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수 피해 적은 '황토감자'… 무더위에도 껍질 단단 '대추방울토마토'… 아열대性 폭우·폭염… 新품종 개발로 뚫는다

지난 4일 충남 당진농협 해나루조합 작업장에선 동글동글한 햇감자들이 컨테이너 벨트에 가지런히 실려 있었다. 벨트에 장착된 자동 측정장치로 무게를 달아 알이 굵은 감자(160~220g)와 작은 감자(100~160g)를 나누는 작업이다.

조합의 장근순 단장이 감자 하나를 꺼내 든다. "보통 감자는 표면이 거무스름한데 우리 감자는 황토가 묻어 있어 불그스름해요. 흙을 털어내면 몸체에 우윳빛이 돌고요."

이 지역에서 생산하는 일명 '황토감자'는 국내 감자의 80%를 차지하는 '수미 품종' 감자를 지역 특성에 맞게 개량한 상품. 1990년 농협 직원이 일반 감자를 우연히 황토에 심었다가 황토에선 폭우에도 감자가 잘 자란다는 것을 발견했다. 물 빠짐이 좋아 침수 피해가 적기 때문이다. 황토에서 자란 감자는 저장 기간이 길어 최고 1년까지 저장할 수 있다.

황토감자는 3~4년 전부터 당진·송악 지역 대표 감자가 돼 현재 3000여 농가에서 연간 1만2000t을 생산하고 있다. 당진황토감자영농조합은 작년 특허청에 황토감자를 지리적 표시 대상으로 신청했다. 황토감자 명칭을 독점적으로 쓰기 위해서다. 농민 이상헌씨는 "황토는 몸속 노폐물을 배출시켜주는 원적외선이 게르마늄보다 3~4배 높아 건강에도 좋다"며 "황토감자가 특화상품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농업계에선 농작물 품종 개발이 한창이다. 황토감자처럼 주변 환경 특성에 맞춰 개량할 뿐 아니라 농업기술센터와 함께 신품종 보급과 개발에 나서는 곳도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온난화 등 기후 변화, 품종 개량 부추겨

충남 부여에선 재작년부터 비닐하우스에서 대추방울토마토를 특화작물로 키우고 있다. 부여기술센터가 2008년 개발한 품종을 지역 농가에 보급한 것. 일반 방울토마토보다 2배 이상 크고, 모양이 대추를 닮았다. 농민 임병재씨는 "한여름엔 폭염 때문에 보통 방울토마토는 껍질이 물러 터져버리는데, 대추방울토마토는 껍질이 단단해 무더위에도 끄떡없다"고 했다. 가격도 일반 방울토마토보다 10~20%가량 비싸다.

농촌이 특화상품 개발에 열을 올리는 데는 농가 소득 증대 외에 한반도 기후 변화라는 요인도 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지난 100년간(1912~2008년) 국내 6대 도시 평균 기온은 1.7도 올라갔다. 여름이 13~17일 늘어나면서 강수량이 19% 증가한 반면 겨울은 22~49일 줄었다. 기상청 관계자는 "현재 남해안 지역에 아열대 기후가 나타나고 있는데, 21세기 말에는 산악과 내륙지방을 제외한 중부 지방까지 확대될 수 있다"고 예측했다.

◇"연구비 투자, 품종 개발 시급"

기후 변동으로 생긴 농업 환경의 가장 큰 변화는 과일·작물 등의 주요 생산지가 북상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지구 온난화가 계속될 경우, 서늘한 기후에서 자라는 고랭지 채소는 국내에서 경작이 어려워질 가능성도 있다.

신종 병충해도 출현 중이다. '주홍날개꽃매미'는 원래 아열대 기후에 서식하지만, 최근 3~4년 전부터는 국내 농가에 피해를 끼친다. 한여름 아열대성 폭우, 폭염은 이미 현실이 됐다.

농촌진흥청 등에서는 기후 변화에 대응해 다양한 신품종을 개발하고 있다. 고온에도 잘 자라는 포도 '홍아람', 뜨거운 햇볕에도 색깔이 쉽게 벗겨지지 않는 사과 '아리수' 등이 그런 사례다. 폭우 피해가 덜한 '스마트 벼' 연구도 진행 중이다. 논이 침수되면 스스로 물 위로 빨리 웃자라 피해를 덜 입는 품종이다.

해외 선진국은 이 분야에서 우리보다 한발 앞서 있다. 몬산토 등 다국적 종자 기업은 기후변화와 관련된 유전자를 선점하기 위해 막대한 연구비를 투자하고 있다. 한국도 품종 개발을 위해 농림수산식품부가 신품종 육성사업인 '골든 시드(Golden Seed)'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으나, 아직 진척이 더디다. 농촌진흥청 나영은 기후변화팀장은 "국내에선 아직 품종 개량의 필요성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며 "기후 변화에 대비하기 위한 품종 개발이 시급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