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누구를 위한 복지인가

“또 자살했다구? 이유가 뭐래. 과로사? 개인사?”

다급하게 전화를 받고 있는 어느 사회복지단체장의 전화목소리를 듣고 순간 전율이 왔다. 또 다시 비극이 발생했구나. 올 들어 네 번째. 정부가 팔 걷어 부친 복지정책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사회복지사를 교육시키는 교육기관의 장으로서 가슴을 짓누르는 무거운 책임감이 밀려왔다. 매번 사고가 나면 사후약방문에 목숨거는 정부와 지자체, 그러나 한순간에 정책 입안 없이 사실 자체가 사라져버리는 분위기 속에서 무엇을 얻어낼 수 있을까.

사회복지사들사이에서 유행하는 ‘깔대기이론’이란 것이 있다. 복지공약과 전시행정 등으로 사회복지정책이 쏟아져 나오면서 마치 깔대기처럼 한두명의 직원들이 늘어난 업무를 모두 처리해야하는 상황을 말하는 것이다. 복지는 이미 거스를 수 없는 국가대계가 되었고 대한민국 현대 사회의 거대한 물줄기가 되어 세상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IMF외환위기로 실업자들이 대거 양산되던 시절에는 복지 수혜자가 급증하여 사회복지사들의 깔대기를 채웠었다. 지금은 당시의 양적인 팽창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서비스의 종류 자체가 확대되었다. 당장 올해 전면적으로 실시하는 무상교육만해도 수혜대상이 0-5세로 확대되면서 2월 한달간 보육신청자가 1400명까지 급증하였고 사회복지사들의 퇴근시간은 11시를 넘어서기가 일수였다. 그러다 수혜자 한 명이라도 오류가 생기면 항의와 욕설, 심지어 폭력까지 휘두르는 민원에 시달리기도 한다. 서류는 서류대로 쌓이고 현장에서 부딪히는 민원 또한 만만치 않으니 하루 하루 쌓여가는 깔대기업무는 줄어들지 않는다. 정신적인 고통은 그와 비례해서 쌓여가고 급기야 벼랑 끝에 서는 수많은 사회복지사들이 또다른 비극을 예고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정부가 나서서 2014년까지 사회복지 공무원을 7000명 충원하겠다고 했으나 이는 순수한 인력의 수혈이 아니라 기존 공무원 인력의 재배치 1800명, 자연결원 충원 800명을 제외하면 4400명 정도를 증원하는데 불과하며 이 수치로는 엄청나게 늘어난 사회복지 인력을 감당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사회복지계 내에서는 불만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세수가 턱없이 부족해진 현 시점에서 정부가 무조건 일자리를 늘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기업체들도 앞다투어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늘리고 있다. 정부의 복지정책에 크게 보탬이 될듯하니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인력은 그대로인데 프로그램만 많아지면 불만이 가중되는 것은 당연하다. 기업체들이 정부의 인력수급에 대한 짐을 함께 나누면 어떨까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인력수급만이 능사일까. 사회복지사들에 대한 형편없는 처우도 현장에서 불만을 키우는 하나의 요인이다. 사회복지사 둘이 결혼하면 바로 생활보호대상자 라는 말이 있다.

사회복지사가 박봉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그런 박봉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하는 일은 매우 전문적인 분야라는 사실은 간과하고 있다. 사회복지사들이 학습하는 분야는 단순한 봉사업무가 아니다. 엄청난 양의 서류를 처리하고 분류하고 민원을 상대하며 불만을 해소해주고 때로는 인간적인 상담도 하고 정부의 예산에 맞춰 프로그램을 개발하거나 관리하면서 복지 전반 업무를 담당한다. 다른 부서와 달리 상대하는 민원이 대부분 저소득층, 장애인 등 소외계층들이다보니 가슴아픈 일들을 자주 접하게 되고 그런 과정에서 멘탈이 자극받고 급기야 붕괴되는 상황으로 발전하게 된다. 올해 세 번째 사회복지사의 사망이후 정부는 사회복지사 수당 4만원 인상분을 제시하기도 했지만 처우개선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인력수급, 처우개선이 이루어 진다해도 사회복지사를 여전히 슬프게 하는 것이 있다. 바로 인식의 개선이다. 사회복지사들을 전문가로서가 아니라 어려운사람들 뒤치다꺼리 하는 사람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사회복지사는 확실한 전문가다. 
 
사회복지사가 되기위해서는 대학에서 공들여 전공을 마치거나 사회복지관련 교육기관에서 최소한 1년여의 세월을 빠듯하게 학습해야 한다. 과제도 제출해야하고 중간고사 기말고사 시험도 보고 현장실습까지 해야만 졸업이 가능하다. 학습중에는 지식을 얻는데 그치지 않고 사회복지사가 지녀야 할 소명의식까지 함께 교육을 받는다. 사회복지사는 소명의식이 없이는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사회복지사의 잇단 사고 이후 최근 지자체들이 앞다투어 힐링캠프라는 것을 신설, 사회복지사들의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해결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 일반인들의 인식 개선이 함께 이루어진다면 진정한 복지가 실현되지 않을까 싶다. 아직은 양적인 팽창에만 치중한 나머지 무늬만 복지일 뿐 진정한 복지의 실현은 너무도 먼 듯 하다. 민원인들의 욕설과 폭력에서 안전하게 대처할 수 있으려면 인식의 개선 또한 선행되어야 할 복지정책의 미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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