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금리 상승 본격화… "채권 줄이고 株式 투자 신중히"

미국 달러를 전 세계 금융시장에 뿌려준 미 연준의 양적 완화(중앙은행이 채권을 사들여 돈을 푸는 것) 정책이 중단되면 국내 금융시장은 어떤 영향을 받을까?

미국의 양적 완화 중단은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달러 유동성이 줄어든다는 의미다. 글로벌 은행, 연·기금 등 전 세계 투자 기관들은 자금 공백을 메우기 위해 신흥국 자산시장에 투자했던 달러를 1차 회수 대상으로 삼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양적 완화 중단은 신흥시장인 한국의 금융시장에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 김현욱 SK경영경제연구소 실장은 "전 세계적으로 실물경제 회복세에 비해 과도하게 가격이 오른 자산을 중심으로 거품이 빠지는 과정이 진행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글로벌 금리 상승, 30년 채권 호황기 막 내린다

글로벌 자산시장은 이미 격변기에 들어선 모습이다. 양적 완화 중단 우려는 미 국채 금리를 연일 끌어올리고 있다(국채 가격 급락). 19일(현지 시각) 미 국채 금리(만기 10년물 기준)는 연 2.3%를 넘어섰다. 2011년 미국 국가신용등급 강등 사태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미 국채 금리가 상승하면서 우리나라 시장금리도 덩달아 상승하고 있다. 20일 국내 채권시장에서 국고채 3년물 금리는 전 거래일보다 0.13%포인트 오른 연 2.94%를 기록했다.

연·기금을 비롯, 금융회사들의 채권 투자 평가손으로 인한 자산 부실화와 기업들의 자금 조달 마비 등의 후유증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약 400조원의 자산을 보유한 국민연금은 국내외 채권 비중이 65%에 달한다.

이인영 자본시장연구원 박사는 "30년간 이어져 온 미 채권시장 호황기가 마침표를 찍고 있다"면서 "가장 안전한 자산이라고 여겨졌던 채권이 굉장히 위험해지고 있어 채권을 많이 보유한 금융회사들의 부실화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 여파로 은행들이 자금줄을 죄면 금융시장에 신용 경색 현상이 발생하고, 기업들의 자금 조달 환경이 악화할 수도 있다.

금리 상승의 여파로 국내외 채권형 펀드 투자자들은 이미 타격을 입고 있다. 국내 채권형 펀드의 1개월 수익률은 마이너스 0.4%를 기록했고, 해외 채권형 펀드 역시 마이너스 2.4%로 주저앉았다. 수익률이 부진해지자 이달 들어 채권형 펀드에서 빠져나간 자금만 1조5000억원에 달한다. 정영식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금리가 오르면 조선·해운 등 취약 업종 기업들의 금리 부담이 커지고 회사채 발행 자체가 힘들어질 수 있다"면서 "외화 조달 측면에서도 비용이 늘어나 한국이 발행하는 외채의 가산 금리가 올라갈 수 있다"고 말했다.

◇신흥시장, 주식·채권·통화 가치 트리플 약세

전문가들은 달러가 빠져나가면서 한국을 포함한 이머징 금융시장이 가장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예상하고 있다.

실제로 버냉키 발언이 알려진 이후 미국 다우지수는 1% 정도 하락했지만 브라질 주가는 3%가 넘는 급락세를 보였다. 한국 금융시장 역시 국제 자금이 떠나면서 주식과 채권, 원화 가치가 일제히 떨어지는 이른바 '트리플 약세'가 진행되고 있다. 국내 증시에선 연초 이후 9조2300억원이 넘는 외국인 자금이 이탈했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화는 전 거래일보다 14.9원 오른 달러당 1145.7원에 거래를 마쳤고, 인도 루피화는 이날 한때 59.9루피 상승해(루피값 하락) 사상 최고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양적 완화 축소는 그동안 달러 유동성 확대의 수혜를 가장 많이 본 아시아 등 이머징 금융시장을 중심으로 트리플 약세 현상을 심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박성욱 한국금융연구원 박사는 “한국을 비롯, 아시아 통화가 약세가 되면 우리나라의 수출 경쟁력이 좋아질 수 있다”면서 “양적 완화를 축소하는 배경엔 경기가 살아난다는 의미가 있는 만큼 글로벌 경기 회복 측면으로 본다면 수출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에는 긍정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해외 채권 투자 주의, 대출 땐 금리 선택 신중히

국내에서 고금리를 노리고 브라질 등 신흥시장 해외 채권에 투자한 투자자들은 최근 채권 가격 하락과 통화 약세로 인해 상당한 평가손을 보고 있다. 브라질 채권은 최근 헤알화가 약세로 돌아서면서 5% 정도의 환차손을 입었다. 전문가들은 브라질 해외 채권은 지금 당장은 환율 때문에 평가손이 난 경우가 많지만, 만기까지 유지하면 채권 이자를 받고 비과세 혜택도 주어지기 때문에 손실 폭이 제한적일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버냉키 쇼크를 계기로 앞으로 재테크 틀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신동준 동부증권 투자전략본부장은 “국내 금리가 바닥을 찍은 건 분명해 보이며 장기적으로 완만하게 오를 가능성이 커 보인다”면서 “단기적인 수익을 노리고 채권에 투자한 사람은 채권 비중을 낮추고 저평가된 주식이나 가치가 오를 것으로 예상되는 달러 자산으로 옮겨 타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금리가 오를 것으로 예상되는 시기에는 대출을 받을 때 변동금리 대신 고정금리를 선택하는 것이 유리하지만 금리 상승 폭이 얼마나 될지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이상대 삼성증권 상무는 “현재 10년물 국채 금리가 3.4% 선까지 왔는데, 우리나라의 성장 동력이 둔화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예전처럼 금리가 큰 폭으로 오르기는 어렵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