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본 영화만 795편… 난 언제나 100% 몰입"

1979년 프랑스 남부 칸에서 멀지 않은 항구도시 툴롱에서 학교에 다니던 크리스티앙 전(Jeune·52)은 수업을 빼먹고 칸 영화제가 한창 열리던 '팔레 드 페스티벌(축제궁전·칸 영화제 본부 건물)'로 달려갔다. 표가 없었던 크리스티앙은 다른 사람이 다 입장할 때까지 기다린 뒤에야 마지막으로 극장에 들어가 남은 좌석에 앉을 수 있었다. 상영 영화는 경쟁 부문에 오른 러시아 감독 안드레이 타르콥스키의 '스토커'. 열다섯 살이었던 크리스티앙이 이 영화를 이해했을 리 만무하지만, 그 이후 그의 인생은 바뀌었다.

칸 영화제 부집행위원장이자 영화 부문 총괄인 크리스티앙은 "아무것도 몰랐던 상태에서 그 영화를 봤지만 뭔가 대단한 것, 다른 세계가 있다는 걸 느꼈다. 그때 칸에서 처음으로 영화를 발견한 뒤로 내게 영화는 곧 칸이나 다름없었다. 결국 시네필(cinephile·영화 애호가)이 됐고, 18년 동안 칸 영화제에 몸담고 있다"고 했다. 한국영화아카데미(KAFA)와 영화 전문지 '씨네21', CGV무비꼴라쥬가 19일 영화인들을 대상으로 여는 강연회 'KAFA+마스터클래스'에 강연자로 초청된 그를 만났다.

―영화를 사랑하다가 결국 영화 보는 것을 업으로 삼게 됐다. 행복한가?

"지난 한 해 영화 795편을 봤다. 아직도 영화가 시작하기 직전이 가장 흥분되는 순간이고, 언제나 100％ 몰입할 준비가 돼 있다. 영화가 우리를 하나의, 또 다른 세계로 데려다준다는 기분은 여전하다. 나는 스스로를 직업적인 관객이라고 여긴다."

―칸 영화제의 안정성과 연속성의 비결은 무엇인가?

"경제다. 1901년 영화제가 시작된 이래 국가가 모든 금전적 지원을 해준다. 8~9년 전부터 스폰서가 생기긴 했지만 이는 변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작품 선정 과정에서는 완전한 독립성을 지키고 있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영화제가 할리우드에 기대어 관심을 받으려고 한다는 비판이 계속 있다. 올해 개막작도 '위대한 개츠비'였다.

"칸은 그해 가장 주목받는 영화를 초청하는 전통이 오랫동안 이어져 왔다. 그런 영화를 초청하고 주목을 받을 수 있는 것 역시 칸의 힘이자 권력이다."

―그럼 대체 어떤 영화들이 영화제에 초청되고 상을 받나.

"우리가 대가들만 초청한다고 하는데, 그런 기준은 절대 없다. 코엔 형제, 라스 폰 트리에 같은 감독이 매번 초청을 받는 건 매번 그들이 좋은 영화를 만들기 때문이다. 단 한순간일지라도 그 영화가 우리를 바꿀 수 있다면 좋다. 그게 감정이든, 문화든, 정치든 상관없다. 그리고 이야기나 주제, 형식, 연기 등 어떤 면에서든 충격을 주고 질문을 제기할 수 있는 작품도 좋다."

―칸 영화제의 한국 영화는 어떤가.

"1989년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감독 배용균)이 한국 영화로는 처음으로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을 받았다. 충격적인 작품이었다. 그 후 칸에 온 한국 영화의 특징은 사회 현실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칸에 초청된 작가들의 영화라고 하더라도, 관객들에게 다가가려는 의지가 보인다. 그게 바로 한국 영화의 힘이 아닐까."

―칸 영화제에서 가장 인상적인 순간은 언제였나.

"1997년 칸 영화제는 50주년을 맞아 폐막식에서 잔 모로가 생존하는 황금종려상 수상자를 모두 호명해 무대 위로 올렸다. 몸이 아팠던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 빼고는 다 왔다. 코폴라, 데이비드 린치, 타란티노, 천카이거…. 세상의 영화가 한 무대에 있었다. 지금도 이 이야기를 하면서 몸에서 소름이 돋는데, 당시에는 눈물을 줄줄 흘렸다. 이게 바로 칸 영화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