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보식이 만난 사람] ‘산학 협력’에 교수 인생을 걸고 암(癌)투병 중인… 홍국선 ‘서울대 기술지주회사’ 대표

“대학은 돈 되는 사업에만 관심 교수는 논문 실적을 쌓느라 바빠 연구에 도움 안 되는 학부생 방치”

“왜 학생 창업에 대해서만 골방에서 혼자 기술 개발해야 한다 주장하나 낙원 상가에선 樂士도 빌려줬건만”

“한국 대학에서 학부생은 버려졌다.”

홍국선(56) ‘서울대 기술지주회사’ 대표는 이 한마디를 하기 위해 나를 만난 것 같았다.

그가 맡고 있는 ‘서울대 기술지주회사’는 서울대의 연구 성과와 기술을 특허 등록해 기업에 지원해주고, 대학생 창업을 돕는 영리법인이다.

"IMF 직후 정부는 연구 인력을 빨리 양성해야 한다며 ‘연구 중심 대학’ 사업(BK 21) 등을 시작했다. 그때부터 정부 지원금 십수조 원은 대학원생에게만 집중됐다. 학부생들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이미 사회 문제가 된‘청년 실업’ ‘반값 등록금’은 모두 대학생들 문제다. 사회에 나오는 사람 중 90%가 학부 출신이다. 이런 실정을 모르고 청와대에서는 ‘창조경제’니 ‘청년 창업’을 얘기하고 있다."

그는 가발(假髮)을 썼다. 이마와 손가락 마디는 시커멓다. 주위 사람들은 이 사실을 종종 망각한다. 그가 여전히 씩씩하고 정력적으로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2년 전 ‘서울대 기술지주회사’ 대표를 맡은 직후 폐와 대장 부위에서 암(癌)이 발견됐다. 수술을 받고서 이 일을 계속해야 할지 고민했다. 산이나 시골로 들어가 요양하라는 권유도 있었다. 마음을 비우고 스트레스를 받지 말라고도 했다. 하지만 손 놓고 아무것도 안 하면 뭐 하겠나. 지금 이 일은 내가 좋아하고 쭉 해오던 것이다."

서울대 공대(재료공학) 교수인 그는 ‘산학 협력’ 분야에서 줄곧 활동해왔다. 18년 전 이공계 교수들을 설득해 ‘대학산업기술지원단’을 처음 조직했던 이도 그였다. IMF 사태 때는 전국을 돌며 대학 연구실의 기술을 중소업체에 지원하는 캠페인을 벌였다. 역대 정부마다 산학 협력과 관련된 정책 자문도 해왔다.

그런 그가 학부생의 문제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지난번 방문한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가 어떻게 시작했나.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나 구글의 래리 페이지도 모두 대학 시절에 창업했다. 우리 정부나 대학 관계자들은 이들의 창업 사례를 배우겠다며 미국에 다녀온다. 정작 그런 뒤에는 ‘대학원 투자’를 말한다. 학부생들은 버려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비싼 등록금은 들어봤어도 학부생이 버려졌다는 얘기를 듣는 것은 처음이다.

"내게 ‘한 달 안에 대학원생 100명을 미국에 보내 구경시켜라’고 하면 할 수가 있다. 하지만 학부생 10명을 보내려면 돈이 없다. 돈이 있어도 쓸 수가 없다."

―무슨 뜻인가?

"모든 정부 지원은 대학원생에게만 해당된다는 것이다. 학부생을 위한 연구 지원이나 창업 프로그램이 전혀 없다. 미국 매사추세츠 대학(MIT)의 ‘기업가정신 센터’에 대학생들을 주축으로 하는 창업 워크숍이 있다. 이들의 경험과 노하우를 배울 기회다. 우리 학생을 미국에 보내야 하는데, 어느 학과에도 지원해줄 수 있는 예산 항목이 없었다. 결국 이공계 장학금을 줘서 보냈다."

―하나의 사례를 일반화시키는 게 아닌가?

"두 달 전 서울대에서 ‘전국 대학 창업동아리 창업경진대회’가 열렸을때, 지방에서 올라온 학생들이 단체로 찜질방에서 잤다면 어떻게 생각하는가."

―찜질방에서?

