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조합이 붐이다. 기존의 경제 시스템에 대한 새로운 대안을 찾던 이들이 하나둘 협동조합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이는 어쩌면 시니어들이 은퇴 후 뜻깊은 인생을 설계할 수 있는 하나의 길이 될지도 모른다. 협동조합, 제대로 알고 시작하자.
시작은 지난해 12월 협동조합기본법이 제정되면서부터다. 기본법 제정으로 인해 5명 이상이면 금융·보험업을 제외한 어떤 분야에서든 협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다. 물론 이전에도 협동조합 관련 법률은 있었다. 농협·수협·신협 등과 관련한 8개의 특별법이 존재했던 것. 그러나 이는 워낙 까다로워 개인이 접근하기 쉽지 않았고, 이번에 제정된 기본법으로 인해 그 보편성을 획득하게 됐다.
이 일련의 과정 속에서 협동조합은 순식간에 뜨거운 감자로 부상했다. 올 4월 30일까지 기획재정부에서 인가한 협동조합은 946개. 4월 한 달간 무려 250개의 협동조합이 새로 생겨났다. 그야말로 무서운 기세다. 전문가들은 올해 안에 2500개 가량이 더 생겨날 것으로 내다본다.
뜻 있는 영리 활동… 은퇴자에게 제격
1800년대 영국에서 시작된 이래 약 200년 동안 전 세계 여러 나라로 퍼진 협동조합은 현재 총 170만 개가 존재한다. 조합원 수는 약 10억 명에 달한다. 이는 지구상에서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인구 5분의 1에 해당하는 수다. 우리나라는 이제 갓 걸음마를 떼었지만 미국과 유럽에서는 이미 협동조합이 일반적인 기업 형태로 자리매김한 상태. 특히 유럽은 전체 금융시장의 20%가 협동조합으로 이뤄져 있다. 프랑스나 독일의 경우 그 비율은 30% 이상으로 더 높다.
그렇다면 협동조합이란 대체 뭘까. 말하자면 이는 공통의 경제·사회·문화적 필요와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하는 이들이 결성한 자율 조직이다. 투자금의 액수와 상관없이 1인 1표의 의결권을 갖는다. 1주에 1표의 의결권을 갖는 주식회사와는 확연한 차이를 지닌다. 그만큼 지배구조가 투명하고 민주적인 게 특징이다. 그리고 협동조합은 영리활동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시민단체나 사회적 기업과도 성격을 달리한다.
다 함께 잘 사는 게 목표라면?
협동조합은 잉여금(수익금) 배당 방식도 주식회사와는 다르다. 배당은 이용 실적 배당과 투자금(출자금) 배당을 통해 이뤄진다. 단순히 출자금 액수에 따라 배당되는 방식이 아닌 얼마나 조합을 많이 이용했는지(소비자협동조합), 얼마나 많은 시간 조합에서 일했는지(노동자협동조합)에 따라 배당금이 정해진다는 말이다. 배당금의 전체 50% 이상은 이용 실적(혹은 노동 시간)에 따른 것이다. 조합원이 받는 배당금 총액도 출자금의 10% 미만으로 제한돼 있다. 3000만 원을 출자했다면 300만 원 미만의 배당금을 받을 수 있는 것. 배당률이 낮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는 은행정기예금 금리의 3배에 해당한다는 사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잉여금의 일정액을 반드시 적립해야 한다는 점이다. “목적이 무엇인가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주식회사처럼 상장해서 큰돈을 버는 것이 목표인가, 아니면 더 많은 이들과 함께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목표인가. 여기서 협동조합의 목표는 무조건 후자여야 한다. 적립된 잉여금으로 신규 고용을 늘려 더 많은 이들과 함께 혜택을 누리는 것이다”라고 김 이사장은 말한다. 참고로 몬드라곤협동조합의 경우 같은 규모의 주식회사보다 고용이 1.6배 더 많다.
이쯤 되면 협동조합이 결코 만만치 않은 조직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이윤이 목표가 아닌 기업인 것. 김 이사장은 강조한다. “살아남으려면 다른 기업과의 경쟁이 어느 정도 필요하겠지만, 일반 기업보다는 훨씬 느긋하다. 주가를 올리는 데 급급할 이유가 없다. 덜 각박한 것이다. 일반 기업과는 구성 원리와 목표 자체가 다르다. 그러니 구성원의 가치관 역시 달라야 한다.” 이 같은 ‘협동조합 정신’에 동의한다면, 은퇴 후에는 각박한 일상을 훌훌 털고 보다 여유롭고 인간적인 협동주의자로 살아가는 것은 어떨까.
INTERVIEW
“이 사회가 나를 고용한 것 같아 행복하다”
서울은퇴자협동조합 우재룡 이사장
Q1. 서울은퇴자협동조합에 대해 소개해달라.
