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ECD 국가 중 웅담채취 위해 곰 사육하는 건 한국뿐"

"몇 년 전 웅담 채취용으로 캄보디아에서 베트남으로 밀수되던 중 구조한 작고 어린 말레이곰 '조지'는 보러 갈 때마다 부쩍 자라 있어요. 철창에 갇혀 학대받았다면 그렇게 못 자랐을 거예요. 웅담을 채취하기 위해 비좁은 우리에서 곰을 사육하는 건 '비인간적'입니다."

지난해부터 아시아 태평양 지역 내 '야생 곰 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는 세계동물보호협회(WSPA) 루크 니콜슨(38) 국장이 한국을 방문했다. 세계동물보호협회를 대표해 한국을 찾은 그는 지난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민주당 장하나 의원이 발의한 '사육곰 관리를 위한 특별법안'에 지지를 표명했다. 이 법안은 웅담용 곰 사육 시설 폐쇄 및 사육곰 관리 방안 등을 담고 있다.

루크 국장은 "세계에서 한국과 중국 두 나라만이 웅담 채취를 위해 곰을 사육하고 있고, OECD 국가 중에는 한국이 유일하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는 전국 53개 사육장에 곰 998마리가 웅담 채취용으로 사육되고 있다. 1981년 산림청에서 농가 소득 증대용으로 곰 사육을 장려하면서 말레이시아 등에서 곰을 수입하기 시작했다. 4년 만인 1985년 국제적으로 곰 보호 여론이 높아지자 정부는 곰의 수출입을 금지했다. 다만, 국가 장려로 곰을 수입했다가 판로를 잃은 농가에 한해 10세가 넘은 곰은 살처분해 웅담을 채취할 수 있도록 했다. 이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당시 수입된 곰들이 농가에서 자체 번식해 왔다.

특히 농가에서 사육되는 곰의 대부분은 멸종위기종이자 천연기념물인 반달가슴곰이다. 야생에서 서식 중인 반달가슴곰은 20마리 이하로 알려졌다. 한쪽에선 웅담 채취를 위해 곰을 사육·도살하고, 다른 쪽에선 곰을 복원·방사해 개체 수를 늘리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곰을 사육해도 된다는 입장을 가진 사람 중 일부는 "살아 있는 곰에게서 쓸개즙을 채취할 때 곰은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루크 국장은 자신의 둘째 손가락으로 허리에 주사를 놓는 시늉을 하며 "살아 있는 곰의 몸에 큰 바늘을 꽂아 쓸개즙을 채취한다. 당신은 고통스럽지 않을 수 있겠느냐"라고 말했다. 그는 "웅담을 위해 도살을 기다리며 좁은 철창 안에 갇혀 있는 곰의 일상은 당연히 고통스러울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동물보호협회는 지난 20년간 인도의 '춤추는 곰'과 파키스탄의 '곰 상대 투견(鬪犬)'을 중단시키는 등의 활동을 해왔다. 루크 국장은 "라오스, 베트남 등의 곰 사육 농가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좁은 철창에서 신체적·심리적 문제를 겪는 곰들을 보며 '누구도 이렇게 잔인한 장면을 보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2011년 한길 리서치가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우리나라 국민의 89.5%가 "곰 사육과 웅담 채취를 위한 도살에 반대한다"고 답했다. 그는 "국민 대다수가 곰을 보호하자는 주장에 동의하고 있고, 보호 법안이 발의된 지금이야말로 아시아―태평양 지역 국가들의 변화를 위해 한국이 선도적 역할을 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루크 국장은 "곰은 개 못지않게 영리하고 똑똑하다"며 "한국 국민이 이번 특별법 통과에 힘을 보태준다면 영리한 곰들이 한국 사람들을 평생 기억하게 되지 않을까요?"라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