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치는 '甲의 횡포'… 국민연금, 株主權을 꺼내라

최근 대리점에 대한 '물량 밀어내기' 의혹으로 비판을 받고 있는 남양유업에 대해 국민연금이 5.4%의 지분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민연금이 남양유업 투자금을 회수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

그런데 국민연금은 남양유업에 대해, 내용은 다르지만 문제 제기를 계속 해왔다. 2년 전 주주총회에서 감사 선임에 반대했고, 또 최근 3년간 주주에 대한 배당이 너무 적다는 이유로 해마다 회사의 배당 방안에도 반대했다. 그렇지만 국민연금의 이런 줄기찬 문제 제기에도 회사의 경영 행태가 바뀐 게 없다. 국민연금이 주주권을 행사할 때, 주총에서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 이외에 다른 방식의 견제가 필요한지 검토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국민연금은 현재 전체 자산의 18.7%를 국내 주식에 투자하고 그 비중도 점차 늘릴 계획인 만큼, 주식자산 관리가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주식 '매매'에만 치중해서는 안전한 자산 관리가 어렵다.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로 주식 가치를 올려야 미래에 국민이 받을 연금 자산이 안전하게 보호되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가 중요한 이유이다.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에만 멈춰 있어서는 안 돼

국민연금이 주주권을 행사하는 수단은 주총에서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 외에도 다양한 방법이 있다. 선진국의 공적(公的) 연기금만 봐도 의결권 이외에 다양한 주주 권한을 행사해서 투자 자산의 가치를 올리는 사례가 적지 않다. 가령 미국의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CalPERS·캘퍼스)은 투자기업 중 문제 기업의 목록을 '포커스 리스트(Focus List)'로 작성해 공개하는데, 연구에 따르면 1999년부터 2008년까지 리스트에 오른 155개 회사가 올린 수익이 벤치마크(비교 기준이 되는 주가지수 등) 평균보다 15.8% 높았다. 캘퍼스는 최근 주주의 지지를 받지 못한 현직 이사 52명을 지목해 개선을 요구했고, 단 0.26%의 지분을 가진 애플에 주주 과반수가 찬성해야 이사 선임이 가능한 '다수결의제' 도입을 요구해 관철시키기도 했다. 애플은 예전엔 한 명의 주주만 찬성해도 원하는 이사를 선임할 수 있었다. 네덜란드 사회보장기금(PGGM)은 캘퍼스의 '포커스 리스트'와 유사한 '워치 리스트'에 79개사를 올리고 있으며, 네덜란드 공무원연금(ABP)은 경영진과의 대화 등을 통해 기업들이 노동 환경 개선이나 사회 책임 활동에 나서도록 해서 기업 가치를 높이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는 주주총회에서의 의결권 행사나 최근 비중을 늘려가는 사회책임투자(SRI) 위탁운용 정도를 제외한다면 사례를 찾기 힘들다. 사회책임투자는 환경이나 인권 보호 등 사회적 책임 활동의 비중이 높은 기업에 투자하는 것을 가리키는데, 국민연금은 자산의 일부를 자산운용사의 사회책임펀드에 위탁해서 이 같은 투자를 하고 있다.

국민연금이 주로 활용하는 방법인 주총 의결권 행사는 주주총회 안건 중 국민연금이 반대한 안건 비율이 2009년 6.59%에서 2013년 12.5%로 그 비율이 높아지고 있지만, 국민연금이 반대한 안건이 실제로 부결된 사례는 거의 없다. 국민연금 주주권 행사의 실질적인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셈이다. 그래서 의결권 행사만으로는 부족하고 더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가 필요하다.

◇주주제안권·대표소송권 등 다양한 수단 활용해야

국민연금이 주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방법은 의결권 이외에 법적으로 보장된 주주제안권, 대표소송권 등을 활용할 수 있다.

주주제안권은 주주총회에 안건을 상정할 권리인데, 상장회사의 경우 1%(자본금 1000억원 이상인 상장사는 0.5%) 이상 주식을 6개월 이상 보유한 주주에게 부여된다. 사외이사 후보를 추천할 수 있는 권리는 이 주주제안권의 한 종류다. 대표소송 제기권은 상장회사인 경우 0.01% 이상 지분을 보유한 주주에게 허용되며, 대표소송에 참여만 할 수도 있다.

법적 권한은 아니지만, 다른 수단도 있다. 지배 구조에 문제가 많고 개선 요구에 응하지 않는 기업을 일정한 기준에 따라 선정해 공개하거나(문제 기업 공개), 지배 구조가 우수한 기업에만 투자하거나(지배구조펀드 운용), 또는 투자자들을 규합하여(투자자 연대) 회사에 직·간접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법이다.

이상의 주주권은 주주가 주식을 파는 대신 경영진에 영향력을 행사해 '보유'한 주식 가치를 유지하거나 높이는 수단이라는 공통점이 있으며, 장점도 많다. 국민연금이 주주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면 기금의 수익률을 높여 국민의 노후 보장 수단인 연금의 고갈을 늦추고, 자격이 충분한 임원을 선임해 이사회의 독립성·전문성을 높이고 기업지배 구조를 개선할 수 있다.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 돕는 제도 개선도 필요

국민연금이 주주권을 적극 행사할 수 있도록 하려면, 국민연금만의 노력에서 끝나서는 안 된다. 제도적인 개선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우선, 국민연금은 관치 논란을 불식할 수 있도록 지배 구조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가령 사내이사들이 배임·횡령으로 처벌받아 감시의 필요성이 큰 상장회사를 사외이사 후보 추천 대상 회사로 정하는 식이다. 이러한 조치들은 시장이나 국민에게 신뢰를 높이는 데 유용할 것이다. 이 내용은 박근혜 정부의 국정과제에도 포함된 만큼 추진 과정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둘째,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를 지원할 독립적인 전문기관을 키워야 한다. 선진국의 공적 연기금은 의결권을 행사할 때 ISS 같은 의결권 자문기관에 조언을 구하고, 사외이사 후보를 추천할 때에는 외부 인력뱅크를 활용하기도 한다. 반면 국내 상황은 크게 미흡하다. 예컨대 의결권 자문기관조차 극소수인 데다 서비스 시장도 미비하다. 따라서 국민연금의 미흡한 주주권 행사만 탓하기보다는 이를 지원할 의결권 자문기관 같은 인프라도 동시에 육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마지막으로, 주주권 행사를 가로막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가령 사외이사 등 임원 후보 추천은 지금처럼 오너의 발언권이 큰 소유 구조에서 국민연금이 제기해도 성공할 확률은 희박하면서 논란만 유발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지만 2명 이상의 이사를 선임할 때 1주당 이사 수와 동일한 의결권을 준 후에 표를 한 명에게 몰아줄 수 있게 해 주주가 추천한 후보의 선임을 돕는'집중투표제'와 주주총회에 참석하기 어려운 소액주주가 인터넷으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전자투표제' 등을 의무화할 경우 국민연금이 소액주주들의 표를 모아 힘을 발휘하도록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