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완벽한 사나이… 있다? 없다?

마크 포스터 감독의 ‘월드워Z’는 좀비를 소재로 한 재난 영화다. 아마존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른 맥스 브룩스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전 세계에 원인 불명의 이변이 벌어지고 사람을 ‘좀비’처럼 만드는 바이러스가 퍼진다. 바이러스에 걸린 이들은 평소엔 좀비처럼 느릿느릿 걸어 다니지만, 표적인 인간을 발견하면 민첩하게 달려들어 문다. 전(前) UN 조사관 제리 레인(브래드 피트)은 이 바이러스의 원인과 해결책을 밝혀내기 위해 한국, 이스라엘, 스코틀랜드 등 세계 각지를 돌며 고군분투한다. 그는 이제 바다 한가운데 배 위에 남겨진 가족뿐만 아니라 전 인류를 지켜야 한다.

20일 개봉한 ‘월드워Z’는 개봉 7일 만인 26일 오후 200만 관객을 돌파하며 국내 박스오피스 1위를 지키고 있다.

[어쩌나, 높아진 내 눈]

아가씨 曰 - 최고의 판타지는 주인공 제리
외모·두뇌·체력에 자상함까지…
이 남자, 너무 완벽해서 아쉽다

'월드워Z'는 판타지 영화에 가깝다. 엄청나게 빠른 좀비들이 나와서도 아니고, 세기말적 징후를 다뤄서도 아니다. 이 영화의 판타지는 바로 주인공인 제리다. 영화사(史)상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완벽한 남자인 제리에 비하면 좀비도 지구 멸망도 지극히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일단 제리는 육체적으로 완벽하다. 우사인 볼트와 표도르, 김연아를 다 합쳐야 이런 인간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하버드 대학을 나온 천재 바이러스 학자도 영화에 등장하지만 정작 인류를 구하는 백신을 알아내는 건 제리다.

요즘 수퍼 히어로는 '나는 누구인가' 따위의 배부른 고뇌를 하지만, 그는 쓸데없는 생각일랑 하지 않고 모든 걸 행동으로 옮긴다. 함께 있던 이스라엘 여군이 좀비에게 팔을 물리자마자 그는 0.0001초도 망설임 없이 여군의 팔을 잘라낸다. 들고 있는 약이 백신인지 아닌지 확신할 수 없을 땐, 일단 자기 팔에 찌르고 본다. 이렇게 딱 부러진 영웅은 근래에 보기 드물었다.

딱히 용건도 없는 아내의 안부 전화 한 통 때문에 자기 목숨이 위태로워지고 생판 모르는 사람들까지 목숨을 잃었는데도 그는 아내에게 싫은 소리 한번 안 한다. 마지막으로 영화 내내 같은 옷을 입고서 며칠째 감지 않은 것 같은 단발을 흩날리고 다녀도 제리는 멋있다. '여자들이 싫어하는 남자 헤어스타일' 3위 안에 꼽힌다는 단발을 하고도 이 정도 외모라니.

'월드워Z'는 균형 잡힌 블록버스터다. B급 장르의 전유물인 좀비를 대중적 소재로 잘 녹였고, 긴장감을 놓치지 않는 와중에도 유머를 군데군데 잘 끼워 넣었다. 하지만 '지덕체(智德體)'를 완전히 갖춘, 이 세상에 없을 법한 남자 주인공이 이 균형을 깬다. 모자란 구석이 하나라도 있었다면, 실수를 한 번이라도 했다면 좋았을걸. 이렇게 남자 보는 눈만 높여놓는 건 아무래도 무책임한 것 같다. /변희원 기자

[우리도 마음만은 '제리'다]

아저씨 曰 - 그가 사력 다한 건 '가족' 때문
가족 앞에선 누구나 영웅이 돼…
아, 아버지는 이토록 위대하다

영화 '월드워Z'는 주인공 제리 역을 맡은 브래드 피트가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한 영화다. 그런데 이 남자, 좀비의 습격을 받아 위기에 처한 인류를 구한다는 거창한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 같지 않다. 덥수룩한 수염에 아무렇게나 빗어 넘긴 머리, 헐렁한 티셔츠에 청바지. 수퍼맨의 쫄바지와 망토도, 아이언맨의 철갑 옷도 없는 그는 결코 영웅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예측할 수 없는 좀비의 습격을 받고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기면서도 그가 사력을 다하는 이유는, 가족 때문이다.

가족과 함께 지내기 위해 UN 조사관 업무를 그만둔 제리가 다시 위험 속으로 뛰어든 것은 가족의 안전을 위해서다. 자신이 좀비들에게 점령당한 사지(死地)에 들어가지 않으면 가족이 안전한 항모(航母)로 피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상관의 작전 지시를 받고도 가족을 떠날 수 없다고 당당히 말하던 제리는 아내에게 이렇게 말한다. "가야 돼. 내가 가야 당신과 애들이 살아." 애를 낳아 키워 본 아버지는 이 말을 할 때 제리의 심정을 잘 안다.

가족을 떠나기 전 제리가 하는 말, "안부 전할게. 꼭 돌아올게." 남자는 평생 살면서 이런 비슷한 말을 할 때가 있다. 그리고 그 말을 평생 가슴에 새긴다. 자신을 죽음에 이르게 할 수도 있는 병균을 스스로 주사(注射)하려고 결심했을 때, 그의 눈앞에는 누구 얼굴이 떠올랐을까. 말하지 않아도 관객은 다 안다.

모두가 자기를 주목하고 있지만, 제리는 무지막지한 힘을 가진 수퍼 히어로가 아니라 주저하고 망설이는 평범한 사람이다. 전 세계를 돌며 갖은 고난을 겪으면서도 제리가 포기하지 않고 힘을 얻는 것은 휴대전화로 들려오는 아내의 목소리 덕분이다. 남자는 원래 좌충우돌하고 실수를 연발하는 존재이지만, 가족에 대한 사랑을 삶의 중심으로 삼고 사는 아버지는 가족을 위해 전에 보지 못했던 초인적 능력을 발휘할 수도 있다. /최홍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