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김신영 기자의 별★ 사람] DMZ 60년, 유일한 민간인 거주 지역 '대성동'의 60년 토박이 주민 만나보니

한반도의 허리를 가로지르는 광활한 불가지(不可知)의 땅 비무장지대(DMZ). 이곳의 역사는 1953년 7월 27일, 한국전쟁이 멈춘 자리에서 출발한다. 그해 마련된 정전(停戰)협정엔 '한 개의 군사분계선을 확정하고… 적대 군대 간에 한 개의 비무장지대를 인정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이로부터 60년이 흐른 2013년. DMZ는 냉전의 화석(化石)이 되어 분단의 상징으로 굳었고 그사이 대한민국은 경제 규모 세계 16위의 활기찬 나라로 탈바꿈했다. 그리고 그 숨 가쁜 시절을 지나는 동안 DMZ 한쪽을 생활의 터전으로 삼아 묵묵히 땅을 일구며 살아온 사람들이 있었다. DMZ와 함께 올해로 60주년을 맞는 남쪽 DMZ 안의 유일한 민간인 거주지역 대성동 마을의 주민들이다.

작은 농촌 대성동 마을(경기도 파주시 군내면 조산리)은 전쟁 전 개성 부자들의 소작을 많이 하던 동네였다. 이 마을은 정전협정의 추가 합의 사항이었던 '사민의 비무장지대 출입에 관한 합의'에 의해 DMZ 안에 남았다. 60년 전 30세대 약 160명이었던 마을은 피란 갔던 이들이 돌아오고 이후에 결혼과 출산 등으로 식구가 조금 불어나 지금은 47가구 214명이 살고 있다. 모두 농민이고, 한 해 소득은 6000만원 정도다.

한국에서 유일하게 국세 납부와 군 복무 의무가 없는 이 마을 사람들은 휴전선을 두고 역시 DMZ 안에 있는 북쪽의 선전용 마을인 기정동 마을을 마주 보고 있다. 외국인 여행자들은 때때로 800m 떨어진 대성·기정동 마을을 '세계에서 가장 기이한 마을'로 꼽는다.

지난 10일 대성동 마을과 60년 역사를 함께한 어르신 세 명을 만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북쪽으로 차를 몰았다. 마을로 들어가려면 유엔군사령부(유엔사)의 허가를 얻어야 한다. 그러나 지난달 말 유엔사 관계자는 "요즘 남북 관계가 불안정해 마을 방문 허가가 잘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마을 밖으로 어르신들을 불러내는 수밖에 없었다.

마을 이장에게 협조를 구해 '승렬이 할머니'로 통하는 김동예(76)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우리는 땅을 파고(농사를 짓고) 사는 사람들이어서 비 오는 날이 외출하기 좋기는 한데…. 60년 산 아저씨 두 명도 있으니까 내가 같이 나갈게요. 우리가 다 친척이거든."

할머니는 마을에서 20여분 거리인 경기도 파주시 문산터미널로 나오겠다고 했다. 문산터미널 앞 한 식당에서 대성동 토박이인 김 할머니와 김경래(79)·박필선(80) 할아버지를 만났다.

◇"'떨레스'가 38선 철통이라 해서 믿었다"

"친척 사이시라면서요"라고 묻자 김 할머니는 답했다. "그냥 친척인 셈이라는 말이지. 대성동 마을이 강릉 김씨 마을이거든. 박씨 아저씨는 외가가 강릉 김씨고 우리 둘은 강릉 김씨니까 촌수는 몰라도 친척이라 이거죠. 60년이나 한 마을 살았으면 친척이지, 뭐. 따져서 뭐해."

