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때 연대보증 빚 떠안은 11만명 대상… 채무 40~70% 탕감

이모(63)씨는 지난 2000년부터 자기 이름으로 된 통장이 없다. 남편이 운영하던 공장이 1997년 외환위기 여파로 문을 닫은 뒤부터다. 외환위기 2년 전 이씨의 남편은 공장을 확장하려고 은행과 신협 등에서 7억원을 빌렸고, 이씨는 남편의 빚에 연대보증을 섰다. 자금난에 몰려 공장이 부도나자 채권단은 담보로 잡은 공장을 경매에 넘겼고, 이씨의 연대보증 채권은 추심회사로 넘겼다. 남편은 화병으로 몇 년 뒤 숨졌다. 이씨의 보증 빚은 그대로 남았다. 이씨는 "10년이 넘게 따라다니는 보증 빚이 지긋지긋하고 무섭다"고 했다.

이씨처럼 외환위기 당시 중소기업의 연대보증을 섰다가 10년 넘게 빚더미에 갇혀 살아온 사람들이 빚의 굴레를 벗어날 수 있게 됐다. 금융위원회는 21일 이들을 대상으로 빚 탕감 등 채무 재조정을 해주겠다고 발표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외환위기 당시 중소기업들의 도산으로 연대보증인들이 과중한 채무를 오랫동안 져왔다"면서 "최고 1억원까지만 채무조정을 해주는 국민행복기금으로는 빚 금액이 큰 기업 대출 연대보증인을 도와줄 수 없어 별도의 지원 대책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구제 대상자는 누구인가.

"외환위기 당시인 1997년부터 2001년까지 5년간 도산한 중소기업(상시 근로자 300인 이하 기업)에 연대보증을 섰다가 빚을 갚지 못한 사람은 11만3830명(보증 빚 13조2420억원)에 달한다. 이들 가운데 97%인 11만명 정도가 보증을 선 금액이 10억원 이하다. 이들이 지원 대상이다. 아직도 추심업체에서 빚 독촉을 당하고 있다. 이들이 지고 있는 보증 빚은 13조2000억원에 이른다(이 중 6조3000억원은 자산관리공사가 보유). 신보, 기보, 금융회사 등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이 빚을 자산관리공사가 싸게 사들여 개별 채무자에 대해 빚 탕감 등 채무 재조정을 해준다."

―대상자 가운데 1104명은 '연체 기록을 삭제해 준다'고 하는데 무슨 뜻인가.

"연체 정보는 7년간 은행연합회에서 관리되고, 신용평가사 등에서 추가로 5년간 보관할 수 있다. 총 12년간 연체 기록이 남아있게 되는 셈이다. 그런데 이 기간이 끝나더라도 채권자가 법원에 신청해 '채무 불이행자 명부'에 등재가 되면 추가로 7년간 은행연합회에서 공공 정보로 관리하게 된다. 지원 대상자 가운데 이런 이유로 아직도 연체 기록이 은행연합회에 남아있어 신용불량자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 1104명이다. 이들의 연체 기록인 '법원의 결정에 따른 채무 불이행 정보'와 '어음 부도 기업의 관련인 정보'를 일괄 삭제할 예정이다. 나머지 사람들은 연체 기록이 남아있지 않다."

―국민행복기금과는 어떻게 다른가.

"국민행복기금은 가계 신용 대출을 대상으로 하지만, 이번 대책은 기업 대출에 대한 연대보증이 대상이다. 또 국민행복기금은 최대 1억원까지의 빚을 대상으로 하지만, 이번 대책은 최대 10억원(원금 기준) 이하까지 포함된다. 중소기업 연대보증은 상대적으로 금액이 크기 때문이다. 10억원을 넘는 보증 빚은 개인회생이나 파산 등을 통해 회생 기회를 부여하게 된다."

―2003년 카드 대란으로신용불량자가 된 사람들은 따로 지원 대책을 내놓지 않는 건가.

"카드 빚으로 신용불량자가 된 경우는 국민행복기금으로 지원을 하게된다. 이번 대책은 국민행복기금 지원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 기업 대출의 연대보증과 관련된 채무만을 따로 떼어내서 지원하는 것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도 중소기업의 부도가 많았고, 연대보증인들의 피해가 컸다. 외환위기 당시만을 대상으로 하는 이유는 뭔가.

"정부는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는 다르다고 보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는 우리 정부가 대응하기 어려운 세계적인 경제 위기였다. 반면 외환위기는 정부 정책의 실패 탓이 크다. 당시 중소기업의 도산에 대해서는 정부도 책임이 있으니 연대보증으로 피해를 본 사람들을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언제, 어떻게 신청하면 되나.

"7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자산관리공사(캠코) 본사와 전국 지점 등을 통해 신청하면 된다. 감면 등 채무 재조정과 함께 국민행복기금과 마찬가지로 취업 및 창업 지원 등 종합적인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다."

―채무 감면율은 얼마나 되나.

"보증을 선 채무를 연대보증인 수로 나눠서 개인별 보증 빚을 계산한 뒤 그 금액에서 40~70% 감면을 해줄 예정이다. 예를 들어 10억원의 연대보증을 섰고, 보증인이 5명이라면 1인당 2억원의 빚이 있는 것으로 본다. 최대 감면율인 70%를 적용하면 1억4000만원을 감면해주고, 6000만원만 갚으면 빚에서 해방되도록 하는 것이다."

―70%를 감면하더라도 금액이 커서 상환이 어려운 경우는 어떻게 하나.

"보증인의 수가 적어서 감면을 받은 뒤에도 갚아야 할 빚이 큰 경우 등은 상환 능력을 따져서 갚을 수 있는 금액으로 추가 감면을 해줄 예정이다. 캠코에 채무조정심의위원회를 설치, 개인의 소득수준·연령·재기 가능성 등을 평가해서 추가 감면 금액을 정하게 된다."

―남은 빚은 어떻게 갚나.

"감면하고 남은 빚은 최장 10년간 분할 상환하게 된다. 질병이나 사고 등으로 정상적인 상환이 어렵다고 인정되는 경우는 최장 2년간 상환을 유예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