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小도시 '거대 반도체 마을' 첨단車 탄생시킨다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남쪽으로 40㎞ 떨어진 소도시 로이틀링겐(Reutlingen). 인구 10만명의 이 도시는 섬유·제지·피혁 같은 전통산업으로 유명한 곳이었지만, 요즘은 '반도체 마을'로 불린다. 보쉬가 6인치(150㎜) 웨이퍼(얇은 실리콘 원판) 공장에 이어 최근 8인치(200㎜) 웨이퍼 라인을 신설해 가동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지난 14일(현지 시각) 쥐 죽은 듯 고요한 공장 건물로 들어서자, 발끝부터 머리카락까지 방진복으로 감싼 직원들이 창문 너머로 이따금 오가는 모습이 보였다. 본관에서는 반도체의 전(前) 공정인 웨이퍼를 만들고, 본관을 둘러싼 별관에서는 반도체 칩을 가공·조립하고 테스트하는 후(後) 공정을 진행하고 있었다. 집적회로(IC), 미세전자기계시스템(MEMS), 각종 센서 공장까지 모두 갖춘 거대한 '반도체 단지'였다.

한국 언론에 로이틀링겐 공장을 처음 공개한 보쉬 전장사업부 토어스텐 비트머(Widmer) 부사장은 "여느 반도체 공장과 비슷해 보이지만, 우리의 강점은 칩 설계부터 생산, 칩을 구동하는 소프트웨어 탑재까지 모두 스스로 할 수 있다는 것"이라며 "여기가 바로 앞으로 보쉬를 이끌어갈 심장부"라고 말했다.

◇차량용 반도체 6위…전통의 반도체회사 위협

127년 전 자동차 엔진 점화장치 부품 공장으로 시작해 세계 최대 자동차 부품회사로 성장한 보쉬가 차량용 반도체 전문회사로 탈바꿈하고 있다. 이제까지 차량용 반도체는 르네사스나 인피니언,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같은 반도체 전문 '빅 5' 회사가 전체 시장의 40% 이상을 점유하고 있었다. 인피니언이 2006년 기존 메모리 반도체 부문을 분리하고 자동차 전문 비메모리 반도체 회사로 변신할 정도로 차량용 반도체는 유망 분야다. 자동차가 각종 첨단 기능을 구현하는 '달리는 전자제품'이 되면서, 2011년 237억달러(27조원) 규모였던 이 시장은 2019년 400억달러(45조원) 수준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2010년 8인치 웨이퍼 공장을 짓는 데 들인 투자금 6억유로(9000억원)는 이제까지 보쉬 역사상 단일 투자로 최대 규모였다. 당시 자동차 회사들은 보쉬의 과감함에 깜짝 놀라면서도, 누구도 선뜻 따라 하지 못했다. 보쉬 측은 "시장에서 싸게 살 수 있는 반도체칩이 많지만, 20여년간 쓸 수 있는 내구성 있는 차량용 반도체칩을 만드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며 직접투자 이유를 설명했고, 현재 5위 NXP를 바짝 따라붙은 6위까지 올랐다. 조만간 12인치(300㎜) 공장도 가동할 예정이다.

◇'달리는 전자장치' 시대 주도

보쉬가 만든 차량용 반도체는 각종 첨단 칩으로 가공돼 전자식 주행안전장치(ESP), 자동 주차 시스템, 나이트 비전(야간 투시), 지능형 에어백, 정밀 연료분사장치 등에 들어간다. 무인 자동차 시대가 다가오면서 사람 눈을 대신할 각종 레이더 센서 등에도 들어갈 예정이다.

비트머 부사장은 "다른 자동차 부품회사들이 첨단 전자부품 개발 속도에서 보쉬를 따라잡기 어려운 것은 보쉬가 로이틀링겐에서 칩 설계부터 적용까지 원스톱으로 진행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특히 반도체 제조공정을 응용해 마이크로미터(㎛·100만분의 1미터) 크기의 초미세 기계부품과 전자회로를 동시에 집적해 만드는 미세전자기계시스템(멤스·MEMS) 생산량은 세계 1위 수준까지 도달했다. 보쉬가 만든 멤스는 삼성전자 스마트폰에도 들어간다. 세로로 들고 있던 스마트폰을 가로로 뉘었을 때 화면을 전환하는 기능이나, 가속도 센서로 사용자의 이동 상황을 알아낼 수 있는 기능 등에 멤스가 쓰인다. 자동차에서도 충돌·회전 등 움직임을 감지해 첨단 전자장비를 가동하는 데 필수적으로 들어간다. 보쉬는 멤스가 들어가는 센서만 전문적으로 만드는 자회사 보쉬 센서텍을 설립, 지난해 총 6억개의 멤스를 생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