全 세계 6000조원 '부실債權'… 한국 금융의 새 먹거리

기업이 자금난에 빠져 정상 경영이 어려워지면, 은행 빚을 갚지 못하게 된다. 이런 부실채권(Non Performing Loan· NPL)이 급격하게 늘어나면 은행들도 흔들리게 된다. 대규모 경제 위기 때마다 이런 일이 반복되고 있다.

그러나 원금은 커녕 이자 상환도 중단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채권'이라는 뜻인 NPL에 대한 대접이 최근 들어 달라지고 있다. 당장은 부실기업이지만, 자금 지원과 구조조정을 잘하면 '미운 오리 새끼'에서 '백조'로 변신할 수 있는 NPL이 막대한 이익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저금리와 저성장의 벽에 부딪친 한국 금융회사들은 해외 NPL이 새로운 활로가 될 수 있다는 기대를 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재정위기로 부실기업이 늘어나면서 이런 NPL 시장은 계속 커지는 추세다. 글로벌 회계 법인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에 따르면 유럽 국가들에서 총 2조5000억유로 규모의 NPL이 쏟아져 나올 전망이다.

아시아의 경우 중국의 NPL 시장이 우리 돈으로 1000조원이 넘을 것으로 전망되고, 아세안(아시아 10개국 연합) 등 중국을 제외한 아시아의 NPL 규모도 1000조원 정도로 추산된다. 미국은 1640억달러 정도로 추정된다.

◇NPL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

대출을 해 준 기업이나 가계에 문제가 생겨 상환 가능성이 떨어져 NPL이 발생하면 은행은 이를 어떻게든 처리해야 한다. 그 방법 중 하나가 NPL을 헐값에 팔아치우는 것이다. 직접 추가 자금을 지원해 문제가 발생한 기업을 정상화시킬 수 있을 만큼 자금이나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A은행이 B기업에 빌려준 100만달러 대출에 대한 권리를 C에게 40만달러에 넘기는 식이다. 그러면 A은행은 결과적으로 빌려준 100만달러 중 40만달러만 챙기고 60만달러를 날리는 것이다. A은행으로서는 100만달러 전체를 떼이는 것보다는 40만달러라도 챙기는 것이 낫다고 계산할 수 있다.

C는 이때 다른 계산을 할 수 있다. 40만달러를 주고 빚을 사들였으니까 B기업으로부터 이 이상만 상환받으면 수익을 낼 수 있다. 그래서 '구조조정'을 통한 경영 정상화에 박차를 가한다. C는 돈을 갚지 못한 B기업의 주주를 몰아내고 B기업의 주인이 된다. 이후 경영진도 바꾼 뒤 부실을 떨어내고 인력 조정 등을 통해 B기업을 정상 궤도로 돌려놓는다.

이 과정에서 추가로 자금을 투입해 B기업이 정상적인 생산활동을 할 수 있게 도와준다. 이후 기업이 확실히 정상 상태가 되면, 시장에 매물로 내놓고 새 인수자에게 매각한다. 아니면 계속 기업을 소유하면서 이익을 가져갈 수도 있다. 이런 식으로 40만달러와 추가로 들어간 돈 이상만 회수하면 C는 수익을 올릴 수 있다.

C는 자기 자금뿐 아니라 외부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모아 이 같은 투자를 한다. 외부 투자자들은 기업 구조조정이 완료될 때까지 기다린 뒤 이후 높은 수익을 배당받거나, 기업의 부채 상환 가능성이 높아진 시점에서 다른 투자자에게 자기 지분을 매각해 차익을 낸다. B기업이 회생하지 못한다면 추가 지원한 자금 등을 통째로 날리는 '리스크(위험)'를 감수한 결과다.

◇글로벌 한국 그룹이 생긴다?

NPL 시장의 '큰손'은 골드만삭스 와 같은 국제적인 투자은행(IB)이나 론스타 등의 사모펀드다. 미국의 사모펀드인 블랙스톤은 지난해 영국의 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RBS)로부터 73억달러의 NPL을 사들였다.

이처럼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국제적인 IB와 사모펀드들이 차지하고 있는 국제적인 NPL시장에서 최근 국내 금융회사들이 주목을 받고 있다. 외환위기 때 대규모 기업 구조조정을 해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캠코 관계자는 "국내 금융사들이 해외 NPL 사업에 나설 수 있는 것은 외환위기라는 뼈아프지만 소중한 경험 덕분"이라고 말했다.

하나은행은 중국 청도은행을 인수, 중국 정부의 NPL 시장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또 현대증권, 한국투자증권 등 증권사와 연기금들이 외국 업체와 제휴해 NPL에 투자하거나 투자를 위한 제휴 관계를 맺고 있다. 아직은 투자자 자격으로 NPL 시장에 참여하고 있지만, 조만간 외국 기업을 사들여 직접 구조조정을 하는 곳이 나올 전망이다.

캠코 관계자는 "지금은 우리 금융사들이 시장에 막 진입하는 단계로 볼 수 있다"며 "국내 금융시장에서 성장 동력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라 앞으로 진출이 더욱 활발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식으로 진출이 활발해져 우리 금융사들이 실질적으로 소유하는 외국 기업이 늘면 전 세계적으로 많은 계열사를 거느린 '한국그룹'이 탄생하는 셈이다.

이런 기대가 커지는 것은 해외 기업 구조조정이 늘면서 캠코 등 우리 금융사에 대한 외국의 자문이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캠코는 외환위기 때 공적자금으로 39조2000억원어치 국내 NPL을 인수해 48조1000억원을 회수하는 성과를 낸 곳이다. 이는 2009년 G20 정상회의에서 성공 사례로 소개된 바 있다.

이 노하우를 배우기 위해 2001년 4월 중국의 화융자산관리공사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25회에 걸쳐 14개국 456명이 캠코를 다녀갔다. 또 독일, 일본, 대만 등 13개국 19개 자산관리공사의 요청으로 양해각서를 체결해 정기적으로 기법을 전수하고 있다.

☞NPL(Non Performing Loan ·부실채권)

이자가 연체되고, 원금 상환도 어려워 보이는 부실채권을 뜻한다. 보통 3개월 이상 연체되는 대출을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