마을에 대한 이들의 이야기는 1950년 6월 25일, 6·25전쟁 발발에서 시작됐다. 마을은 해방 직후 미국과 소련이 마음대로 그어 놓은 38선에서 불과 4㎞ 떨어진 거리에 있었다. 그때는 기정동 마을도 38선 남쪽이었고 이웃 마을이라 교류도 잦았다. 두 농촌 마을 사람들은 38선 바로 아래 살았지만 남북 갈등과 무관하게, 여느 때처럼 땅을 일구며 지냈다. 전쟁이 일어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김경래 할아버지는 "그날 새벽에 총소리를 듣고서도 그렇게 큰 전쟁이라는 생각을 전혀 못했다"고 했다. "6·25 나기 얼마 전에 미국에 그 누구더라…'떨레스'(존 덜레스·당시 미 국무부 고문)가 38선 시찰을 하고는 '철통'이라고 그랬드랬어요. 절대 안 뚫린다는 거야. 이북에 '땡크'가 있는지 뭐가 있는지 우리가 아나. 새벽에 총소리 비슷한 게 쾅쾅 나고 그러는데 사람들이 전쟁이라고 하더라고. 너무 최전방이라 우리는 피란 나갈 시간도 없드랬어요."

'그렇게 큰 전쟁'은 3년 넘게 이어졌다. 1·4 후퇴(1951년) 즈음 대성동 사람들도 피란을 갔다. 그러나 출발점이 워낙 북쪽이다 보니 별 소용이 없었다. "저어기 수원까지 간신히 갔는데 중공군이 벌써 우리를 앞서 가서 도착해 있더라고. 어떡해. 그냥 마을로 돌아왔지, 하하."

인민군이 교묘하게 마을 사람들을 포섭해가는 일도 일어났다. 박필선 할아버지는 "인민군들이 한국군 복장을 하고 변장을 하고는 국군을 모집한다며 청년들을 잡아갔다"고 했다. 옆에서 김 할머니가 거들었다. "줄줄이 따라갔지. 1951년 봄쯤이었어요. 한국 깃대(태극기)를 달고 왔다니깐. 어떻게 알아? 생긴 거랑 말하는 게 우리랑 똑같은데. 그렇게 속아서 가서 생사를 모르는 사람이 많아요. 봉래, 중래, 운학이 아버지… 아휴, 도망온 건 덕이 하나밖에 없어." '덕이'는 당시 열다섯쯤 되던 아이였는데, 전후에 서울로 나가버렸다고 한다.

◇"운 좋아서 보전? 총 들고 지켰다"

1951년 10월, 판문점이 설치됐다. 휴전을 위한 협상 진행을 위해서였다. 한국 측은 유엔이, 북측은 북한과 중국이 공동으로 협상 대표를 맡았다. 협상이 벌어지는 판문점 반경 2㎞ 안에선 전투 활동이 금지됐다. 판문점과 1.5㎞ 떨어진 대성동 마을은 평화를 유지했다. 여기까지가 대성동 마을의 유래에 관해 알려진 약사(略史)다.

토박이 주민인 세 어르신의 기억은 그러나 조금 달랐다. 판문점이 설치되고 나서도 대성동에서 교전이 이어졌다는 것이다. 군인들은 남자들에게 총을 주고 마을을 지키라고 했다. 거의 매일 총격전이 벌어졌다. 유엔군은 판문점에 낮에는 커다란 애드벌룬을 띄웠고 밤에는 하늘을 향해 직각으로 서치라이트를 쏘아 올렸다. '주변부는 어쩔 수 없으니 판문점만은 폭격하지 말 것'이라는 신호였다. 곧 성사될 것 같던 휴전협정은 결국 1년 9개월을 끌었다.

박필선 할아버지는 "우리는 사실상 군번 없는 군인이었다"고 말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마을이 그냥 운 좋아서 보전된 줄 알아요. 그건 아니거든. 주민들이 마을을 지키려고 총을 들고 싸웠어요. 중공군이 마을 안에 있는 '동그란산'( 마을 한가운데의 언덕)까지 들어왔으니까…." 박필선·김경래 할아버지는 지난해 국가유공자로 지정됐다.

휴전도 전쟁처럼 예고 없이 찾아왔다. 매일같이 기습 작전과 방어전이 펼쳐지던 1953년 7월이었다. 김 할아버지는 "27일 밤 10시 5분 전까지도 양쪽이 마구 쏘고 있었다"고 했다. "갑자기 조용해지더라고. 그 이튿날 아침에 군인들이 '휴전이 됐다'고 하대. 그리고 우리 총을 다 가져갔어요. 말 그대로 '비무장지대'가 된 거지. 우리는 휴전이 뭔 줄도 몰랐어. 잠깐 쉬었다가 다시 싸우는 건가 보다 했지, 60년 동안 이렇게 살게 될 줄은 정말 몰랐어…."

