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3.07.08 22:56

[내년 완공될 '포항 4세대 방사광가속기' 터잡기 한창]

파장 '3세대'의 1000분의 1… 原子 세계, 실시간 관찰 가능
반도체 회로선폭 더 작게 만들어 IT산업 경쟁력 크게 높아질 듯
식물 광합성 등 낱낱이 볼수있어 지구촌 식량난 해소에 도움

지난 6일 경북 포항시 자곡동 포스텍 캠퍼스에서는 대형 토목공사가 한창이었다. 공사 현장은 폭 8차선의 공항 활주로를 연상케 했다. 태양보다 밝은 빛을 만들어낼 포항 4세대 방사광가속기의 터잡기 현장이다.

방사광가속기는 전자(電子)를 움직여 빛을 만드는 장치. X선으로 신체 내부를 보듯 방사광가속기에서 나온 빛으로 세포 내부를 볼 수 있다.

정부와 포스텍이 2011년 민관 합작으로 4000억원을 들여 착공한 4세대 방사광가속기는 2014년 완공 예정. 김광우 포스텍 물리학과 교수는 "4세대 방사광가속기가 완성되면 우리나라는 원자(原子) 세계를 실시간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현미경을 얻는 셈"이라며 "대한민국 과학 발전을 위한 혁신적인 도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세계적으로 4세대 방사광가속기를 운영 중인 나라는 미국·일본 2개국에 불과하다. 독일·스위스·중국·영국 등 4개국은 우리처럼 현재 짓고 있는 상태다.

IT·BT 경쟁력 획기적으로 높일 듯

방사광가속기는 자석이 주는 힘에 전자가 영향을 받는 원리를 응용한 것이다. 전자는 자석 N극과 S극이 번갈아 있는 통로를 지나면 자석이 밀쳐내는 힘으로 속도가 빨라진다. 전자가 달리는 운동장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가속(加速) 효과는 더 커진다. 포항 3세대 방사광가속기는 둘레 280m의 원형가속기이지만, 4세대 방사광가속기는 길이 710m의 선형가속기를 포함해 총 길이가 1.1㎞에 달한다.

포항 3세대 방사광가속기에 있는 전자가속기 관(왼쪽 사진 붉은색 장치). 전자가 이 관을 지나면서 빛의 속도에 근접할 정도로 빨라진다. 가속된 전자가 방출한 빛이 빔라인(오른쪽 사진 녹색 장치)에서 나오면 과학자들은 이 빛을 활용해 세포 내부를 들여다본다
포항 3세대 방사광가속기에 있는 전자가속기 관(위 사진 붉은색 장치). 전자가 이 관을 지나면서 빛의 속도에 근접할 정도로 빨라진다. 가속된 전자가 방출한 빛이 빔라인(아래 사진 녹색 장치)에서 나오면 과학자들은 이 빛을 활용해 세포 내부를 들여다본다. /포스텍 제공
김창범 포항가속기연구소 박사는 "선형가속기 입구에서는 전자가 빛 속도의 99.96% 정도였다가 선형가속기를 통과하면 빛 속도의 99.9999998%로 빨라진다"고 말했다. 3세대 방사광가속기는 99.999999%에 그쳤다.

소수점 한 자리의 차이는 엄청나다. 포항 4세대 방사광가속기는 3세대보다 빛의 파장이 1000분의 1로 준 0.1㎚(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에 불과하다. 방사광가속기를 카메라에 비유하면 빛의 파장은 셔터 속도에 해당한다. 빛의 파장이 짧아지면 예전에 놓쳤던 움직이는 영상을 잡아낼 수 있다. 4세대 가속기는 셔터 속도가 3세대보다 1000배 정도 빨라져 1000조분의 1초 단위인 펨토초(fs)로 사진 촬영이 가능하다. 포항 3세대 가속기는 살아 있는 세포의 내부 움직임을 포착할 수 없어 죽은 세포의 속만 봐야 했지만, 4세대 가속기는 살아있는 세포 내부를 볼 수 있다.

포항 3세대。4세대 방사광 가속기의 성능 비교 표

지구촌 식량의 원천이 되는 식물의 광합성이 이뤄지는 시간은 350펨토초이다. 1000펨토초라는 셔터 속도를 가진 3세대 가속기로는 광합성을 들여다볼 수 없지만, 4세대 가속기가 가동되면 광합성 과정을 낱낱이 들여다볼 수 있다.

빛의 파장이 짧아지면 반도체 회로 선폭(線幅)도 더 작게 그릴 수 있다. 회로 선폭이 줄면 반도체의 집적도가 높아진다. 이 때문에 포항 4세대 방사광가속기가 우리나라 IT산업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태양보다 100경배 밝은 빛 목표

빛의 세기도 가속기 성능을 결정하는 요소이다. 파도의 마루(파도의 높은 부분)와 골(낮은 부분)이 만나면 에너지가 상쇄돼 잠잠해지지만, 마루와 마루가 만나면 파도가 갈수록 강해진다. 빛도 파도처럼 높낮이가 있다. 방사광가속기는 빛의 마루와 마루, 골과 골을 겹치게 해서 빛의 세기를 더 강하게 한다. 3세대 가속기는 태양보다 1억배 밝은 빛을 낸다. 4세대 가속기는 그보다 100억배 강한, 즉 태양보다 100경(1경은 1조의 1만배)배 밝은 빛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빛의 세기가 강하면 강할수록 단백질에 좀 더 많은 빛이 투입된다. 단백질에서 반사된 빛과 투과한 빛을 갖고 단백질 내부를 촬영하는데, 투입된 빛의 세기가 강하면 단백질 내부를 관찰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줄어든다. 김창범 박사는 "단백질 촬영에 3세대 가속기는 수시간이 걸렸지만, 4세대 가속기는 1초에 단백질 촬영을 끝낼 수 있다"고 말했다.

4세대 방사광가속기가 국내 과학계에 미칠 파장은 3세대 방사광가속기로 가늠해 볼 수 있다. 1500억원을 투입해 1994년 완공한 3세대 방사광가속기는 3500여편의 국제논문인용색인(SCI) 논문을 낳았다. 발기부전 치료제 비아그라의 작동 원리를 규명한 2003년 '네이처'의 표지 논문, DNA의 회전 방향을 규명한 2005년 네이처 표지 논문 등이 대표적이다. 지난 7일 김현정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팀은 3세대 가속기로 석유화학 공정의 촉매인 제올라이트의 최적 합성온도(550도)를 밝혀내 국제학술지 '네이처 머티리얼즈'에 발표했다.

김승환 포스텍 연구처장은 "4세대 방사광 가속기가 준공되면 한국 과학이 크게 도약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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