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06.26 09:44

THIS MAN | 호서대 식품공학과 이기영 교수

나는 식품공학자이자 환경공학자입니다. 동시에 가수 겸 작곡가이기도 하죠. 2001년 이후 현재까지 총 열 장 이상의 음반을 냈습니다. 대표곡으로는 ‘한강은 흐른다’, ‘김치 된장 청국장’, ‘내 고향 행주나루’, ‘어머니 천년초’ 등이 있는데, 이들 환경과 음식에 관한 노래 중 몇 곡은 초·중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어요. 혹자는 내 노래하는 목소리를 듣고 기대 이상(?)의 가창력에 놀라 대체 노래를 얼마나 한 것이냐 묻곤 하는데, 글쎄요. 딱히 노래가 생활의 몇 %를 차지 한다고 말할 순 없죠. 내게 노래는 그저 일상인 것 같아요.

천년초 사랑 지난 30여 년 동안 나는 항염·항암·항노화 효능을 지닌 식물 항산화제에 대해 연구해왔습니다. 2000년대 초반부터는 특히 항산화제 함량이 높은 천년초에 주목하고 있죠. 영하 20도의 맹추위에서도 견딜 만큼 강한 천년초는 그야말로 하늘이 내린 기적의 식물이라 할 수 있어요. 보통 식물보다 50배 이상의 항산화제를 함유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를 이용해 음료나 과자 등 다양한 천년초 식품을 개발합니다.

최근에는 천년초 성분을 넣은 짜장면이나 탕수육 같은 중화요리를 선보이기도 했는데, 면발이 쫄깃하고 맛이 좋을 뿐 아니라 밀가루로 인한 알레르기가 전혀 생기지 않아요. 천년초 막걸리는 또 어떨까요. 깔끔한 맛에 숙취가 거의 없어, 가히 신의 술이라 할 만하죠(웃음). 현재 내가 머무르는 행주산성 부근에는 천년초 센터가 있어요. 천년초 중화요리와 막걸리를 맛볼 수 있고, 그 건물 위층에는 천년초박물관을 준비 중입니다. 많이들 놀러 오세요. 바로 그 앞 천년초체험농장(www.1000ylc.com)에도 한번 들러주시고요.

호서대 식품공학과 이기영 교수

도시농부 나는 한강 행주나루 인근에서 태어나 자랐어요. 지금도 그곳에서 텃밭을 가꾸죠. 집은 고양시 행신동인데, 아침 5시면 밭일을 하러 나갑니다. 천년초뿐 아니라 내가 평소 즐겨 먹는 대부분의 채소가 여기 밭에서 자라요. 여러분에게도 권합니다. 작은 땅을 얻어 텃밭농사를 지어보세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요? 찾으면 방법은 다 있어요. 옥상이나 베란다, 그것도 어려우면 화분에라도 심으면 되죠. 마트에서 파는 채소는 온전한 맛도, 향기도 없어요. 하우스에서 나온 것이라 벌레도 안 먹는 가짜죠. 깻잎만 봐도 특유의 알싸한 향은 온데간데없습니다.

이런 식이다 보니 사 먹는 채소에 무슨 항염·항암·항노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까요. 믿을 음식이 없는 거죠. 이런 것이 계속적으로 몸에 쌓인다고 생각해보세요. 무서운 일입니다. 음식은 환경과 가장 밀접해요. 지구생태계 자체가 먹이사슬이니까. 음식의 오염은 세상 모든 것의 오염과 마찬가지죠. 음식은 되도록 자연 상태의 날것 그대로 먹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 한식은 매우 이로운 것이죠.

바그너 할아버지 본격적으로 환경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독일 유학 시절 바그너라는 할아버지를 만나면서부터예요. 바이올리니스트였던 바그너 할아버지는 당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던 나를 많이 도와주셨죠. 그분과 1년을 함께 살았어요. 여든다섯 살의 할아버지는 아침에 냉수마찰을 하고 낮이 되면 명상과 기공체조를 하셨어요. 채식주의자이기도 했고요. 말하자면 동양의 선비처럼 사시던 분이에요. 노자와 장자의 가르침을 그분에게 배웠습니다. 동양의 전통 자연철학에 대해 그때 눈을 뜨게 된 셈이에요.

