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흔일곱, 내 자연은 시들 줄을 모른다네

동글동글 말리며 벽으로 기어오르는 넝쿨, 자정쯤 되면 팽그르르 돌며 피어나는 달맞이꽃, 호박, 수세미, 오이, 박주가리…. 올해 77세인 '설악의 화가' 김종학의 거대한 화폭은 늘 생명으로 꿈틀 꿈틀거린다. 그가 12일부터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에서 '진정(眞情)-김종학 희수(喜壽)전'을 연다. 70년대 판화부터 80~90년대의 인물화, 최근작까지 생애를 아우르는 60여점은 물론 그가 수집한 전통 농기구도 전시장에 나왔다.

"전시를 앞두면 떨린다"는 것이 괜한 말이 아닌 듯 노작가의 얼굴은 홍조를 띠었다. "시인이셨던 할아버지는 '시인은 70세, 화가는 60세부터가 진짜'라고 하셨지요. 77세가 된 이제야 그게 무슨 말씀인지 알겠어요. 피카소, 마티스도 여든, 아흔, 죽는 날까지 그렸잖아요."

작가는 서울대 미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일본과 미국에서도 공부했다. 추상화에 몰두하며 30대를 보내다 경제적·가정적 어려움을 겪었다. 그때 "죽으려고 폭포 위에 섰다가 산중의 할미꽃을 보고 '삶'을 택했다". 그렇게 설악산으로 들어가 설악의 자연을 그린 것이 올해로 34년째다.

그는 늘 한결같다. 수천만원어치 물감과 재료를 곁에 쌓아두고 "색은 혼합되지 않은 그 자체가 가장 선명하고 강렬하다"며 물감을 짜내 섞지 않고 바로 캔버스에 그리는 작업 스타일도 그대로다. 수십년 보고 또 본 자연이 질릴 만도 할 텐데 그는 "맨드라미, 할미꽃, 엉겅퀴…, 전부 늘 신비롭고 아름답다"고 했다. "꽃 그림만 그린다고 타락했다는 사람도 있어요. 하지만 진짜 꽃을 보면 그리 생각 못 하지." 그는 요즘도 하루 10시간씩 작업한다. "한참 발광하며 밤을 새우고 난 아침 '아, 열중했구나' 할 때가 가장 행복합니다."

그의 그림은 '생명과 번성'의 이미지로 특히 돈을 벌어야 하는 기업들에 인기였고, 그 자신도 "쌓아둘 데가 없어 그만뒀다"고 할 정도의 컬렉터였다. 예술적 성취, 부, 명성. 더 이루고 싶은 게 있을까.

"목판만이 갖는 힘이 참 좋은데 옛날엔 돈이 없어서 목판화를 못 했어요. 또 여태까지 못 해본 게 조각이에요. 죽을 때까지 10~20호 이런 거보다 100호, 200호짜리 대작을 계속할 거예요." 노화가의 다음 모습이 더 기다려진다. 전시는 7월 7일까지. (02)2287-3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