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식이 만난 사람] 개인 신상 털기 당하는 중… '교학사의 한국사 교과서' 대표 집필자, 권희영 교수

외모로는 천생 '교수'처럼 생긴 권희영(57)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이렇게 말을 시작했다.

"기자들 전화는 받았지만 직접 인터뷰를 하는 것은 처음이다. 바깥에 나서는 일은 생리적으로 맞지 않다. 하지만 온갖 황당한 괴담과 선동이 확산되고, 사실이 어떤지는 헤아리지 않고 '죽이고 보자'는 식이니 입 다물고 있을 수도 없고…."

그는 출간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유명해진 '교학사의 한국사 교과서'대표 집필자다. 얼마 전 민주당 김태년 의원이 그의 강의 실태, 연구비와 해외 출장 내역 등을 학교 측에 요구해 또 한 번 매스컴을 탔다.

―그쪽에서는 "강의와 연구를 소홀히 하고 대외 활동에 몰두하는 것이 아닌지 확인하기 위해서"라고 했는데.

"나는 누구처럼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를 하지도, 선거캠프에 참여한 적도 없다. 오로지 논문과 저술, 세미나에서 발표하는 것뿐이다. 모두 전공과 관련된 활동이다. 내가 대한민국 정체성을 확실히 하는 한국사 교과서를 집필하고 최종 검정을 기다리는데 야당에서 이런 나에 대해 감사하고 압박하고 신상 털기를 하겠다는 이유가 뭔가. 권력 남용이 아닌가?"

―위축되는 느낌도 있나?

"이런 공격을 받는데 스트레스를 안 받는 사람이 누가 있겠나. 인터넷에서 자신의 신상이 털리고 있는데 기분이 안 나쁠 수가 없다."

그가 집필한 한국사 교과서에는 '백범 김구와 안중근은 테러리스트' '유관순은 여자 깡패' '일본군위안부는 성매매업자' '5·18은 폭동'으로 기술됐다는 악성 루머가 확산됐다.

"어떻게 그렇게 쓸 수 있겠나. 검정 중인 교과서 내용은 일체 공개할 수 없게 돼 있다. 그런데 마치 다 읽어본 것처럼 조직적으로 악성 괴담을 퍼뜨린 것이다."

―교과서는 교학사 측의 제안으로 만들었나?

"우리가 제안하자, 출판사가 취지에 공감했다. 현행 한국사 교과서 6종 전부가 좌파(左派) 사관으로 기술돼 있다. 이런 편향된 국사 교육은 문제가 있다고 본 거다. 내가 '한국현대사학회' 회장을 맡고 있어서 교과서 집필에도 참여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시끄러워지자, 해당 출판사에서는 뭐라고 하나?

"저쪽에서 '교학사에서 나온 책들은 사지 말자'는 불매운동을 하겠다고 했다. 출판사 사장은 겁먹을 수밖에 없다. 얼마 전 사장을 만나 '출판사에 피해가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각종 유언비어에 대해 학회에서 성명서를 내고 반박의 글을 올린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런 소동에는 보름 전 그가 한 세미나에서 "현행 한국사 교과서가 남로당의 박헌영식 사관(史觀)을 답습하고 있다"고 비판했던 것도 작용했다(박헌영은 해방 정국에서 남조선노동당을 조직했고 그 뒤 북한으로 탈출해 외무상을 지냈으나 권력투쟁에서 밀려 1955년 숙청된 인물).

―세미나에서 그런 표현은 자극적이지 않는가?

"이제는 솔직하게 밝힐 때가 됐다고 봤다. 정확히 말하면 '스탈린·김일성·박헌영'이 공유하는 역사관이다. 당시 문헌이 증명하고 있다."

―교과서 집필자들도 나름대로 공부했다고 자신하는 학자들인데 '남로당 박헌영식 사관'으로 몰아가면….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면, 학술적 논쟁을 하고 싶다면 하자는 것이다. 우리 현대사를 '친일 대(對) 반일'의 프레임(frame ·틀)에 맞춘 것은 박헌영 사관에서 나왔다. 우파는 친일, 좌파는 반일로 설정해 좌파의 정통성과 도덕적 우위를 확보하려 했던 것이다."

