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人] "내 마음의 고향 대학가요제 폐지… '나 어떡해'"

MBC가 대학가요제 폐지를 발표한 2일 많은 대학가요제 출신 음악인은 섭섭한 감정을 털어놨다. 이상미(2005년 대상)는 "모교가 없어지는 것 같다"고, 대한가수협회 부회장 유열(1986년 대상)은 "믿고 싶지 않다"며 말끝을 흐렸다.

대학가요제 족보(族譜) 맨 위에 있는 1977년 1회 대상 수상자 샌드페블즈(서울대 농대 밴드) 보컬 여병섭(56·광고대행사 '데스틸' 대표)씨가 느낀 감정은 서운함을 넘어선 분노였다. 3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사무실에서 만난 여씨는 "택시기사님까지도 '말이 되느냐'며 펄쩍 뛰어요. 시청률, 시청률 하는데 이건 MBC가 의무적으로 이어가야 할 전통"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씨는 대학가요제 출신들의 모임 '노래사랑회'를 이끌었고, 5년 전까지 심사위원으로 활동했다.

"한때 시청률이 70%까지 나왔던 대학가요제가 왜 이렇게 관심에서 멀어졌을까요? 우선 히트곡이 오랫동안 없었어요. 마지막 대학가요제 히트곡은 무한궤도의 '그대에게'(1988년 대상)거든요. 왜 더 안 나올까요? 가수 할 작정으로 나오는 참가자가 많아지다 보니 기존 가요와 차별화가 안 되는 거죠. 게다가 예심부터 이미 기획사에서 다 따라붙죠."

그는 "방송사도 어느샌가 음악이 아닌 인물까지 보며 상업성을 따지더라"며 "그런 전략이 단기적으로는 맞아떨어졌지만, 장기적으론 독약이 된 것"이라고 했다. "대학가요제 노래는 달랐어요. 달라야 하고요. 시대를 담아야 합니다. 정오차의 '바윗돌'(81년 대상)엔 광주민주화운동의 아픔이, 에밀레의 '그대 떠난 빈들에 서서'(83년 대상)엔 전두환 정권을 겪는 공허함이 스며 있어요. '나 어떡해' 역시 겉으론 실연(失戀)을 다뤘지만, 박정희 정권의 압제를 겪은 국민의 절규가 담겼어요."

대학가요제가 잘나갈 때는 요즘 오디션 프로그램 이상으로 화제였다. 시청자 예상과 결과가 엇나가기라도 할라치면 편파 심사 논란이 달궈진 것도 전성기 풍경이다. "밀어주기가 있었느냐"는 물음에 답으로 돌아온 경험담. "90년대 중반 예선 심사위원으로 갔는데 주최 측에서 번호 두 개를 주고 '이 둘은 엔간하면 통과시켜 주이소' 하더라고요. 가차없이 떨어뜨렸습니다(웃음)."

'샌드페블즈 시절을 떠올려달라'는 말에 여씨 얼굴엔 스무 살 대학생처럼 해맑은 미소가 번졌다. 당시 대상을 탄 6기는 전원 76학번 동기생. "샌드페블즈 선배인 산울림 (김)창훈이형이 달랑 음표만 그린 악보를 던져준 게 '나 어떡해'였어요. 알고 보니 산울림도 별도로 출전을 준비하던 터라 적극적으로 도와주지 않은 거죠(웃음)."

각자 파트를 맡아 편곡했다. '라 도레미 파미 시~'로 시작하는 전주는 건반 최광섭이 만들었고, 드럼 김영국·기타 이영득·베이스 김민수도 각자 포지션별로 연주 악보를 그려나갔다. "다정했던 네가, 상냥했던 네가"로 이어지는 후렴구에서 '아~'로 뒷받침해주던 코러스는 보컬 여씨의 작품.

쇼프로 출연 요청, 잡지사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고, 영화 찍자는 제의까지 있었지만, 멤버들은 "우린 연예인 체질 아니다"라며 사회인으로 각자 갈 길을 갔다. 대학가요제는 여씨의 진로에도 영향을 줬다 "샌드페블즈 멤버들과 금성 전자손목시계 '코스모' 광고를 찍었는데, 광고인이라는 직업이 참 좋아 보였어요. 럭키금성그룹(현 LG그룹) 공채로 입사해 LG애드 시절부터 지금까지 평생 광고인으로 살아온 계기가 됐습니다."

"아이돌과 오디션 프로가 지배하는 시대에 대학가요제가 의미가 있느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지난달 부산에서 샌드페블즈·썰물·작품하나·(높은음자리의) 김장수·우순실·이정석·전유나·유열 등 대학가요제 후배들과 합동공연을 열었는데 2000객석이 꽉 찼어요. 나는 '나 어떡해'를 부르다 무대에서 미끄러져 드러누운 채로 노래했고 객석은 환호했죠. 이게 대학가요제입니다. 일개 방송사의 것이 아닌, 온 국민의 추억이 담긴 소중한 공공재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