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별명 '오일(oil) 유', 부부싸움 유발자래요"

"세상에서 가장 맑고 시원한 풍경을 얘기하라면 전 참외 얘기를 하고 싶어요. 예전엔 한여름 대야에 펌프로 물을 받아놓고 꼭지 딴 참외를 띄웠지요. 둥둥 뜬 참외를 보면서 생각했죠. 아, 세상에 이렇게 시원하고 밝은 풍경이 있을까? 신청곡 들려 드립니다…."

이런 코멘트, 요즘 라디오에선 여간해서 듣기 어렵다. 방송국마다 입담 센 에이스급 DJ들을 총출동시키는 오후 4시 프로에선 더더욱 그렇다. 작년 4월부터 SBS 러브FM (103.5㎒)에서 방송 중인 '유영재의 가요쇼(오후 4시 5분~6시)'를 제작·진행하고 있는 유영재(50)는 '고전적' 스타일로 살벌한 청취율 전장(戰場)에서 입지를 굳힌 전통·정통파 DJ다. 서울 광화문 카페에서 만난 유영재는 "라디오 본연의 인간미에 충실하다 보니 고정 청취자들이 생겨나더라"고 말했다.

1990년 CBS 아나운서로 입사한 유영재는 2000년부터 12년 동안 '가요 속으로'를 진행하며 '정통파 DJ'로 중년층 사이에 '라디오 스타'로 떠올랐고, 지난해 SBS에 전격 스카우트됐다. 시끌벅적한 게스트들이 나오거나 휘황찬란한 사연 뽐내기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경쟁 프로들과 달리 유영재는 코멘트와 선곡, 소소한 사연 소개만으로 두 시간을 채운다. "청취자들 반응이 힘이 돼요. '편안하다' '카페에 와 있는 듯하다' '첫사랑 오빠가 곁에서 시집을 읽어주는 것 같다'…. 호흡과 여백을 굉장히 중요시해요. 몇개의 키워드는 생각해 두지만 대부분 방송 코멘트는 애드리브입니다. 그 코멘트와 코멘트 사이에 일부러 2~3초간 여백을 두기도 해요. 처음엔 방송 사고인 줄 아는 분도 많았다네요."

이런 진행 스타일 때문에 '유영재의 가요쇼'는 부부갈등을 유발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유영재의 나긋나긋하고 리드미컬한 음색에 푹 빠진 부인을 보고 남편이 '이 느끼한 목소리 또 듣느냐'고 핀잔을 주면서 티격태격한다는 것. 그래서 붙은 별명이 '오일(oil) 유'다. "솔직히 전 잘 모르겠어요. 제가 이덕화씨처럼 '부탁해요오~'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하하! 그래도 '기름기 빼면 어떻게 유영재 목소리라고 하겠느냐'고 하시는 분 많아요. 기름도 식물성은 해롭지 않잖아요. 제 기름기는 말하자면 '불포화지방산'입니다."

유영재는 '가요쇼'를 시작한 뒤 지금껏 하루도 빠지지 않고 생방송으로 청취자들과 만났다. 그는 중견 가수들의 돌풍으로 올해 라디오에는 화합의 기운이 넘친다고 했다.

"청취자 사연에서 부쩍 하모니가 느껴져요. 아버지와 듣겠다며 조용필의 '바운스'를 신청하는 어린 학생, 딸이 좋아하는 노래라며 이효리의 '미스코리아'를 신청하는 어머니…. 라디오를 통해 세대와 세대를 이어주고 갈등을 봉합하는 데 일조하는 게 아닌가 싶어 뿌듯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