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의 친구 고갱만 안다면 이 전시를…

낙원을 찾아 남태평양 섬 타히티로 떠난 화가는 그곳에서 도리어 지옥을 만났다. 다리 부상이 도지고, 심장 발작이 덮쳐 왔다. 게다가 아끼던 딸이 폐렴으로 숨졌다는 비보(悲報). 죽음을 생각한 화가에게 삶의 근원을 묻는 질문이 찾아온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수수께끼 같은 이 질문을 캔버스에 옮긴 직후 화가는 산으로 들어가 자살을 기도한다. 다행히도 미수에 그쳤다.

폴 고갱(Gaugin·1848~1903)의 대표작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가 서울에 왔다. 9월 29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낙원을 그린 화가 고갱 그리고 그 이후'는 이 그림 한 점을 보기 위해서라도 가볼 만한 전시다. 가로 374.6㎝, 세로 139.1㎝ 대형 화면. 오른쪽 하단의 아기, 선악과를 따고 있는 중앙의 인물, 왼쪽 하단의 노파가 차례로 생명의 시작과 끝을 의미한다.

국내 최초 고갱 회고전인 이번 전시에는 회화·조각 등 작품 60점이 총출동했다. 이 중 '설교 후의 환상'(1888), '황색 그리스도'(1889)는 '우리는…'과 더불어 '고갱의 3대 걸작'으로 불린다. 인상주의로 시작했던 고갱은 이후 현실과 환상을 한화면에 표현하는 독특한 '종합주의' 기법을 선보이며 근·현대를 잇는 가교(架橋)로 자리매김한다. 전시는 '반 고흐 친구' 정도로 알려진 고갱을 다시 보도록 하는 기회가 될 것 같다. 고갱을 좀 더 깊이 알고 싶은 관객에겐 그를 모델로 한 서머싯 몸의 소설 '달과 6펜스'도 함께 권한다. (02)1588-2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