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의 현장을 꿰맸다, 문화 名所가 됐다

'종로 03'번 마을버스 종점인 낙산공원 입구에서 내려와 세 번 길을 꺾으면 서울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풍경이 펼쳐진다. 좁고 가파른 내리막길 양쪽에 8~10평 정도의 조그만 '가게'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때 이른 더위 속 조금씩 열어 놓은 여닫이문 너머로 재봉틀과 옷가지, 실뭉치, 그리고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의 희끗한 머리카락이 보인다. 원단을 실은 오토바이는 부지런히 골목을 오르내린다. 소규모 봉제 공장들이 밀집한 서울 종로구 창신동의 '낙산 봉제거리'다.

◇옷 한 벌이 하루에 만들어지는 곳

"서울에 수십 년 살면서도 이런 곳은 처음이라며 놀라는 분들이 많아요." 지역 예술가 집단 '러닝투런'의 홍성재(30) 공동대표가 말했다. 창신동 산동네는 1970년대부터 들어선 봉제 공장이 골목마다 빼곡히 도사리고 있는 곳이다. 현재 3000개가 넘는다. 서울의 대표적 서민 동네이자 화려한 동대문 의류시장의 '배후 기지', 옷 한 벌이 하루 만에 금방 만들어지는 '마법과도 같은 곳'이다.

창신동 마을 전체가 박물관 전시실로 변신했다. 서울역사박물관이 7월 21일까지 여는 '메이드 인(Made in) 창신동'전(展) 때문이다. 근현대 일상사·생활사의 온갖 인문학적 상상력이 동원된 이번 전시는 박물관의 전시(1부)와 러닝투런이 개발한 창신동 투어를 통해 주민들이 만든 작품을 감상하는 '도시의 산책자'(2부)가 함께 진행된다.

'도시의 산책자'에선 주민들이 만든 '기억의 지도', 사진관에서 쓰던 등나무 의자 주변에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바뀌는 사진들을 전시한 '청파사진관', 화가 박수근과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의 집터에 새로 마련한 표지석과 설치물을 볼 수 있다.

◇추억의 골목들이 모두 '전시물'

무엇보다 매력적인 것은 사람 냄새 풍기는 미로 같은 골목과 그 사이에 사금파리처럼 박힌 추억의 장소다. 그 자체가 전시물이다. 28년간 삼거리 골목길을 지켜 온 '시온이발소'를 지나면 거대한 채석장의 흔적인 '절개지'가 나타난다. '당고개 공원'에서 드라마 '시크릿가든'에 나온 길라임의 집을 보고 나면 가파른 언덕 아래로 꼬불꼬불 나 있는 '회오리길'이 다음 차례를 기다린다. 재단과 봉제에 필요한 온갖 부자재들을 파는 '홍표실집' 다음엔 사람마다 기억이 조금씩 다른 적산가옥인 '미스터리 빈집'이 사람들을 맞이한다.

이 모든 장소에서 미술 전시회에서나 볼 수 있던 '오디오 가이드'를 이용할 수 있다. 장소에 대해 끈끈한 추억을 지닌 창신동 주민들이 전부 녹음했다. "목욕탕 1층엔 신혼집이 있었는데 말이야…." "회오리길에선 하이힐을 벗고 손에 들어야 내려갈 수 있었지…." "홍표실집 앞에선 늘상 장기판이 벌어지는데 그게 참…."

서울역사박물관의 전시는 이 동네의 역사적 변천 과정을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1908년 대한제국 지적도부터 1960년대 창신동 풍경을 촬영한 홍순태의 사진, 창신동 골목에 수없이 버려진 자투리 원단과 심지로 꾸민 설치작품을 전시했다. 봉제 공장과 쪽방을 실물 크기로 재현한 공간도 있다. '어떤 사람들 눈에는 지저분한 곳으로 보일 수도 있으나 이곳은 진정 사람 사는 곳이야' 같은 주민들의 육성 인터뷰도 상영된다.

창신동 주민들이 해설사로 참여하는 골목 답사는 7월 20일까지 토요일 오후 2~4시에 이뤄지며, 오전 10시~오후 5시(월요일 제외)에는 오디오 가이드를 들으며 각자 답사에 나설 수도 있다. 답사 문의 070-7626-5782, 박물관 전시 문의 (02) 724-027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