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가 답한다, 오늘의 승자가 누구일지…

지난 1월 호주 멜버른에서 열린 '2013년 호주오픈'. 세계 랭킹 1위 세르비아의 노박 조코비치(Djokovic·26)와 3위 영국의 앤디 머레이(Murray·26)가 결승에서 맞붙었다. 관객들은 누가 우승할 것인지를 놓고 숨죽였지만, 컴퓨터는 누가 우승할지 훨씬 근접하게 알고 있었다. 지난 8년간 양 선수의 습관과 경기 데이터를 이미 샅샅이 분석한 뒤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이 하는 경기를 100% 예측할 수는 없는 법. 컴퓨터는 조코비치가 머레이를 이길 수 있는 세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4~9번 이어지는 랠리 때 61% 이상 득점할 경우 ▲30-30 혹은 듀스일 때 78% 이상 득점할 경우 ▲첫 번째 서브에서 77% 이상 득점할 경우. 조코비치는 이 중 두 가지 조건을 만족하면서 머레이를 꺾었다. 컴퓨터는 머레이에게도 승리할 수 있는 세 가지 조건을 제시했지만, 그는 단 하나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호주오픈 홈페이지가 제공하는 '슬램 트래커(Slam Tracker)'라는 서비스의 일부다. 대회의 공식 기술 파트너인 IBM은 지난 8년간 4100만개의 선수 경기 데이터를 바탕으로 이 같은 정보를 제공해오고 있다. 럭비 경기에는 '트라이 트래커(Try Tracker)'라는 이름으로 유사한 서비스를 진행한다.

관객들은 경기 화면과 함께 두 선수가 주어진 조건을 얼마나 충족시켜 가는지를 실시간으로 지켜보며, 승패를 가늠할 수 있다. 과거의 데이터와 눈앞의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조합해 가면서 과학적으로 승률을 계산해내는 것이다. 한국IBM 이상호 상무는 "팬들이 지금까지의 수동적인 관람에서 벗어나, 더욱 깊이 있는 정보를 바탕으로 적극적으로 경기를 감상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고 말했다.

스포츠가 빅데이터를 만나 점차 첨단화하고 있다. 실력과 운(運)이 있어야 승리한다는 두루뭉술한 얘기는 이제 구식이다. 컴퓨터는 과거의 경기 기록을 치밀하게 분석해, 어떤 상대를 만났을 때 몇 %나 승리할 가능성이 있는지를 칼같이 내놓는다. 승리를 위해선 어떤 실수를 얼마나 줄여야 하고, 어떤 상황에서 점수를 따내야 하는지 냉철하게 수치로 제시한다.

이를 위해선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선수들의 동작을 하나하나 추적해, 데이터로 저장하는 것이 중요하다. IBM은 '세컨드 사이트(Second Sight)'라는 기술을 이용해 호주오픈에 참가한 선수들의 동선(動線)에서부터 총 이동거리, 서브를 넣을 때의 속도, 공이 떨어진 위치 등 모든 것을 데이터화한다.

빅데이터는 선수들의 부상을 막는 데도 활용된다. 벤치에 앉은 감독이 선수들의 모든 상태를 알 수는 없다. IBM은 영국의 유명 럭비팀인 '레스터 타이거스(Leicester Tigers)'에 예측 분석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경기장을 누비는 선수들의 몸에 작은 측정 장비를 달았다. 경기 도중 누가 상대방과 충돌했고, 점프 혹은 발차기를 몇 번이나 하는지, 얼마나 달렸는지 등을 실시간으로 측정한다. 선수가 지치면 부상당할 확률도 자연히 높아진다. 감독은 이를 바탕으로 선수들이 심하게 지치거나 다치기 전에 교체해준다. 팀의 앤드루 셸턴(Shelton) 스포츠과학 담당자는 "점차 팀 간의 경쟁이 심해지는 만큼 선수들을 최대한 부상에서 보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도 스포츠에 빅데이터를 접목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2012년엔 트위터를 통해 '한국 프로야구에서 왜 4할 타자는 사라졌는가'란 질문에 답하기 위해 일반인 60여명이 지난 30년간의 국내 프로야구 데이터를 집단 분석해 학문적인 성과를 내기도 했다. 올 초엔 정재승 KAIST 교수 주도로 야구 데이터를 통계학·심리학·사회학 등 다양한 시각으로 연구하는 '한국야구연구학회(SKBR)'가 설립됐다. 정 교수는 "컴퓨터 속도가 빨라지고 광범위한 빅데이터를 분석할 수 있는 방법론이 개발돼 야구연구학회를 창립하기 더없이 좋은 환경"이라고 밝혔다.

IBM 제레미 쇼(Shaw) 미디어엔터테인먼트 사업분석 담당자는 "스포츠는 더 이상 게임이 아니다"면서 "데이터와 숫자에 따라 움직이는 점점 과학적인 분야가 되어가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