"어느 대학도 체류 경비나 숙소 편의를 제공해주지 않았다. 이게 학부생들에 대한 현실이다. 대기업도 연구 인력을 끌어들인다는 명분으로 대학원생에게만 관심을 보인다. 학부생 행사까지 투자할 이유가 없다. 몇 년 전 노벨상 수상자들을 초청해 세미나를 한 적이 있었다. 사석에서 이들은 ‘한국의 대학 캠퍼스에는 학생이 없다’고 말하더라."

―대학에 학생이 없다니?

"서울대만 봐도 건물은 대학원 연구실 위주로 되어 있다. 학부생들은 강의동(棟)에서 강의만 듣고 나간다. 캠퍼스에는 그냥 지나가는 학생들만 있지, 이들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은 거의 없다. 학부생을 방치하면 결국 대학의 연구 경쟁력에도 문제가 생긴다."

―학부 시절에는 교양과정에 중점을 두고, 진정한 전공 공부는 대학원에서 해야 한다고 하지 않는가?

"이런 정책 때문에 연구를 좀 한다는 대학에서는 학부생들을 다 팽개쳤다."

―그렇게 가는 게 바른 방향이 아닌가?

"대학은 돈 되는 연구사업에만 관심을 갖고 교수들은 논문 실적과 성과를 쌓는 데 바쁘다. 그걸로 평가를 받기 때문이다. 그러니 교수들은 대학원생들만 데리고 연구한다. 자기 연구에 도움이 안 되는 학부생들에게는 관심이 덜 할 수밖에 없다. 할당된 강의를 빼면 학부생들과는 거의 시간을 가질 수 없다. 나도 그랬다. 우리 사회를 위해서는 진짜 중요한 게 학부 교육인데…, 이렇게 내보내면 사회에 부담을 떠넘기는 것이다."

―'청년 실업’ 같은 문제가 대학 현장에서 얼마간 해결될 수 있다고 보는가?

"대학을 졸업하고도 도서관에서 취업 공부를 하거나, 스펙을 쌓으며 세월을 보내는 학생들이 있다. 이들과 마주치면 ‘너희가 골동품이냐. 시간이 지나면 몸값이 오르는 게 아니다’고 말해준다."

―취업 경쟁이 심해 현실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지 않나?

"들어갈 만한 직장의 숫자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그러니 대학 때부터 창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지원해줘야 하는 것이다."

―대학생들이 창업해 현실에서 성공할 확률이 과연 얼마나 될까?

"거의 어렵다. 기술 개발에는 많은 돈과 장비가 든다. 아이디어만으로는 안 된다."

―그럼에도 ‘학생 창업’을 강조하는가?

"대학은 학생을 교육하는 기관이다. 학생들이 한번 도전해보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성공 확률이 낮다고 해서 그런 기회를 제공하지 않으면 우리의 미래는 없다. 꼭 창업하라는 말이 아니다. 실패해도 배우는 게 있다."

―창업을 지원하는 예산이 있다면 차라리 ‘반값 등록금’을 해달라고 하지 않겠나?

"내가 개인적으로 불만인 것은 학생들에게 ‘공짜로’ 장학금을 주는 것이다. 장학금도 일을 시킨 다음에 줘라. 학생들이 등록금을 벌 수 있게 대학 안에서 아르바이트 자리를 많이 만드는 게 옳다. 그런 경험 자체가 소중한 것이다."

―현재 ‘서울대 기술지주회사’가 지원하는 자회사가 26개로 알고 있다. 학부생이 창업한 것이 있나?

"대학생과 졸업생을 합쳐서 불과 다섯 개밖에 안 된다."

―이공계 학생들에게 해당되지 않는가?

"통계를 보면 이공계 출신의 창업률은 그리 높지 않다. 꼭 기술자라야 창업하는 게 아니다. 기술은 돈 주고 사올 수 있다. 전공을 떠나 도전 정신으로 창업하는 것이다. "

―기술이 필요하지 않다면 창업자 역할은 뭔가?

"환자를 돌보는 데 논문 쓰는 박사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자기 아이디어로 할 수도 있지만, 그 기술을 응용하거나 마케팅하는 쪽으로도, 혹은 인문학적 감각을 갖고서도 창업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나이에 한번 해보겠다는 도전적인 자세다."

―그래도 차별적인 기술을 갖지 않고서야 창업이 가능하겠나?