―해방 정국에서 이승만과 우파 정당은 친일 세력과 손을 잡은 것은 맞지 않는가?

"일부는 그럴 수 있다. 좌파에는 친일 세력이 없었나. 어쨌든 당시 정국을 '친일 대 반일'의 프레임으로 보는 것은 현실에는 맞지 않는다. 이는 속임수다. 좌익이 사용해온 프레임일 뿐이다."

―현실에 맞는 프레임은 뭔가?

"세계사적인 프레임은 '전체주의 대 자유민주주의'다. 세계 2차 대전도 나치즘·파시즘 같은 전체주의와 싸운 것이다. 동서 냉전도 '스탈린식 공산주의'라는 전체주의와의 대결이었다. 20세기 역사는 인류가 전체주의와 싸워 승리한 역사다. 우리 역사에서도 '공산주의 대 자유민주주의' 프레임이 아니면 그 뒤의 발전 과정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 이승만의 위대함은 공산주의 본질을 파악하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만들었다는 데 있다."

―우리 역사를 세계사의 맥락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한국사만을 딱 떼어내서 보는 것은 나도 문제가 있다고 본다.

"우리 사학계만 세계사의 조류(潮流)와 완전히 등을 돌렸다. 이들은 일부러 차단한다. 어떻게 박헌영 같은 공산주의자들이 설정한 프레임을 지금까지 따라갈 수가 있나."

―하지만 역사를 보는 관점이 하나일 수만은 없다. 권 교수도 자신의 입장을 갖고 있는 것처럼, 다른 교과서 집필자들도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은 받아들이기 어려운가?

"내 비판이 불만이면 정면 반박하면 된다. 이들은 그런 논쟁에서 불리하다고 판단했는지 '교과서 집필 기준에 맞게 썼는데 왜 시비를 거느냐'고 했고, 우리가 집필한 교과서에 대해 보지도 않고 온갖 유언비어를 퍼뜨렸다."

―현행 한국사 교과서들은 그전에(2008년) 좌편향 문제로 시끄러운 뒤 수정을 거쳐 국사편찬위원회의 검정에 통과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를 두고 "여전히 좌편향이 심하다"고 비판할 수 있는가?

"집필 기준에 맞추기 위해 노골적으로는 하지 않고 '교묘한 레토릭(rhetoric·수사)'을 썼다. 미·소(美蘇)와 관련된 서술에서는 소련이 옳았고, 남북(南北)에서는 남북이 똑같다는 식으로 기술했다. 남한 내부에 문제가 있었다 해도 어떻게 자유민주의체제가 전체주의와 똑같을 수가 있나. 기본 개념이 잘못된 것이다. 이런 교과서로 학생을 교육시키는 것은 북한 전체주의에 호감을 갖게 하는 것이다."

―'교묘한 레토릭'이라고 했는데, 교과서 집필자들이 정말 어떤 의도를 갖고 있다고 보나?

"나는 그렇게 본다. 한국사 교과서에는 나치즘·파시즘만 '전체주의'지, 스탈린 공산주의는 빠져 있다. 공산주의가 '전체주의'로 비난받지 않게 하기 위해 그런 테크닉을 쓴다. 이는 집필자들이 가진 이념 성향이 공산주의와 연관돼 있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다."

―그걸 그렇게 연결시킬 수 있나?

"현행 교과서에는 '6·25가 유엔 개입으로 인해 국제전(戰)으로 확대됐다'는 식으로 기술돼 있다. 6·25는 북한·중국·소련이 처음부터 기획했던 전쟁이다. 이미 사료적으로 밝혀졌다. 이런 기본적인 사실조차 모른다면 무식하고 집필 자격이 없다. 그럼에도 이를 유엔의 개입으로 '국제전'이 됐다고 하면 의도가 명백한 것이다."

―한국사 교과서들이 이런 식으로 된 근본적인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보나?

"좌파적 시각을 가진 역사학자들이 학계의 9할을 차지하고, 이들이 교과서 집필에 대거 참여했기 때문이다. "

―역사학계의 다수라면 이들의 시각이 보편적이고 진실에 근접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은가?