궁극적으로 우리의 전통 자연철학을 회복하는 것이 내 목표입니다. 지금은 서양의 기계문명에 경도돼버린 상태나 다름없죠. 결과적으로 ‘동방무례대국’이 되었어요. 자연철학을 되살려 한국의 전통적 가치관을 바로 세우는 것. 그러면 우리 생활 자체가 바뀔 거예요. 자연의 순리를 거역하지 않는 삶을 사는 겁니다. 이것은 환경을 지키는 일과도 유관하죠.

가수가 됐다면? 예와 악을 중시한 공자는 <시경(詩經)>이란 노래집을 냈어요. 자신이 하고자 하는 말을 노래로 전한 것이죠. 일종의 음악운동인 셈입니다. 공자처럼 나도 노래로 우리의 전통 자연철학을 이야기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물론 워낙 음악을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기타는 어렸을 적부터 쳤어요. 열세 살 무렵인가, 30원짜리 줄도 없는 기타를 사서 가지고 다닌 기억이 있네요. 주특기인 입피리는 행주나루 어부였던 아버지에게 배운 것이고요.

대학에 다니던 1978년에는 자작곡으로 대학가요제에 출전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약 760개 팀이 나왔는데, 거기서 3~4번의 예선을 통과하고 본선까지 올랐죠. 하지만 본선 무대엔 서지 못했어요. 듀엣을 한 친구에게 일이 생기는 바람에…. 그때 우리 바로 옆 번호가 심수봉이었어요. ‘그때 그 사람’으로 나온 심수봉도 수상은 못 했죠. 만약 무대에 올라 상도 타고, 그래서 가수가 됐다면? 그랬을 수도 있죠. 그렇지만 지금 얼마나 좋아요. 학자로서 부르고 싶은 노래 부르고. 나는 만족합니다.

속옷 살 돈까지 아껴 2001년 즈음 첫 무대에 서게 됐어요. 언젠가 한 시인의 초청으로 여름시인학교에 참여했는데, 그때 거기 무대에서 딸과 환경 관련 노래를 한 곡 불렀어요. 그 모습을 본 한 외국 시인이 꼭 음반을 내라고 당부하더군요. 그래서 용기를 냈어요. 속옷 살 돈까지 아껴 결국 음반을 냈습니다. 당시 초등학생이던 딸과 함께 부른 ‘지구를 위하여’가 1집에 실렸죠. 환경 콘서트 등 각종 환경 관련 행사에 초청도 많이 받았어요. 반응이 좋아 전국 순회공연도 다녔다니까요.

이후 발표한 음반은 총 열 장이 넘어요. 음반 당 12곡씩 들어갔으니 그간 얼마나 많은 곡을 만들고 불렀는지… 그 과정에서 많은 분이 도와주셨어요. 어떤 분은 음반을 내라고 500만 원 현금을 손에 쥐여주시기도 했죠. 노래에 감동했다고 하시면서요. 그분을 다시 만나면 꼭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은데, 이후론 한 번도 뵙지를 못했네요.

영원한 자유인 환경운동이라는 것이 참 쉽지가 않아요. ‘사치하지 마라’, ‘낭비하지 마라’ 같은 죄다 귀찮은 얘기들뿐이잖아요. 그러니 어려워요. 환경을 지키기 위한 첫걸음? 뻔한 것이지만 생활의 사소한 부분부터 개선하는 것이죠. 텃밭을 가꾸고 에너지, 물을 절약하는 것부터요. 지금 이대로 가다간 너무 위험합니다.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이 발생할지도 몰라요. 그러니 우리 모두 노력하지 않을 수 없죠. 나는 큰 욕심이 없어요. 돈도, 권력도 탐하지 않아요. 그냥 좋은 환경에서 좋은 음식 먹고 즐겁게 살고 싶은 것뿐입니다. 이런 나는 영원한 자유인이죠.


이기영(56) 교수는 고려대 식품공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베를린공대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텍사스보건대 생리학과 부교수를 거쳐 현재 호서대 식품공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초록교육연대 상임대표, 천안아산환경운동연합 공동의장으로 노래와 글, 방송활동을 통해 환경운동과 전통자연철학되살리기운동에 매진하고 있다. 천주교환경상, 환경의날 유공자 대통령표창 등을 수상했다. 저서로 <노래하는 환경교실>, <음식이 몸이다>, <음식이 지구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