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씨는 말한다, 그들의 신념을

한 시대의 운명을 결정했던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의 글씨는 어땠을까.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갤러리에서 '홍익인간 1919-2013: 정전 60주년 기념 대통령 휘호전'이 다음 달 7일까지 열린다.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이자 건국 대통령 이승만과 임시정부 주석 김구부터 윤보선, 박정희,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등 역대 대통령, 또 영부인 육영수, 이희호, 손명순 여사의 휘호까지 총 50여점이 전시 중이다.

전시장에는 정치적 경쟁자였던 이승만과 김구, 각각 근대화와 민주화를 상징했던 박정희와 김대중의 글씨가 함께 걸려 있다. 역대 대통령 중 가장 글씨가 뛰어났던 이승만 대통령의 화려하고 정교한 '민위방본(民爲邦本·국민은 나라의 근본·사진)'과 큰 기교 없이 우직하게 써내려 간 김구 주석의 '홍익인간'은 명징한 대조를 이룬다. 이승만 대통령이 조선일보를 방문해 쓴 글씨에는 '비바람에 흔들리는 때, 나라를 위하여 언론을 창달하라. 조선일보를 위해 쓰다'라고 적혀 있다.

군더더기 없이 담백한 박정희 대통령의 글씨에는 신앙과 같았던 조국 근대화의 열정이, 오랜 탄압에도 꿋꿋이 신념을 지켰던 김대중 대통령의 글씨에는 그의 '행동하는 양심'이 배어 있다. 전두환, 노태우 두 대통령은 퇴임 뒤에도 구설이 끊이지 않은 탓에 휘호도 구하기 어려웠고, 결국 예술의전당에 서 있는 비석 탁본을 걸었다. 여백을 거의 남기지 않고 굵고 진하게 종이를 가득 채운 김영삼 대통령의 글씨도 흥미롭다. 전시를 보고 나면 정말 글씨는 그 사람을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02) 726-4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