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추위에 죽어버린 복숭아나무들… 올 여름 과일값 심상찮다

"저기 나무들 가지가 하얗죠? 다 얼어 죽은 겁니다."

지난달 29일 충북 음성군 감곡면에서 15년째 복숭아 농사를 짓는 김종오씨는 한숨을 내쉬며 담배를 꺼내 물었다. 김씨는 "나뭇가지가 짙은 갈색이고 잎이 많아야 나중에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했다. 3만3000㎡(1만평) 땅에서 자라난 1000여 그루의 복숭아나무 중 절반 정도만 갈색을 띠었다. 나무들 사이엔 잘라내고 그루터기만 남은 나무가 군데군데 눈에 띄었다. "나무들이 죽어버려 해충이 생기지 않게 베어내고 태운 겁니다." 음성군 감곡면 오향리와 주천리 등지의 복숭아 농가 주변에는 잘라낸 복숭아 나뭇가지들이 쌓여 있었다.

◇이상 기온으로 복숭아·자두·포도 피해 심각

지난겨울과 올봄까지 이어진 이상(異常) 한파로 복숭아·포도·자두 등 대표적인 여름 과일 농가 피해가 심각하다. 가을에 수확하는 사과·배는 상대적으로 나무가 튼튼해 아직까지 드러난 피해는 덜하지만 농가들이 걱정하기는 매한가지다. 복숭아나무는 빨리 자라는 대신 날씨 변화에 민감하고 약하다.

충북 음성군의 경우 복숭아나무의 30% 이상이 동해(凍害)를 입은 것으로 파악됐다. 충북 충주시도 전체 복숭아 재배 면적의 30~40%가 피해를 본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김씨는 "아예 날씨가 추우려면 계속 추우면 괜찮은데, 영하로 떨어졌다가 다시 영상 10도까지 올라가는 날씨가 자주 반복됐고, 봄철 새순이 날 때 눈이 내리기까지 하니 나무들이 죽어 버린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는 4월 중순 눈이 내리기도 하고, 수차례 기온이 영하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특히 올해 피해는 4년 전 동해 피해를 복구하던 상황에서 발생해 더욱 심각하다. 당시 갑작스러운 이상 한파로 상당수 나무가 얼어 죽어 복숭아 묘목을 다시 심었는데, 올해 이 나무들이 또 죽어버린 것이다. "복숭아나무는 3~4년짜리가 가장 날씨에 민감해요. 4년 전 살아남은 나무뿐 아니라 당시 새로 심은 나무까지 죽었습니다. 벌써 복숭아 농사를 포기하고 인삼 농가에 땅을 빌려주는 사람까지 생기고 있어요."

상황은 자두, 포도 농가도 비슷하다. 여름 과일은 보통 4월쯤 꽃이 피고 5~6월부터 열매를 맺는다. 하지만 지난 4월 꽃이 필 때쯤 갑자기 기온이 내려가 꽃들이 제대로 피지 못했다.

이 때문에 전국 자두의 35%가 나오는 경북 김천 일대 자두농장에는 지금쯤 자두가 열려있어야 하지만 열매가 맺힌 나무가 많지 않다. 열매가 맺힌 것도 작년의 절반 크기도 안 된다. 자두를 재배하는 최수동 사장은 "꽃이 필 시기 눈이 두 번이나 오고 서리까지 내렸다"며 "평년보다 30% 가까이 출하량이 줄 것 같다"고 말했다.

포도나무도 순이 올라와 대(줄기)를 뻗은 상태로 한파를 맞아 그 상태로 죽어버린 것이 많다. 겉으로는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열매를 맺지 않는 죽은 나무라는 것이다. 충북 영동군 황간면에서 1만9834㎡ 규모로 포도 농사를 짓는 박삼수씨는 "지금쯤이면 포도가 열리기 시작해야 하는데 올봄 냉해로 꽃이 늦게 피어 대만 겨우 올라오고 있다"고 말했다.

◇여름 제철 과일 가격 비상

대표적인 여름 과일인 복숭아·자두·포도의 부진한 작황 때문에 올여름 과일 가격은 크게 오를 것으로 보인다. 특히 복숭아는 수입도 거의 하지 않아서 작황이 가격에 그대로 반영된다. 경기·충북 등 중부지역에서 복숭아를 유통하는 햇사레과일조합공동사업법인 안성기 대표이사는 "올해는 출하 물량이 30% 정도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강원도 원주시도 복숭아 농가의 42%가 피해를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복숭아 가격은 최소 15~20% 정도는 오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자두를 유통하는 경북 김천시 구성농협 강영구 상무는 "작년보다 출하 시기도 늦고, 가격도 15~20% 정도 오를 것 같다"며 "값은 비싸겠지만 열매는 오히려 평년보다 작을 것"이라고 말했다.

포도는 출하 시기가 평년보다 10일 정도 늦을 것으로 보인다. 하우스 포도는 7월 중순부터, 일반 포도는 8월 말이 돼야 출하가 가능하다고 포도농장 관계자들은 말했다. 가격은 10% 이상은 오를 것으로 보인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이 상태로라면 포도 물량이 10~15%, 심한 곳은 50% 이상 감소해 가격이 많이 오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