◇"한 번 나가면 한 주 동안 못 들어왔다"

'청년 박필선'은 전쟁이 끝나자마자 군에 입대했다. "그 당시 대성동 사람들은 거의 무적자(無籍者)들이었어요. 나는 피란 갔다가 돌아오면서 파주에서 주민등록을 했거든요. 그래서 영장이 나온 거고, 당연한 줄 알고 (군에) 갔지. 전쟁 내내 총을 쏘고, 끝나자마자 또 군대에 들어간 거예요. 내가 논산훈련소 30연대 1기에요. 한국에서 처음으로 군대 두 번 간 사람일 거야 아마, 하하."

휴전 후 남북 포로 교환이 이뤄지고 휴전선(군사분계선)과 남·북방한계선이 확정됐다. 대성동 마을 사람들은 영문도 모른 채, DMZ에 섬처럼 남게 된다. 전쟁 직후 마을엔 버스도 다니지 않았다. 미군 트럭이 매주 한 번씩 주민들을 마을 안팎으로 실어 날랐다. "주민들을 싣고 나가 금촌리에 내려주고는, 한 주 전에 나간 사람들을 태워서 들어오는 거예요. 나가면 한 주 동안은 꼼짝없이 밖에 있어야 하고, 눈이라도 와서 차가 못 다니면 보름 동안 마을에 돌아오질 못했어요."

당시엔 한 주 동안 읍내에서 지내느라 농작물 판 돈을 심심찮게 까먹은 사람이 꽤 있었다. 김 할아버지는 말했다. "부모님이 세상을 떴는데 마을로 들어오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이도 있었드랬어. 누가 돌아가시면 장례는 그냥 있는 사람끼리 치렀고, 후방(외지)에서 색시가 오면 유엔 차를 타고 마을로 들어오고…그렇게 한참을 살았어요."

육영수 여사가 1972년 마을버스를 기증해 버스 운행은 한 주 세 번으로 늘었다. 1970년대 말부터 민간 버스가 매일 한 번 다녔고 횟수가 계속 늘어 지금은 하루 세 번 대성동 마을에서 문산터미널까지 버스가 왕복한다.

◇팔 뻗으면 닿을 거리에 '저쪽'이

마을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던 1997년, '도토리 납북'이 발생한다. 대성동 마을 주민인 홍승순(당시 68세)씨 모자(母子)가 북한군에 끌려갔다가 5일 만에 풀려난 사건이다. 이 사건에 대해서도 대성동 토박이 어르신들의 기억은 '무리하게 도토리를 줍다 붙잡혀갔다'는 당시 보도와 조금 달랐다.

"군사분계선 가까이에 둑이 있어요. 그런데 거기 하필 도토리나무가 있단 말이야. 그런데 도토리는 자기 맘대로 떨어지잖아. 여기로도 가고 저기로도 가고. 그래서 넘어가진 않고 팔을 뻗어서 도토리 몇 개를 주운 걸 놈들이 지켜보고 있다가 다음 날 데려간 거지. 딱 그만큼이야. 팔 한 번만 뻗으면 저쪽(북한) 땅인 곳이 우리 마을이란 거요."

이보다 앞서 1975년 북으로 끌려간 20대 청년 김모씨는 돌아오지 못했다. 그는 농사를 도와주기 위해 마을에 잠시 체류하는 중이었다. 김경래씨는 "나중에 우리 마을에 온 삐라를 보니까 이렇게 돼 있더라고. '김씨는 남조선에서는 국민학교도 못 다녔는데 인민공화국에서는 대학에 다닌다.' 참 내, 그게 말이 되나?"

남북 관계가 냉랭해질 때 다시 비슷한 일이 일어날까 두렵지는 않을까. 어르신 세 명은 모두 아니라고 답했다. "농사를 시킬 것도 아니고… 그 사람들이 땅이나 쑤시는 우리를 데려다가 밥이나 맥여 뭐해."

