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太陽光 '운명의 날' D-25

지난 5일 독일 태양광 업체 코너지(Conergy)가 파산했다. 1998년 창업한 코너지는 태양광 산업이 호황이던 2007년 매출 7억유로(1조300억원), 시가총액 22억유로(3조2400억원)를 기록하며 한때 세계 최대 태양광 업체였다.

그러나 이후로는 내리막길이었다. 코너지는 지난해 매출 4억7350만유로(7000억원)에 당기순손실 8300만유로(1220억원)를 기록했다. 태양광 업계에선 중국 업체들의 난립으로 인한 과잉 공급과 제품 가격 하락이 코너지 몰락의 원인이라고 말한다.

작년 9월 유럽의 25개 태양광 업체로 구성된 'EU 프로선 그룹'은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에 중국 업체들의 저가 수출을 지적하는 입장을 제출했다. 이들은 중국 태양광업체들의 태양광 패널 생산이 정부의 보조금 정책 덕분에 국내 소비의 20배를 넘었으며 세계 수요의 두 배 가까이에 달해 유럽 시장을 위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 중국산 태양광 패널은 유럽 시장의 80%를 장악하고 있다. 중국은 2011년에 210억유로(약 30조6444억원) 상당의 태양광 패널을 EU 지역에 수출했다. 작년 한 해 유럽에서 파산한 업체만 20여개에 이른다.

◇태양광, 중국· EU 무역분쟁 촉발

코너지 파산으로 태양광 업체들의 이목은 EU 본부가 있는 벨기에 브뤼셀로 쏠리고 있다. 업계에선 "다음 달 6일이 태양광 산업의 운명을 결정 짓는 날"이라고 말한다. 이날 EU는 중국산 태양광 제품에 대해 고율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할지를 결정한다. 고율 관세 부과가 결정되면 중국 업체들의 유럽 수출은 직격탄을 맞게 된다.

EU는 지난달 6일부터 중국산 태양광 제품에 대해 11.8%의 예비 반덤핑 관세를 부과한 상태다. 이 관세는 오는 8월 6일까지 적용된다.

만약 다음 달 6일까지 중국과 EU가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다음 날부터 EU는 중국산 태양광 제품에 대해 37.3%~67.9%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게 된다.

EU 조치에 맞서 중국도 무역 보복에 나섰다. 중국은 오는 20일 EU산 폴리실리콘(태양광 패널의 기초 원료)에 대한 반덤핑 관세 부과를 결정할 예정이다.

태양광 산업에서 촉발된 양측 간 분쟁은 다른 상품으로 번지면서 전면전 양상을 띠어가고 있다. EU는 태양광 패널 외에 중국산 이동통신 장비에 대해서도 반(反)보조금 관세를 부과할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다. EU 집행위원회는 중국 이동통신 장비업체 화웨이와 ZTE에 대해 반덤핑 및 반보조금 조사 착수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EU 통상당국은 중국 이동통신 장비업체들이 중국 정부와 금융기관으로부터 특혜를 받아 유럽 시장에서 경쟁하는 데 유리한 위치에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맞서 중국은 지난 1일 EU산 와인에 대한 반덤핑 및 반보조금 조사를 공식적으로 개시했다. EU 입장에서 중국은 와인의 최대 수출 대상국이다. 와인에 대한 반덤핑 조치가 현실화될 경우 재정 위기로 어려움을 겪는 EU 남부 국가들엔 큰 타격이 예상된다.

◇태양광 산업 지각 변동 오나

EU가 중국산 태양광 제품에 대해 고율의 반덤핑 관세 부과를 결정하면 전 세계 태양광 시장은 지각 변동을 맞게 된다. 2008년 이후 태양광 시장은 중국 업체들의 난립으로 인한 과잉 공급으로 폴리실리콘 가격이 급락하며 위기를 맞았기 때문이다. 중국 업체들이 반덤핑 관세 때문에 제품 가격을 올리면 적자에 허덕이던 업체들은 숨 쉴 틈이 생기는 것이다.

중국 업체들의 저가 공세에 대해 반덤핑 조치로 맞선 것은 EU가 처음은 아니다. 작년 10월 미국 상무부는 중국이 태양광 패널 제품을 생산 가격 이하로 공급한다며 최고 250%의 관세를 부과했다. 당시 전 세계 태양광 업계는 중국 업체들의 저가 공세가 사라져 태양광 시장 전체가 호전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이후로도 미국 업체들의 상황은 좋아지지 않았다. 중국 업체들이 대만·말레이시아 등을 통해 우회 수출을 계속하면서 태양광 제품 가격은 거의 오르지 않았다.

반면, 미국과 EU의 경우는 다르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미국의 반덤핑 관세 판정은 중국에서 생산한 셀(태양전지)에 한정됐지만, 이번 EU와 중국의 마찰은 모듈(패널)과 셀에 모두 부과되기 때문에 중국이 우회 수출을 하기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EU의 반덤핑 관세 부과가 확정되면 제일 큰 반사이익은 유럽 업체가 아니라 한국·일본 등 제3국 업체에 돌아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한화케미칼 주철범 상무는 "중국 업체들은 관세가 오른다 해도 독일 등 유럽 업체들보다 가격 경쟁력이 뛰어나다"며 "관세 부과로 줄어드는 중국 제품 판매 물량은 한국·일본 등의 업체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러나 EU가 중국과의 무역 전쟁을 각오하면서까지 고율의 관세를 매길지에 대해선 전망이 엇갈리고 있다. 태양광에서 시작된 무역 분쟁이 EU와 중국 간 전면전으로 번지자, 유럽 내에서조차 원만한 해결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 5월 하순 독일을 방문한 리커창(李克强) 총리와 만난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EU의 징벌적 관세 판정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중국과의 갈등이 독일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