베이비부머 세대를 위한 단체라고 생각하면 된다. 베이비부머는 전기(1955~1963년)와 후기(1964~1973)로 구분되는데, 전기 베이비부머 700만 명과 후기 베이비부머 900만 명을 더하면 총 1600만 명에 달한다. 이들은 향후 20년간 지속적으로 은퇴를 맞이할 것이다. 우리 조합은 이들 베이비부머 세대가 획득한 전문적인 지식이나 노하우를 활용해 이들이 다시 사회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Q2. 어떤 사업을 구상하고 있나.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재무 설계와 주거·여가와 같은 생애 설계. 은퇴를 걱정하는 이들에게 공정하고 전문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다. 둘째, 창업·재취업 기회를 알선하는 앙코르 프로그램. 당장의 생계를 위한 직업이라기보다 은퇴자들이 지닌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사회적 가치가 있는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다. 셋째, 은퇴 생활을 위한 금융·여행·의료 등의 공동구매. 현 시장에서는 시니어들을 그저 마케팅 대상으로만 여기고 있다. 제대로 권익이 보호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반드시 필요한 서비스를 이용하는 데도 너무 많은 비용이 든다. 이런 부분을 조합원들이 함께 공동구매를 통해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껏 우리나라 은퇴자의 노후 설계 콘셉트는 ‘개인’이었다. 이제는 모여서 은퇴 준비, 노후 설계를 하자는 것이 핵심이다. 혼자 모든 걸 처리하려 하다 보니 단절되는 것인데, 같이 하면 그럴 염려가 없다. 공동체 속에서 은퇴 설계를 해나가는 것이다.
Q3. 왜 협동조합 방식을 선택한 건가.
협동조합에 대한 구상은 늘 있었다. 그러다 지난해 12월 협동조합기본법이 시행되면서 행동을 개시한 것이다. 아직 협동조합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은 부족하지만 협동조합의 가치관이 나와 잘 맞는다. 나는 10여 년간 회사를 2번이나 창업한 경험이 있다. 주식회사의 비인간적인 면모를 잘 안다. 그러면서 늘 따뜻한 자본주의를 꿈꿔왔다. 혼자서만 빠르게 달려가고 싶지는 않다. 모든 베이비부머, 은퇴자와 함께 가고 싶다. 혼자 모든 리스크를 떠안고 가는 건 너무 힘든 일이다. 협력과 교류, 이런 것들이 고령화 극복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Q4. 협동조합을 시작한 이후 어려운 점은 없나.
협동조합은 장점이 많지만, 기업보다 운영하기가 까다롭다. 기업은 대표가 혼자 결정하고 추진하면 그만이지만 협동조합은 다르다. 계속 대화해야 한다. 천천히 끌고 가야 한다. 일반 기업보다 고도의 ‘경영 기술력’을 지녀야 하는 셈이다. 그리고 협동조합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반드시 경제적 자립을 이뤄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금을 경계해야 한다. 만에 하나 지원금을 받는다고 치자. 그다음 지원금이 떨어지면 어떻게 할 건가. 자생할 수 있는가가 관건이다. 모든 것을 정부나 제도의 역할로 풀려 해선 안 된다. 앞으로 자립성이 강한 큰 협동조합들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Q5 협동조합을 만든다고 했을 때 주위의 반대는 없었나. 당장 경제 사정이 어려워질 것을 우려한 아내의 반대가 컸다. 시쳇말로 ‘멘붕’ 상태였는데, 많은 이들이 우리 조합에 관심을 가지는 것을 보고 최근에는 조금 누그러졌다. 은퇴 후 협동조합을 만들고 나서부터는 내 생활 자체가 많이 달라졌다. 지금 당장 월급이 끊겼으니 예전보다 가난해진 게 사실이다. 그래서 소비를 줄였다. 차도 없애고 골프도 끊었다. 본격적인 은퇴 생활이 시작된 셈이다. 그렇지만 지금의 이 생활이 나는 매우 행복하다. 업무가 힘들 때도 있지만 그간 회사 생활에서 받은 스트레스와는 차원이 다르다. 개인이나 회사가 아닌 사회가 나를 고용했다는 생각에 자부심을 느낀다.
Q6. 앞으로의 목표는.
서울을 시작으로 부산, 대구, 광주, 대전 등 전국 10여 개 도시로 은퇴자협동조합을 확산시킬 예정이다. 5개 이상의 지역 단위 은퇴자협동조합이 설립되면 ‘한국은퇴자협동조합연합회’라는 중앙조직을 구축하게 된다. 덩치가 커지면 은퇴자를 위한 더 많은 일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지금 당장은 조직의 내실을 기하는 데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