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原電폐쇄 여론 들끓었지만… 1만 번 넘는 대화로 주민 설득했죠"

스웨덴 남부의 항구도시 오스카르샴. 코발트 빛 바다와 초록 숲, 붉은색 오두막들이 어우러져 한 폭의 풍경화 같은 이 소도시는 스웨덴 원자력발전소 10기가 배출한 사용후핵연료 폐기물(1만2000여t)의 중간저장시설이 있는 곳이다. 오스카르샴의 '에스포'라는 작은 섬에는 500m 깊이의 '지하 세계'가 건설돼 있다. 방사성폐기물 최종 처분에 관한 기술을 연구하고 실제 상황과 똑같은 조건을 만들어 실험하는 '에스포 암반연구소'. 땅 위의 전원 풍경과 극적으로 대비되는 지하 실험실을 구경하기 위해 해마다 수천 명의 관람객이 찾아오는 명소다.

사이드 엥스트룀 SKB 부사장은 "마을 주민이나 관람객들에게 원자력이라는 무거운 이미지를 주지 않기 위해 지상은 스웨덴의 전형적인 마을 풍경으로 연출했다"고 말했다. SKB는 스웨덴의 방사성폐기물 관리를 전담하는 핵연료·폐기물 관리 회사. 원자력발전소 4곳이 1972년 공동으로 설립한 SKB는 스톡홀름과 사용후핵연료 중간저장시설이 있는 오스카르샴, 중저준위폐기물 최종 처분장이 있는 포쉬마크에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다.

화학공학자 출신의 엥스트룀 부사장은 스웨덴은 물론 세계 원자력계의 '여장부'다. 모로코의 항만도시 카사블랑카에서 태어난 그녀는 파리로 유학, 엔지니어링을 공부한 뒤 스웨덴 남자와 사랑에 빠져 스톡홀름으로 왔다. 스웨덴 정부의 원자력 안전조사관으로 11년 동안 일한 이 분야 베테랑. 혐오의 대상일 수밖에 없는 방사성폐기물을 관리하는 SKB로 옮겨온 뒤로는 스웨덴 국민은 물론 폐기물을 둘러싼 이해당사자들과의 '소통'을 담당하는 최고 책임자로 활약하고 있다. 프랑스에 방사성폐기물 관리 노하우를 전수한 공로로 프랑스 국가 훈장인 '레지종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지난 22일 SKB 스톡홀름 본사에서 만난 엥스트룀 부사장은 "사용후핵연료 등 방사성폐기물을 안전하게 처분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일보다 더 어렵고 중요한 일은 지역 주민의 동의를 받아내는 것"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하이테크 기술을 수출해 먹고사는 스웨덴에는 아주 많은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국민 1인당 전력 소비량도 연간 1만4000kWh로 세계 최고 수준이지요. 그 에너지의 50%가 원자력에서 오는 만큼 국민에게 원자력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매우 중요했어요."

1979년 미국에서 발생한 TMI 원전 사고를 비롯해 체르노빌(1986년), 후쿠시마(2011년) 원전 사고로 인해 원전 폐쇄 여론이 전 세계적으로 높았지만 엥스트룀은 '대화'를 통해 지역 주민을 설득했다. "특히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원전 관련 시설을 꺼리지요. 여성과 청년들은 설명회에도 거의 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일방적인 대규모 설명회 대신 작은 미팅 형식으로 그들을 찾아갔습니다. 오스카르샴에서 주민을 만난 횟수가 1만1000번입니다(웃음). 이때 반대 의견을 내놓는 사람들을 부정적으로 대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의 '브레이크'가 안전한 원전 기술을 개발하는 데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죠."

수도 스톡홀름에서 북쪽으로 150㎞ 떨어진 포쉬마크에 위험도 높은 고준위폐기물 최종 처분 시설을 만들기로 결정한 것이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직후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스웨덴 사람들은 자연과 환경을 매우 중요시하지만 실용적이고 현실적인 결단을 내리는 데도 주저하지 않습니다. 원전 폐지가 경제적으로나 환경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국민이 내린 거죠."

현재 스웨덴에서는 중저준위폐기물을 배에 실어 포쉬마크에 건립된 방사성폐기물처분장에 영구 매장한다. "폐기물이 10만년 후에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하며 가능한 시나리오를 모두 구상해 연구합니다. 원전과 관련해 25년간 일했지만 지금도 끊임없이 공부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