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모 차가울까 봐 청진기 품었던 '이길여(가천길재단 회장)'를 아십니까"

"산부인과 의사로 직접 진료할 당시에 이 총장은 항상 청진기를 가슴에 품고 다녔다고 합니다. 한여름에도 차가운 금속이 몸에 닿으면 움찔하게 마련입니다. 이 총장은 약자인 환자들을 위해 청진기를 체온으로 덥혔던 것입니다."(이어령 전 문화부장관)

의료 법인을 세운 한국 최초 여의사, 첫 여성 서울 의대 동창회장, 통합 가천대를 세우며 1000억원 기부 약속을 지킨 통 큰 교육자…. 이길여(81) 가천길재단 회장의 삶은 몇몇 수식어로 단번에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수많은 성취로 가득하다.

이어령 전 장관은 그 성취의 밑바탕에 "약자를 배려하는 참으로 따스한 마음"이 있다고 말한다. 이 전 장관을 포함해 각계각층 64명이 직접 만나고 겪은 '인간 이길여'를 기록한 책 '가슴에 품은 청진기'(21세기북스)가 출간됐다. 남다른 성공에 가렸던 이길여 회장의 인간적 면모를 각자의 경험과 시선으로 바라보는 책이다.

70년대 고교생으로 인천에 살았던 김병종 서울대 미대 교수는 동인천역 앞 산부인과를 기억해냈다. "그 병원은 한 젊은 여의사가 가난한 산모의 아이를 무료로 받아주는 것으로 널리 알려졌다. 나는 지금도 이길여 신화의 초석이 아름답고 따뜻한 이야기의 진원지인 동인천역 앞 산부인과라고 믿는다." 이 회장이 양평, 철원, 백령도 등 벽지의 적자 병원을 인수해 공공 의료가 해야 할 일까지 떠맡던 모습을 기억하는 이(박윤형 순천향대 의대 교수, 전 복지부 지역의료과장)도 있다.

김원기 전 국회의장은 이 회장에 대해 "큰 성취엔 구설이 따르게 마련인 세상에서, 성취도 높고 존경도 받는 특이한 존재"라고, 박상철 전 서울대 의대 교수는 "사람은 나이로 늙는 것이 아님을 스스로 증명해낸 만년 소녀"라고 부른다. "어떤 형편에서나 꿈을 꾸면 이룰 수 있다고 어린 후배들을 북돋우는 선배"(군산 대야초교 서규원 교장) "어떤 어려움도 이길 수 있는 '이길 女'"(강신호 동아제약 회장)라는 평가도 있다.

천주교 인천교구 김병상 몬시뇰은 "이 회장은 천주교 신자가 아니지만 저는 늘 그를 위해 기도한다"고 했다. "개인적 욕심을 돌보지 않고, 지역 주민의 폭넓은 의료 혜택과 한국 의료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일들을 챙기는 모습을 봐왔기 때문입니다. 이 회장이 소외된 이웃을 위해, 우리나라의 발전을 위해 더 큰일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