"역사학자 700여명이 가입된 최대 학회인 '한국역사연구회'의 창립취지문에는 '우리 스스로 변혁 주체임을 확신하고 이 사회가 안고 있는 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실천운동을 적극적으로 해나가야 하겠다'고 되어 있다. 학회라면 진리를 탐구하는 게 목적이 돼야 하지 않는가."

―학문의 실천적 측면으로 이해할 수 있지 않나?

"자신의 이데올로기에 맞는 정치적 입장을 실현시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들은 사회 변혁에 봉사하기 위해 역사학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역사적 사실 자체를 못 보는 것이 아니라 아예 안 보려고 한다. 그래서 그런 교과서를 집필해온 것이다."

―그렇다면 권 교수가 집필한 '한국사 교과서'는 무엇을 가장 중점에 두고 있나?

"모든 걸 미화하자는 게 아니다. 내부적으로 오욕과 시행착오, 헌정 위기가 있었다. 그럼에도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로 출발해서 그걸 지켜온 역사다. 세계 최빈국에서 선진국 수준에 이르기까지 위대한 성취가 있었음을 가르쳐야 한다."

―권 교수는 1970년대에 서울대 국사학과를 다녔는데, 그때 좌파 성향의 분위기가 지배적이지 않았나?

"나도 대학 다닐 때 '마르크시즘'에 관심이 많았다. 분위기가 그랬다.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국내에서 석·박사 과정을 했다면 다른 인식을 할 기회를 갖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는 학부를 마치고 해군 제2사관학교 교관으로 4년 반 근무한 뒤 파리로 유학을 떠났다. 마르크스주의를 독자적으로 해석한 프랑스 철학자 알튀세르(1918~1990)에게 매료됐기 때문이다. 역사연구에서 마르크스 이론을 적용해보겠다는 포부도 있었다.

―파리 7대학과 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 학위를 한 것으로 안다.

"거기서 공부하는 동안 한국사와 관련된 소련 정부 문헌을 보게 됐다. 그때만 해도 공산권인 소련 문헌이 안 알려져 있을 때였다. 박사 논문도 스탈린 시대의 소수민족정책에 맞춰졌다. 하지만 연구를 할수록 소련 공산당의 선전과 현실은 너무나 괴리된 것을 알게 됐다. 괴리 정도가 아니라 그 프로파간다는 완전히 사기(詐欺)였다. 우리 사학계만 아직도 그 미몽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이념 논쟁은 반대편이 결코 승복하지 않을 테고, 접점도 없는 것 같다.

"안타깝지만 나도 그렇게 본다."

―세계 1·2차 대전 때 맞붙어 싸웠던 프랑스와 독일은 '공동 역사 교과서'를 낸 적이 있다. 우리는 내부에서도 서로 인정하는 한국사 교과서를 못 만들고 있다.

"이는 독일이 자유민주 체제가 됐기 때문에 가능했다. 자유민주주의 안에서 얘기가 돼야 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이 나치즘과 적절히 섞여서 만들어질 수는 없다. 공산주의 가치를 미화하는 식의 서술이 교과서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이다."

―좌파적 성향과 입장까지 포용할 수 있는 게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아닌가?

"물론이다. 하지만 전체주의는 다르다. 전체주의와는 끝까지 투쟁해야 되지 않는가. 20세기 역사가 그런 것이 아닌가."

―현실에서는 '전체주의'인 북한과 대화 노력을 하고 있지 않은가?

"대화하는 것이 가치를 공유하는 것은 아니다."

―서로 양보해 공유점을 찾아내야 한다고도 하지 않나?

"경제나 평화, 안보를 위해 필요한 일을 할 수는 있지만, 가치는 공유할 수 없다. 왜 인류는 나치즘과 끝까지 싸웠겠나."

―저쪽에서는 '극우파'로 지목할지 모른다.

"통상 '나치즘'을 '극우'라고 표현하는데, 나는 극우 나치즘과는 어떤 가치도 공유하지 않는다. 극좌 공산주의나 전체주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권 교수는 생각보다 훨씬 확고한 것 같다.

"몇십년 공부하면서 갖게 된 나름의 소신이다. 아무리 숫자가 많다고 해서, 집단으로서 말한다고 해서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한 사람이 외치더라도 진실은 진실이다."

그는 경차 마티즈를 운전해 연구실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