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빵·재활용가구 빼곡… 여기는 '옷가게' 입니다

분명히 옷 가게인데 입구부터 옥상까지 죄다 텃밭이다. 라벤더와 양귀비, 상추와 쑥갓이 곳곳에서 자란다. 가방과 구두를 사러 왔는데 버려진 침대 매트리스로 장식했다는 벽과 천장, 망가진 자개장롱을 활용해서 만든 근사한 선반만 보이는 가게도 있다.

이른바 '콘셉트 스토어'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옷보단 분위기를 팔고, 상품보단 느낌을 판다. 여러 상표의 옷을 한데 모아놓은 '편집 매장'과 비슷하지만 뜯어보면 또 조금 다르다. 대중에게 인기를 끌 만한 물건을 한데 모아놓은 매장이라기보다는 그다지 잘 안 팔릴 것 같아도 주인장의 철학을 설명해줄 수 있는 것을 작은 꽃다발처럼 모아놓은 느낌이다.

패션 디자이너 송자인씨는 지난 식목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모 제인 송(MO Jain Song)'이라는 이름의 콘셉트 스토어를 열었다. 송씨가 직접 만든 옷을 파는 가게지만 입구에서 손님을 반기는 건 사이프러스 나무와 양귀비 꽃이다. 가게 안엔 라벤더와 금귤나무, 카네이션과 파피루스 등으로 빼곡한 '텃밭'이 있다. 옥상도 밭이다. 셀러리·상추·쑥갓·바질·로켓 샐러드 등이 예쁘게 줄지어 자란다. 가게 곳곳엔 화분 받침, 종이봉투에 포장된 씨앗이 있다. 송씨는 "예전부터 건강한 아름다움을 드러내기 위해 옷을 만들었다. 이런 생각을 보여주기 위해 텃밭과 친환경 제품이 가득한 콘셉트 스토어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제 생각과 철학을 보여주고 파는 거죠."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에 있는 '어라운드 더 코너' 역시 궁극적으로 '콘셉트'를 파는 가게 중 하나다. LG패션이 운영하는 이 매장 한가운데엔 '퍼블리크'라는 이름의 빵 가게가 있다. 수제(手製) 맥주를 파는 '맥파이'와 커피숍 '카페 리브레'도 있다. 옷 가게인데 아침마다 빵 굽는 냄새가 진동하고 주말엔 커피 마시는 사람이 더 많은 것이다. LG패션 측은 "패션이라는 게 거창한 게 아니라 차 마시고 빵 먹는 것처럼 평범한 일상의 일부분임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과 강남구 청담동에 있는 '비이커' 매장도 비슷하다. 매장에 들어서면 옷보다는 인테리어에 눈길을 빼앗긴다. 버려진 의자와 문짝으로 지은 계산대와 커피 판매소, 망가진 서랍을 층층이 쌓아 만든 계단, 침대 매트리스로 장식한 천장…. 비이커 측은 "직원들이 전국 재활용센터를 뒤져 부서진 문짝과 창문, 가구를 수집했고, 이를 갖가지 방식으로 조합하고 조립하는 데만 6개월을 썼다"고 했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 한 백화점에 있는 남성 캐주얼 브랜드 '시리즈'의 매장은 부엌을 연상시킨다. 큼직한 식탁과 조리대가 있고, 남성용 앞치마와 도마, 냄비도 판다. 시리즈 측은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에 관심이 많은 남자를 표현하기 위해 이 같은 콘셉트 스토어를 만들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