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최초의 창작뮤지컬 '살짜기 옵서예'(1966), 최초의 어린이 일일연속극 '똘똘이의 모험'(1946· 경성중앙방송국), 제1회 청룡영화상 작품상 수상작 '혈맥'(감독 김수용, 출연 황정순 신영균 김지미 신성일)이 모두 한 작가의 펜 끝에서 나왔다.
연극·뮤지컬·TV·라디오·영화·소설 등 '글'이 펼쳐질 수 있는 모든 장르를 넘나들던 작가 김영수(金永壽·1911~1977). 1930년대 조선일보(희곡·소설)와 동아일보(희곡) 신춘문예를 휩쓸고, 방송작가·시나리오 작가·소설가로 '펜으로 휘감을 수 있는 모든 영역'에서 '최초'의 빛을 발했던 작가였다. "우리 시대 마지막 로맨티스트"(신상옥 감독)였고, "아무리 유치하고 저속해도 창작극을 써야 이 땅에 연극이 예술로 자리 잡는다"던 창작 지상주의자였다. 그의 뮤지컬 '살짜기 옵서예'가 지난 2월 재공연된 데 이어 21일부터 연극 '혈맥'이 예술의전당에서 다시 무대에 올랐다. 2013년은 '작가 김영수 부활의 해'다.
"쓸 때는 미친 사람이 따로 없었다." '혈맥' 개막을 보기 위해 미국서 한국을 찾은 둘째딸 김유미(72·작가)씨는 "집필 중에는 방 밖에서도 느껴질 정도로 광기(狂氣)가 남다른 분이었다"고 회고했다. "일단 쓰기 시작하면 까맣고 두꺼운 융을 창문과 벽 전체에 발랐다. 아무도 들어갈 수 없는 그 방에서 가끔 벨이 울렸다. 한 번 울리면 어머니, 두 번 울리면 내가 들어가서 지시를 받았다." 하루에 시나리오 한 편을 뚝딱 써낼 정도로 왕성한 생산력을 지닌 활화산 같은 작가였다. 종이 위에 쏟아내는 감정의 파고는 유달리 깊고도 높았다. "한번은 방 밖으로 짐승 울음소리 같은 것이 들렸다. 아버지가 숨이 넘어갈 듯 헉헉헉 울고 있었다. 슬픈 장면을 쓰고 계셨던 거지."
'혈맥'은 그 많은 장르 중에서도 희곡에 대한 애정이 특히 애틋했던 김영수의 강건한 사실주의를 보여준다. 초연은 1948년 1월. 1998년 대한민국 수립 50주년 기념작으로 임영웅씨가 연출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