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덩이 딱 붙이고 실험해" 비싼 의자 사주던 박사님, 세계 최고 해상도 현미경 개발

원자 세계를 볼 수 있는 나노 현미경이 있다면 어떤 효과를 볼 수 있을까. 우선 막대한 개발비를 투자한 반도체·LCD 신제품의 결함을 원자 단위까지 눈으로 검증할 수 있어 제품 효율을 크게 높일 수 있다. 선진국들이 최고 해상도의 나노 현미경 개발에 경쟁적으로 나서는 이유 중 하나도 경제적 효과 때문.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은 양자측정센터 여호기(呂皓基·44) 박사팀이 김용현 KAIST 나노과학기술대학원 교수와 공동으로 나노현미경인 열전(熱電) 현미경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고 14일 밝혔다. 나노 현미경에는 원자 현미경(AFM), 투과전자 현미경(TEM) 등이 있지만, 최고 해상도가 0.1㎚(나노미터·1㎚=10억분의 1m) 수준이다. 이번에 개발한 열전 현미경은 해상도가 0.01㎚ 정도여서, 기존 나노 현미경보다 해상도가 10배 좋다. 여 박사팀은 관련 성과를 이날 국제학술지 '네이처 머티리얼즈(nature materials)'에 발표했다.

열전 현미경에서 '열전'이란 말은 열을 전기로 바꾸는 기술을 말한다. 전자가 많이 모여 있으면 온도가 높고, 전자가 적으면 온도가 낮다. 여 박사팀은 온도 측정으로 원자 근처에 있는 전자 개수의 증감까지 보여줬다. 전자는 원자핵 바깥쪽에 있다. 전자를 통해 원자들의 경계선을 알아냄으로써 원자 하나하나를 볼 수 있게 된 것.

서울대 물리학과를 나와 미 오스틴소재 텍사스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여 박사는 2004년 이후 10년간 열전 현미경 개발에만 매달렸다. 미국·일본·프랑스 연구진도 열전 현미경 개발에 매달렸지만, 최초 개발자의 영예를 그가 차지한 것이다.

"본격적으로 열전 현미경 제작에 들어가면서 연구원에게 좋은 의자부터 사줬지요. 엉덩이 붙이고 실험 열심히 하려면 의자가 좋아야 하니까요." 열전 현미경 원천 기술 확보로 당장 2500억원대의 세계 원자 현미경 시장이 배 이상으로 확대될 것이라고 연구진은 전망했다. 이번에 개발한 열전 현미경은 기존의 원자 현미경에 회로 하나만을 덧붙이면 돼 원자 현미경 부가가치가 몇 배로 늘어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열전 현미경은 IT산업 경쟁력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 반도체·LCD 신제품이 지닌 원자 수준의 결함을 찾을 수 있기 때문. 그래핀(graphene·탄소 원자가 2차원 형태로 연결된 나노물질) 같은 신소재 품질을 확인하는 데에도 열전 현미경이 제격이다.

열을 전기로 바꾸는 열전 기술 개발에도 열전 현미경이 큰 역할을 할 전망이다. 예컨대 사이드와인더(Sidewinder) 같은 열추적 장치가 붙은 미사일에는 열전 기술이 중요하다. 사이드와인더가 엄청난 속도로 날아가면서 생기는 마찰열을 흡수하는 열전 장치가 미사일의 품질을 결정하는데, 이 열전 장치 개발에 열전 현미경이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 박사는 "미국 국립과학원도 열전 기술을 미래를 좌우할 22대 기술로 선정했다"며 "열전 기술이 자동차의 연비 제고, 우주선 성능 향상 등에도 모두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여 박사는 이번에 열전 기술의 세계적인 연구자로 도약했지만, 논문만으로는 해결하지 못하는 고민이 있다. 이번 논문의 공동 제1저자인 강동민 연구원은 병역특례 요원으로 기간이 끝나 연구소를 떠났다. 다른 공동 제1저자인 조상희 박사 역시 2년 만기의 계약직 연구원이어서 계약 만료로 현재는 무직 상태다. "계약 만료 이전에 열전 현미경 개발을 끝낼 수 있어서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이런 문제가 연구보다 더 어렵습니다."


☞열전(熱電) 현미경

원자 근처의 전자가 지닌 열을 측정해 원자와 전자 분포도를 보여주는 나노 현미경이다. 기존 나노 현미경보다 10배나 좋은 해상도로 반도체 신제품의 개발 기간을 줄일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