"과거에는 청계천에서 망치를 뚝딱거려 미사일도 나온다고 했다. 이제는 그런 수준으로 안 된다. 대학생이 도전 정신을 갖고 창업했다면, 바깥에서 기술을 계속 공급해주면 된다."

―외부에서 기술을 공급해줘야 한다면, ‘창업’의 개념이 모호해진다.

"민간 기업을 돕기 위해 연 10조원 이상의 R&D(연구개발) 예산이 책정돼 있다. 대학이나 정부 출연 연구소에게는 중소기업을 도와주라고 한다. 이렇게 해도 중소기업은 기술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그런데 왜 벤처나 학생 창업에 대해서만 골방에서 혼자서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이런, 나도 그렇게 생각해왔다.

"우리는 학생들에게 ‘창업하라’고 말할 뿐, 현실적으로 지원해주는 오프라인이 없다. 돈과 기술을 대주고, 회계를 가르쳐주고, 네트워크를 만들어줘야 한다. 옛날에는 서울 종로 낙원상가에 가면 악기는 물론이고 악사(樂士)까지도 빌려주지 않았나."

―당신은 왜 이런 활동에 교수 인생을 걸게 됐는가. 연구실에서 더 많은 실적을 내는 쪽을 택하지 않고?

"솔직히 말하면 내가 노벨상을 타기가 어렵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에 근무하다가 미국 유학을 갔다. 내 전공에서 노벨상을 타려면 신소재를 개발해야 하는데, 교수가 되고 보니 너무 늦었다는 걸 알았다. 차라리 ‘엔지니어링’을 하자고 마음먹었다."

―'엔지니어링’이라니?

"응용 개발 분야를 말한다. 노벨상을 타려면 남들이 안 하는 새로운 연구를 해야 한다. 나는 ‘기업에 필요하고 실용화할 수 있는 연구로 기여하자, 산학 협력에서 내 역할을 찾겠다’고 정했던 것이다."

―서울대 교수가 기업에 필요한 연구를 하겠다고 했을 때 당시 대학에선 어떻게 받아들였나?

"대학은 상아탑이고 현실과 떨어져 그 나름의 영역을 지켜야 한다는 분위기가 없지 않았다. 지금도 그렇지만. 특허나 사업화에 관심이 있으면 아카데믹하지 못하다고 여겼다. 선배 교수들 중에서는 ‘기업에 붙어먹는 교수들은 내보내야 해’라는 말도 했다."

―아직 대학에 남아 있다.

"연구를 하면서도 ‘딴짓’을 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재료공학자로서 논문을 많이 썼고, 상(賞)도 많이 탔다. 그래서 살아남은 모양이다(웃음)."

연구 실적이 꼭 상으로 평가될 일은 아니지만, 그의 이력에는 ‘국무총리 표창 부품소재기술상’ ‘서울대의 자부심’ ‘서울대 훌륭한 공대교수상’ ‘최우수 강의 교수상’ ‘젊은 공학인상’ ‘대한민국 과학기술훈장’ 등이 나열돼 있다. 국제 학술지에 인용된 논문 숫자만 284건이 된다.

―자신이 연구 개발한 소재로 사업화한 것이 있나?

"인공뼈 소재를 개발했다. 이 소재가 탈취(脫臭) 효과도 있어 먼저 탈취제와 치약으로 상품화했다. 그 뒤 본격 투자를 받아 의료용 인공뼈를 시판했다. 그러자 TV에서 ‘싸구려 재료로 만든 인공뼈로 환자 300명 이상에게 시술돼 논란이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내가 거의 악덕 기업가, 부도덕한 교수로 몰렸다. 물론 환자들에게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재판에도 이겼지만 수출 길은 이미 막혔고…,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참고로 그의 선친은 추억의 영양제인 ‘원기소’와 소화제 ‘스므스’ 등을 만든 서울대 의대 홍사익 교수다.

―암을 선고받았을 때 어떤 심적 갈등이 있었나?

"나는 교수로서 누릴 것 다 누렸다. 상도 많이 탔고, 외국 구경도 많이 했다. 더 욕심부릴 게 없다고 자신을 달랬다. 다만 아내와 가족에게 남편과 아버지로서 좀 더 오래 곁에 있어줘야 하지 않나, 그런 미안한 마음은 생기더라."

폐로 전이된 암세포의 진행은 일단 멈춘 상태라고 한다. 남의 얘기처럼 객관적으로 말했다.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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