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마석에 갈고 세탁기에 돌린 후 CT 촬영·낙뢰 테스트까지 750여 지옥 실험… 20만대 부숴보고 휴대폰 낸다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삼성전자 디지털시티(수원사업장). 5개의 연구소에 연구 인력 2만1000명이 모여 있는 삼성전자 연구 개발의 심장부다. 그중 TV 분야 연구 개발을 담당하는 디지털연구소(R4)와 마주 보고 있는 2층 건물로 삼성전자 직원의 안내를 받아 들어갔다. 세계 1위 삼성전자 휴대전화사업부가 사상 처음으로 파일럿센터(Pilot Center)를 언론에 전면 공개하는 순간이었다. 센터는 삼성전자 휴대폰이 세상에 나가기 전에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관문이다. 이곳에서 750여개 테스트를 통과한 제품만 시장에 나갈 자격을 얻는다.

센터로 들어서서 왼쪽에 있는 실험실 문을 여니 여기저기서 '쿵' '쾅' 소리가 들렸다. 다양한 강도의 충격과 하중에 휴대폰이 얼마나 견디는지 테스트하는 곳이었다. 휴대폰 10여대가 들어 있는 장비 안에서 로봇 팔이 1m 정도 높이에서 휴대폰을 밀어 바닥에 떨어뜨렸다. 성인 바지 주머니의 위치를 감안한 높이다. 바닥에 떨어진 휴대폰이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다시 위로 올라오자 로봇팔은 다시 휴대폰을 밀어 떨어뜨렸다. 제품 기술팀 이상규 상무는 "수백 번 반복해 떨어뜨려서 파손 정도를 확인한다"고 말했다.

그 옆에선 직원들이 직접 휴대폰 낙하 실험을 하고 있었다. 충격에 약한 모서리가 먼저 땅에 닿도록 떨어뜨리고 파손 정도를 확인했다. 떨어지는 바닥 재질도 화강암과 강철로 달리 실험했다. 한 직원은 휴대폰이 땅에 부딪히는 순간을 고속 카메라로 촬영한 화면을 살펴보고 있다. 커버가 벗겨지고 배터리가 튀어나왔다. '불량이냐?'고 묻자 "큰 충격을 받으면 배터리가 본체에서 떨어져 나와야 좋다"고 했다. 충격을 받아 배터리가 휘어지면 폭발하거나 불타는 경우가 있는데, 배터리와 튕겨 나오면 그런 사고가 날 확률이 준다.

다른 실험실 장비 안에선 휴대폰이 계란 크기만 한 노란색 세라믹 덩어리와 섞인 채 돌아갔다. 기계 안에서 1시간쯤 돌아간 휴대폰을 꺼내서 보니 몇 년 쓴 제품처럼 금속 테두리가 하얗게 변해 있다. 경도(硬度)가 높아 강철 연마용으로 쓰는 세라믹 연마석과 마찰시켜 도장이 얼마나 버티는가를 확인하는 것. 기계 안에서 1시간은 열쇠 꾸러미·동전과 함께 주머니에서 1년을 굴러다닌 것과 같다고 했다.

파일럿센터는 '휴대폰의 지옥'이라고 불린다. 이곳에선 매년 약 200여개 모델의 휴대폰을 테스트한다. 삼성전자 신종균 사장은 "한 모델당 약 1000개의 제품을 테스트에 쓴다"고 말했다. 연간 새 휴대폰 20만대를 품질 테스트란 이름으로 부수고 깨뜨린다는 말이다. 개당 가격을 50만원으로 잡으면 연간 1000억원어치 휴대폰을 버리는 셈이다. 이런 지옥 같은 환경을 통과한 제품이 삼성 휴대폰의 경쟁력인 것이다.

센터 내부엔 실험실 70여개가 있었다. 실험실 곳곳에서 상상하지 못했던 설비가 있었다. 음향실험실 내부 '무향실(無響室)'도 그중 하나다. 무향실로 들어가자 귀가 먹먹해지고 어지러웠다. 소리가 전혀 없는 완벽한 무음(無音) 상태이기 때문이었다. 무향실 벽과 천장, 바닥을 소리를 흡수하는 흡음재(吸音材)가 덮고 있다. 외부 소음은 들어오지 못하고 안에서 나오는 소리는 흡음재가 완전히 먹어버린다.

이상규 상무는 "평소 느끼는 못하는 잡음과 소음에 익숙해진 귀가 혼란을 느껴 어지러운 것"이라고 말했다. 무향실에선 휴대전화의 음성인식률을 테스트한다. 우리말뿐 아니라 영국·중국어 등 다양한 언어로 스마트폰에 말을 걸고 정확한 인식률을 테스트하는 것이다.

드럼세탁기와 수조같이 평범한 테스트 장비도 있다. 휴대전화를 옷에 넣은 채 세탁기에 넣는 경우를 감안한 테스트다. 드럼세탁기 속에서 30분을 돌리고 말린 다음 제대로 작동해야 합격이다. 수조 속에선 20초를 견뎌야 한다. 물에 빠진 휴대폰을 빨리 꺼내 드라이로 말리면 대부분은 문제없이 사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발생 가능성이 극히 낮은 낙뢰 테스트도 있었다. 직접 벼락을 맞는 것은 아니고, 충전을 위해 코드를 연결해 놓았을 때 번개가 전선을 타고 흐르는 것을 견디는 테스트다.

방사능 경고 표시가 붙어 있는 실험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단층촬영(CT) 장비가 있었다. "최신 스마트폰은 부품이 수천 개입니다. 함부로 분해하다간 부스러져 가루가 됩니다. 잘못하면 실험 도중 발생한 불량의 원인을 영원히 찾지 못합니다." 휴대전화기도 사람처럼 CT 촬영으로 내부를 들여다보는 시대이다.

스마트폰 시대가 되면서 파일럿센터는 훨씬 바빠졌다. 피처폰을 주로 만들던 2009년 이전에는 150여개에 불과했던 테스트 항목이 5배로 늘었다. 신종균 사장은 "더 완벽한 제품을 위해 더 많은 테스트를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