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항공사들, 곧 세계 하늘길 점령할 겁니다"

"20여년 전에는 미국 항공사들이, 최근까지는 유럽 항공사들이 '하늘길'을 주도했습니다. 이젠 아시아 항공사들이 중심에 설 것입니다."

북미·유럽 항공사들이 경영난으로 몸집을 줄이고 있지만, 중동 항공사들 사정은 정반대다. 지난 10일 방한한 티에리 안티노리(52) 에미레이트항공 최고고객책임자(CCO)는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경제가 성장하면서 '하늘길'의 중심도 아시아로 바뀌고 있다"고 했다.

프랑스 출신으로 에어프랑스, 독일 루프트한자 등 유럽 항공사에서 경영·마케팅을 담당했던 그는 2011년 에미레이트항공으로 자리를 옮겼다. 에미레이트항공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항공사 중 하나다. 취임 2년 만인 올해 6월, 에미레이트항공은 항공평가기관 스카이트랙스가 선정한 '2013 최고의 항공사'에 꼽혔다.

안티노리는 "연간 전 세계 항공기 탑승객 수가 29억명을 넘어섰다"며 "전 세계 누구나 사업과 여행을 위해 해외에 나갈 수 있는 시대가 됐다"고 했다. 프랑스 고등경제상업학교(ESSEC)를 졸업한 그는 1986년 에어프랑스에 입사했다. "프랑스 동부의 소도시(메츠)에서 나고 자라 해외에 나갈 기회가 적었죠. 다양한 국적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만나 이들을 연결하는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1980년대만 해도 연간 항공기 탑승객 수는 10억명이 채 되지 않았다. A380 같은 초대형 기종도 없었고, 비행 편수도 지금처럼 많지 않아 항공료도 상대적으로 비쌌다. 아시아·아프리카와 동유럽 공산권 등에는 정치·경제적 이유로 여행할 수 없는 지역도 많았다. 자연히 항공로는 유럽과 북미 중심으로 편성돼 있었다.

그는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전 세계 인구의 75%가 살고 있지만, 경제비중은 30% 수준"이라며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강조했다. 아시아·아프리카가 부상하면서 항공로의 중심지도 '대항해시대' 이전 실크로드 때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안티노리는 특히 한국과 중국의 성장에 주목한다고 했다.

에미레이트항공은 지난해 잠비아 루사카, 짐바브웨 하라레 등에 신규 취항했다. 아프리카 변두리인 이곳은 경제·관광 측면에서 각광받지 못하는 지역이었다. 그는 "새로운 길이 생기자 이 지역에 건설·자동차 산업 수요가 생겨났다"며 "한국을 비롯한 동북아 기업체들이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찾을 수 있게 됐다"고 했다.

따라서 아프리카 국가들이 항공사에 먼저 취항을 요청해 오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그는 "길이 열리면 경제·사회·문화적 교류가 일어난다. 당장 이익이 되지 않아도 세계 구석구석에 새 길을 열 것"이라고 했다. 에미레이트항공은 현재 77개국에 취항하고 있다(대한항공은 40개국이다).

한국 승무원에 대한 호평도 빼놓지 않았다. 현재 에미레이트항공에는 한국 승무원 500여명이 근무하고 있다. "팀워크에 강하고 예의가 바르지요. 뭣보다 승객의 입장을 이해할 줄 압니다." 지난 6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발생한 아시아나 여객기 사고에 대해서는 "안타까운 사고였지만, 항공사 대표가 나와 직접 고개 숙여 사과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