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숫자 전쟁… 손끝서 兆단위 매출 왔다갔다

지난 24일 서울 을지로의 SK텔레콤 사옥 22층. 요금제 기획을 담당하는 요금전략팀이 있는 곳이다. 한쪽에 자리 잡은 6개의 회의실에선 방마다 4~5명 단위로 열띤 회의가 벌어지고 있었다.

그중 한 방으로 들어서자 팀원들이 흠칫 놀라며 회의를 중단했다. 화이트보드는 물론 유리로 된 벽면에는 매직펜으로 그린 수식(數式), 문자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포스트잇도 군데군데 붙어 있었다. 김병두 매니저는 "여기 적힌 모든 것은 보안"이라며 "각 방에서 새 요금제가 만들어지지만 우리도 바로 옆 방에서 무슨 요금제를 만드는지 모른다"고 했다.

요금전략팀원은 16명. 이들 손끝에서 만들어지는 요금제를 통해 연간 12조원의 SK텔레콤 유·무선 매출이 나온다. KT와 LG유플러스도 10~20명 규모의 요금기획팀을 운영하고 있다.

◇요금제는 숫자의 싸움

올 들어 통신3사는 치열한 요금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망내외 유·무선 무제한 음성통화 요금제를 비롯해 데이터 선물하기, LTE 맞춤형 요금제 등 3사가 올해 내놓은 요금제만 100종(개별 요금 단위 기준)이 넘는다.

요금제의 핵심은 '숫자'다. 음성·데이터·문자라는 3가지 재료를 다양한 공식에 따라 조합해 시장에 내놓는다. 소위 '대박'이 나는 상품도 있지만, 자칫 계산을 잘못해 수십억원의 손해를 내기도 한다.

김중현 매니저는 "요금제를 만드는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숫자"라고 했다. 새 요금제를 만들기 전에 예상 매출은 얼마일지, 몇 명이나 가입할지 등 고객 데이터를 바탕으로 치밀하게 통계 프로그램을 돌린다.

SK텔레콤이 올 3월 선보인 가입자 간 무제한 음성통화를 할 수 있는 'T끼리 요금제'를 만들 때도 1년여간의 분석을 거쳤다. 항상 증가 추세였던 음성통화량이 작년 초부터 조금씩 하락하는 모습이 포착됐을 때 요금제 기획에 착수했다. 'LTE 스마트폰 요금제' 가입자 중 성별·지역·이용금액을 감안해 100만명을 추리고, 이들의 1년간 이용 패턴을 분석했다. 이 중 30~40%가 기본 제공 음성통화량을 초과해서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요금전략팀 관계자는 "분석을 해보니 새 요금제로 넘어올 경우 음성 초과 인원이 5% 수준으로 크게 줄었다"고 했다. 예상은 적중했다. T끼리 요금제는 출시 두 달 만에 가입자 200만명을 모은 '히트상품'이 됐다. 요금은 기존보다 3000원 올려받았지만 가입자 입장에서도 음성통화를 무제한으로 사용하기에 손해될 것이 없었다. 김병두 매니저는 "T끼리 요금제 출시 이후 음성통화량이 다시 증가 추세로 돌아섰다"고 했다.

숫자에 민감한 조직인데 통계학 전공자는 한 명도 없다. 전공은 다양했다. 경제·경영 전공자가 10명으로 가장 많고, 나머지도 신문방송·심리·어문계열·산업공학·기계공학 등 제각각이다. 평균 연령은 36세. 최저 29세부터 최고 43세까지 트렌드에 민감하고, 입사 경력도 기본 5년 이상으로 사내 돌아가는 사정을 꽤 아는 중견 직원들이 몰려 있다.

◇"소비자·시장보다 한발 앞서가야"

요금전략팀은 소비자보다 한발 앞서 움직인다. 사람들이 필요를 느끼기 전에 먼저 트렌드를 파악하고 요금제 설계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요금제팀에서 LTE 가입자의 평균 데이터 소진량을 산출해보니 2.2기가바이트(GB)였다. 하지만 LTE 요금제는 보통 5~10GB씩 데이터를 제공한다. 소비자의 불만이 감지되자, 즉각 요금제 작업에 착수해 '데이터 선물하기' '데이터 함께 쓰기'와 같은 요금제를 만들어냈다.

'요금제 전문가'가 귀띔하는 요금제를 고르는 팁은 무엇일까.

"청소년이나 노인처럼 일부 계층에 특화된 요금제는 확실히 저렴한 만큼 대상에 해당하면 무조건 가입하세요. 나머지는 본인의 이용 패턴을 꼼꼼히 따져보고 옮겨야 합니다. 정 모르겠으면 '스마트초이스(smartchoice.or.kr)' 홈페이지를 이용하거나 통신사 고객센터에 전화를 하세요. 그럼 요금을 최대한으로 아낄 수 있는 요금제를 추천해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