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딩크·톰 크루즈·패리스 힐튼… 이들에게 나비 넥타이 받은 남자

27년 동안 이 남자는 손님 1500만명을 맞았다.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두 번 나비 넥타이를 바꿔 맸고, 새벽 3시까지 흐트러지지 않은 자세로 고객을 배웅했다.

서울 남산 그랜드하얏트호텔 구유회 식음료 부장은 '전설의 호텔리어(hotelier·호텔 관리자)'로 통한다. 1988년 그가 창립 멤버로 문을 연 제이제이마호니스클럽(J J Mahoney's)이 최근 개관 25주년을 맞았다. 지난 21~22일 개관 25주년 기념 파티에 몰린 손님만 3000명이 넘는다. 개관 25주년에 맞춰 구 부장은 호텔리어로 일하며 겪은 얘기를 엮은 책 '호텔리어 로랑의 시선'을 펴냈다. 24일 남산에서 만난 그는 "호텔은 비밀과 사생활, 꿈과 휴식을 토대로 쌓아올린 성(城)과도 같은 곳이다. 27년 동안 이곳에서 누구나 최고의 대접을 누리다 갈 수 있도록 땀 흘려 일했다"고 말했다.

호텔은 구 부장의 오랜 꿈이자 애증의 대상이었다. 그는 "어릴 때 누나를 따라 특급 호텔 식당을 가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말끔하게 차려입은 호텔리어가 손님을 맞곤 했다. 그걸 보면서 '나도 저렇게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대학에서 호텔경영학을 전공하고 1986년 6월 그랜드하얏트호텔에 입사했다. 일은 생각보다 훨씬 고됐다. 그릇과 물잔만 닦는 날도 있었다. 온종일 구두를 신고 일하다 보니 습진, 무좀도 달고 살았다. 구 부장은 "힘들 때도 틈틈이 음악 듣고 영화 보는 걸 게을리하지 않았다. 호텔리어에겐 문화적 소양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1987년 크리스마스 파티 때 우연히 클럽 음악을 트는 디제잉(Djing)을 맡았다. 평소 애지중지 모았던 LP를 고르고 골라 틀었고, 손님들은 그의 취향에 환호했다. 호텔은 1988년 그에게 클럽 제이제이마호니스를 여는 일을 맡겼다. 구 부장은 "내 끼와 상상력을 본격적으로 발휘하게 된 때"라고 했다. "소설 '위대한 개츠비' 주인공처럼 매일 밤 파티를 즐기는 가상의 인물을 그렸어요. 그가 J J 마호니스인 거죠. 여행과 미식, 사교 모임을 즐기는 멋진 남자가 찾아오는 공간. 이를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 엄청난 공을 들였습니다."

1988년엔 핼러윈 파티를 열었다. 직원에게 귀신 분장을 시켰고, 초대 손님에게도 가장무도회처럼 꾸미고 오도록 했다. 처음엔 "남의 나라 파티를 따라 한다"는 비난도 많이 들었다. 구 부장은 "지금은 매년 1000명씩 찾아오는 대표적인 파티가 됐다"며 웃었다.

실패도 있었다. 여름에 클럽을 수족관처럼 꾸미기 위해 거대한 수조를 만들고 형형색색 관상어까지 넣었지만, 파티 직전에 수조가 쩍 금 가는 바람에 진땀뺐고, 봄 파티를 위해 생레몬 2만개를 장식했다가 못에 박힌 레몬이 금세 썩어버린 적도 있다. 구 부장은 "성공과 실패를 거듭하면서 여기까지 왔다. 난 그래서 경험의 힘을 믿는다"고 했다. 히딩크 감독, 톰 크루즈, 패리스 힐턴이 구 부장의 서비스에 감동해 나비 넥타이를 선물한 것도 업계에선 유명한 일화다.

"일이 고되다고 불평하는 후배들에겐 이런 말을 해주고 싶어요. '몰두하지 않으면 게임은 끝나지 않는다'고. '승부는 언제나 지금부터 시작'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