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아래 사람들, 그들 위해 '17좌' 오릅니다"

"산이 날 도와 히말라야 16좌 완등에 성공했으니 저도 누군가를 돕는 것으로 산에 보답하려 합니다."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16좌 완등에 성공한 산악인 엄홍길(53) 대장. 2008년 5월 '엄홍길의 휴먼재단'을 설립한 엄 대장은 16좌 완등에 성공한 것처럼 네팔 오지만 골라 학교 16개를 세우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리고 5년. 최근 8번째 '휴먼스쿨' 기공식을 위해 네팔 고리 지역을 다녀온 그는 "16개 학교 건립이 제 인생의 새로운 '17좌' 등정이라면 이제 절반을 찍은 셈"이라고 말했다.

'휴먼스쿨'은 재단이 2009년부터 네팔 오지 지역에 지어주는 학교다. 엄 대장은 2010년 네팔 팡보체에 첫 번째 학교를 건립한 것을 시작으로 타르부(2011년), 룸비니(2012년)에 이어 올해 2월 비레탄티에 4호 휴먼스쿨을 열었다. 다딩과 산티푸르 등에 짓고 있는 4개의 학교까지 합하면 총 8개의 학교가 지어질 예정이다.

1986년 엄 대장은 첫 번째 등정에 실패하고 두 번째 찾은 에베레스트에서 셰르파 술딤 도르지(당시 24세)를 잃었다. 결혼한 지 4개월 된 새신랑 술딤은 로프를 잡고 절벽을 오르던 중 크레바스 속으로 사라졌다. 그는 "'다신 산에 가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그 후로도 산의 유혹을 떨쳐내지 못했다"며 "대신 '내가 에베레스트에서 살아남고, 성공하게 되면 너를 꼭 기리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1호 '휴먼스쿨'이 지어진 팡보체 지역은 술딤의 고향이다.

지금까지 엄 대장은 술딤과 산악인 후배 등 동료 10명을 잃었다. 그는 등정 중 정신이 혼미해질 때마다 그들의 이름을 되뇌곤 했다. 그것이 큰 힘이 됐다고 한다. 재단은 등정 중 사망한 산악인 유가족 일곱 가족에게 생활비와 장학금 지원도 하고 있다. 술딤 여동생의 결혼식 비용은 엄 대장이 댔다. 그는 "술딤의 어머니가 '죽은 아들이 가고 새로운 아들이 생겼다'며 죽은 술딤의 결혼식 예복을 건네주더라"며 "어머니를 부둥켜안고 한참을 울었다"고 말했다.

16좌 성공을 안겨준 2007년 로체샤르 등정 당시 종착점을 앞두고 힘이 빠진 엄 대장은 "'살아서 산에서 내려가게 해준다면 남들을 나 몰라라 하지 않겠다'고 빌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때가 "정상만 보며 산을 오르다가 산 밑을 보게 된 순간"이라며 "그때 재단을 설립하겠다는 마음을 굳혔다"고 말했다.

'휴먼재단'이라는 재단의 이름도 인연을 소중히 하는 그가 지었다. 2004년 사망한 고(故) 박무택 대원의 시신을 수습하러 갔던 2005년 당시 원정대의 이름도 '휴먼 원정대'였다. 그는 "사람들이 서로를 돕고, 자연이 사람들을 돕는다는 '상생(相生)의 정신'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엄 대장은 이제 더 이상 히말라야를 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꾸준히 네팔을 오고 간다. 엄 대장은 "나를 '엄 사부'라 부르는 네팔 아이들의 맑은 눈을 보면 산이 날 살려둔 건 '이들에게 다른 삶을 줄 수 있는 일을 하라'는 명령이라는 걸 알 수 있다"며 "이번 '17좌 등정'이야말로 가장 가슴 벅찬 등정이 되겠죠?"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