안에 다 갖춰져 있는데도 자가 수정을 하지 않아요. 참 묘한 이치요. 이게 우생학이오. 근친상간이란 좋지 못한 인자들의 조합이거든. 저기 창 밖을 보세요. 철쭉이 한창 피어 있지요. 저 꽃 냄새는 음액이야. 그 향기가 좋다고 사람들은 냄새 맡지. 꽃술은 일종의 꽃 성기지요. 수술은 열 개요. 그 가운데 암술 하나가 툭 튀어나와 있죠."
―외양으로는 가운데 툭 튀어나온 게 수술인 줄 알았는데.
"어허, 원래 수술이 많은 거요. 린네(18세기 스웨덴의 식물학자)는 이를 두고 '여자 하나를 열 남자가 서로 꼬드기고 있다'고 했지. 그런데 암술이 왜 수술보다 더 길고 툭 튀어나올까? 수술과 나란히 있으면 꽃가루받이가 쉬울 텐데. 그건 옆 수술의 꽃가루를 안 받겠다는 거지. 꽃들은 자체적으로 수분(受粉·꽃가루받이)을 해도 수정이 되지 않아요."
―같은 줄기나 가지에 여러 꽃이 달릴 수 있는데, 그 꽃들끼리는 어떤가요?
"이 질문에는 100% 자신이 없는데, 원칙적으로는 수정이 안 돼요. 그래서 과수를 심어도 하나만 심지 말고 여러 그루를 심으라고 하는 거요."
―8촌(寸) 안의 동성동본 결혼을 금하는 이유와도 관련 있군요. 또 같은 성향, 같은 대학, 같은 지역끼리만 모이는 순일한 조직은 생물학적으로 건강하지 못하다고 볼 수 있겠군요.
"그렇게 적용될 수 있지요. 사람도 생물이니까요."
―이번 책에서 보니, 반딧불이는 대부분 번데기에서 성충이 되면 이미 입이 완전히 퇴화해버려 살아있는 동안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면서요.
"애벌레 시절에 많이 먹어서 양분을 저장해놓아요. 성충이 되면 짝짓기와 알 낳기에 바쁜데 먹을 시간이 어디 있어요. 곤충은 대부분 짝짓기가 끝나면 생(生)도 끝나요. 곤충은 지구 생물종의 75%를 차지해요."
―생물의 공통점은요?
"바깥을 보시오. 저 나무가 왜 오래 살아있겠소? 동물과 식물, 세균, 곰팡이까지도 다르지 않아요. 모든 생물은 종족 보존을 위해 살아있는 거요. 그게 존재 이유요. 그러니 결혼하지 않는 젊은 친구들을 보면 안타깝지. 생물로서 타고난 운명에 반(反)하는 거지."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어서 인간이겠지요. 생물 중에서 인간 말고 자살하는 생물을 봤습니까?
"어허, 칼럼 쓰는 분이 그런 식으로 얘기하다니. 종족 보존이란 결국 자신의 영생(永生)과 비슷한 거요. 자신은 사라져도 자식을 통해 자신의 존재가 이어지는 거지. 나의 주인인 세포 속 DNA가 그대로 전수되니까요."
그는 2녀 1남을 두고 있다. 모두 생물학을 전공했다고 한다. 완벽하게 그의 존재가 장차 이어질 것이다.
여름 같은 봄 날씨였다. 만물이 윤을 발하며 화육생성(化育生成)하는 게 확연히 보였다. 아, 종족 보존을 위한 것이겠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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