◇한국법 아닌 유엔사 규정 따르는 마을

대성동 마을에선 한국법보다 유엔사 규정이 우선한다. 마을에서 범죄가 일어나도 한국 경찰이 들어가서 체포할 수가 없다. 유엔사가 범죄인을 마을에서 추방한 다음에 DMZ 밖에서 체포가 이뤄지는 형식을 취한다.

'남성이 외지인과 결혼하면 부인은 대성동 주민이 된다' '여성이 외지인과 결혼하면 대성동 주민에서 제외된다' '한 해 8개월 이상 거주해야 주민으로 인정받는다'…. 마을 거주에 관한 이런 세세한 내용을 담은 규정은 DMZ를 관리하는 유엔사 규정과 유엔·주민이 합의하는 민사예규에 근거한다. 보안을 위해 공개하지는 않는다.

박필선 할아버지는 "맞선을 보기 전에 신원조회부터 하는 것이 이 마을 사람들의 철칙"이라며 "예전엔 시집오는 색시도, 돌아가신 어르신도 모두 유엔 차를 타고 들고 났는데 지금은 그때와 비교하면 많이 자유로워졌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DMZ에서만 얻을 수 있는 즐거움도 누렸다. 대표적인 게 'DMZ 사냥'이었다. "유엔사 군인들이 'TSD HUNTING(대성동 헌팅)'이라고 쓴 완장을 줬어요. 사냥개를 데리고 열 명이 산으로 가서 산돼지를 창으로 잡아서 불에 구워 나눠 먹는 재미가 있었지."

◇"통일되면 좋겠지… 하지만 삶이 변할까"

김동예 할머니는 이날 고추 전염병에 쓸 약을 꼭 사야 한다고 인터뷰를 하는 동안 조금 초조해했다. 허리가 아파 걸음걸이가 불편한 김경래 할아버지는 병원에 들렀다가 마을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김 할머니는 "우리 마을엔 병원은커녕 가게나 식당도 없기 때문에 빨랫비누나 농기구 하나를 사려고 해도 비용(교통비)이 엄청 든다.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보다 1980년대에 나라에서 지어준 집이 너무 낡아 수도가 잘 나오지 않고 겨울이면 너무 추운 것"이라고 말했다.

편의에 따라 제각각 마을을 드나드는 대성동 주민들이 다 같이 마을 밖으로 '외출'을 나가는 날이 있다. 투표일이다. 박필선 할아버지는 "우리 대성동 마을 사람들은 투표율이 100%"라고 했다.

왜 그렇게 열심히 투표를 하느냐는 질문에 박 할아버지는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생각을 안 해봤네…. 투표는 주민등록증만 나오면 다 해야 하는 거 아닌가?" 김동예 할머니도 "그냥 하는 건 줄 알고 하는 것일 뿐"이라며 웃었다. "대성동은 DMZ 안이라고 제대로 된 주소도 없다가 1960년대에야 내무부가 파주시에 우리를 편입시켜줬어요. 그제야 주민등록을 할 수 있었지. 그전엔 후방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저녁에는 개성 가서 장을 보고 오는 사람들'이라는 둥 이상한 소리도 많이 했고, 섭섭했어요. 우리는 평생 대한민국 사람으로 살았으니까, 이 땅은 우리 손으로 지킨 거니까 투표를 무조건 한다는 건데 그게 뭐가 신기한지 잘 모르겠네요."

'대성동 어르신 삼총사'는 통일이 되기를 소망하지만 삶은 통일 후에도 아마 많이 변하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전쟁이 났을 때도, 그리고 그 전쟁이 끝나고 강산이 6번 바뀌도록 한 땅을 일구며 살아왔는데 통일된다고 마을에 무슨 큰 변화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서울 불바다' 같은 험악한 말이 북한에서 나와도 별로 겁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서울이 불바다면 저희는 쑥대밭이게? 엄포를 놓는 거겠지. 저희도 사람인데 그렇게는 못 해. 우리는 그렇게 믿어. 그렇게 믿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