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델라처럼, 난 죽을 준비돼 있다… 건강한 지구 만들기 위해"

"한국은 이제 국제정치와 교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나라입니다. 세계 여러 나라가 본받으려는 나라지요. 그래서 한국에 왔습니다. 한국이 원전(原電)을 줄여나가는 데 앞장서고, 원전 사고에 대비해 제대로 된 대비책을 내놓아 각국이 이를 따라 하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세계자연보호기금' '지구의 벗'과 함께 세계 3대 환경단체로 꼽히는 '그린피스'의 수장(首長) 쿠미 나이두(Naidoo·48) 사무총장이 한국을 찾았다. 그린피스의 환경 감시선인 '레인보 워리어Ⅲ호'가 지난 5일 한국에 입항한 것을 계기로 방한한 나이두 사무총장은 남아프리카공화국 태생으로, 넬슨 만델라(Mandela·95) 전 대통령을 삶의 귀감으로 살아온 시민운동가 출신이다. 인종차별에 맞서 싸운 만델라 전 대통령이 내란음모 혐의로 법정에 섰을 때 "나는 죽을 준비가 돼 있다"고 했던 것처럼, 그는 "후손들에게 건강한 지구를 물려줄 수만 있다면 나는 겁나는 게 없다. 죽을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이번 방한 목적에 대해 나이두 사무총장은 '반핵(反核)'운동을 펼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반핵은 한국의 국가이익에도 부합합니다. 지금은 군비 경쟁(Arms Race)의 시대를 넘어 '그린 레이스(Green Race)' 시대이지요. 원전을 고수하는 것은 시대에 뒤처지는 선택입니다."

미래 성장 동력인 녹색산업 분야를 선점하기 위한 경쟁을 일컫는 그린 레이스에 뛰어드는 것이 한국의 국익에 부합한다는 것이다. "최근 유럽에 수출되는 태양광 패널의 90% 정도는 중국산(産)입니다. 한국은 기술 선진국이기 때문에 '의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그린 레이스의 승자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원전에 대한 그의 입장은 단호했다. "원전은 지구 상에서 사라져야 합니다. 핵은 위험하고, 더럽고, 값비싼 에너지원입니다." 그는 2011년 후쿠시마(福島) 원전 사고와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되돌아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의 고리 원전 주변 30㎞ 반경에 약 343만명이 몰려 삽니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원전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인구밀도 중에 가장 높은 것입니다. 한 번 사고가 나면 지금까지 발생한 어떤 사고보다 피해가 클 수 있지요."

1965년생인 나이두 사무총장은 열다섯 살 때부터 남아프리카 청년연맹에 가입해 남아공 해방운동을 했다. 그는 시민 불복종 혐의 등으로 수차례 체포됐다가, 1987년 영국으로 망명해 옥스퍼드 대학에서 정치사회학 박사 학위를 땄다. 내란죄로 복역 중이던 만델라 전 대통령이 1990년 석방되자 남아공으로 되돌아와 흑인 문맹률을 낮추고, 여성과 아동 폭력을 근절하는 등의 시민운동에 앞장섰다.

그는 1994년 스물아홉 청년 시절 남아공 국회에서 만델라 전 대통령을 처음 만났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고 했다. 당시 성인 문맹률을 낮추는 시민 활동을 하던 그는 남아공 시민 50여명과 국회를 찾아 만델라를 만나려고 기다렸다. "바쁘신 분을 만나게 돼 영광입니다"라고 말하려던 그에게 만델라 전 대통령이 먼저 "바쁜 시간을 쪼개 찾아와 주셔서 영광이다"라고 말을 건넸다. 그는 "만델라 전 대통령은 이처럼 겸손한 분이셨다. 여느 정치인처럼 '신'으로 군림하지 않았다"고 기억했다. 이후에도 만델라 전 대통령은 시민 활동 현장을 방문하는 등 나이두 사무총장에게 힘을 실어줬다.

남아공에서 시작된 그의 시민운동은 환경운동으로 이어졌다. 그린피스에 합류한 건 지난 2009년. "시민 활동을 하다 보니 모든 게 '환경'으로 연결되는 걸 깨닫게 됐지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은 대부분 환경 파괴의 가장 큰 피해자였습니다."

현재 인천항에 입항한 그린피스의 환경 감시선 레인보 워리어Ⅲ호는 오는 12~13일 부산항으로 이동해 원전 반대 활동을 벌인다. '깜짝 시위'를 벌일지 등에 대해 나이두 사무총장은 "'키스 앤드 텔(kiss & tell·돈을 바라고 과거에 맺었던 유명인과의 성관계를 공개한다는 뜻)'처럼 일단 '키스(깜짝 시위를 의미)'를 하고 말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