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속 200㎞ 바람 속에서 소음과 전쟁… 침묵의 소리까지 잡아낸다

1995년 현대자동차는 비상이 걸렸다. 글로벌 마케팅 기관인 J.D. 파워가 미국 소비자를 대상으로 IQS(초기품질조사, 구입 3개월 후 조사)와 VDS(내구품질조사, 구입 3년 후 조사)를 매길 때마다 자동차 회사 중 바닥권 순위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특히 주행 중 바람소리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는 신차 구입 소비자 수가 100명당 20~30명에 이르렀다. 현대차는 "바람소리 때문에 북미시장에서 퇴출되는 상황까지 올지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낄 정도였다.

그로부터 10여년 후 현대차에 대한 주행 중 바람소리 불만 건수는 일본 도요타와 엎치락뒤치락하며 최저치를 다투고 있다. 올해의 경우 현대차는 초기품질조사의 바람소리 부문에서 도요타에 간발의 차이(0.2점)로 뒤졌지만, 구입 3년 후 실시하는 내구품질조사에서는 1점 차이로 도요타를 눌렀다.

◇바람소리 해결 못하면 퇴출 각오

바람소리는 자동차의 품질 수준을 나타내는 주요 목록 중 하나다. 현대차 대약진의 비결은 소음진동연구소(NVH리서치랩)였다. 지난 12일 경기 화성시에 있는 현대기아차 연구개발본부(남양연구소) 공력시험동(Aerodynamic Test Building). 연구소 내 100여개 건물 중 가장 비싼 수백억원대의 설비가 들어서 있는 곳이다.

이곳에는 직경 8.4m의 대형 팬(fan, 선풍기)이 있다. 초특급 태풍이나 다름없는 시속 200㎞까지 센 바람을 일으켜서 콘서트홀 같은 공간에 놓여 있는 자동차에 보낸다. 고속주행 중일 때 차 속에서 소음을 느끼는지를 실험하는 곳이다.

대형 팬이 시속 100㎞ 이상의 바람을 일으키자 쏘나타 하이브리드 차량 안에서 '쏴' 하는 고속주행 특유의 소리가 들려왔다. 차 안에 있던 조문환 연구원은 자체 개발한 바람카메라(Acoustic Camera)를 들고 차 안을 구석구석 뒤져 소음원(源)을 찾기 시작했다. 바람카메라와 연결된 노트북 화면에는 선루프 덮개와 와이퍼 연결 지점에 바람소리 진원지를 나타내는 빨간색 점이 각각 표시됐다.

소음지를 알아냈다면 그 다음은 이 소음을 없애는 방안을 찾는 일이다. 그는 "부품 디자인을 바꾸거나 그것도 안 되면 그 주변을 섬유 재질의 차음재(遮音材), 흡음재(吸音材)로 감싸 덮는다"고 말했다. 차음재를 많이 덮으면 자동차가 무거워져 연비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최우선이 부품 디자인 변경이라는 얘기다.

소음 부위는 알아냈지만 그 원인을 찾지 못한다면? 소음진동연구소뿐 아니라 1만여 연구원이 일하는 연구소 전체에 비상이 걸린다. 당장 태스크포스가 결성돼 2만개 부품이 어우러진 자동차 부품 중에서 소음을 내는 원인을 찾아내야 한다. 이강덕 연구위원은 "문제를 해결할 때까지 새벽 2시쯤 퇴근하고 그날 아침 8시까지 출근하는 강행군이 이어진다"며 "소음원을 찾기 전까지 잠을 잘 수 없다는 한국인 특유의 집중력이 선발주자를 단기간 내 따라잡은 비결"이라고 말했다.

이 연구소에선 바람소리뿐 아니라 노면에서 일어나는 로드 노이즈(Road noise·노면 소음)도 줄인다. 만약 자갈밭을 주행한다면 자갈을 구르는 소리가 운전자에게 공해로 들리지 않도록 소음을 줄이는 것을 말한다. 차 안에 음악을 틀어놓는다면 각종 잡소리에 방해되지 않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현대차만의 개성을 담는 것이 숙제

이 연구소의 최근 과제는 현대·기아차만의 고유한 특성을 나타내는 소리의 개성을 담는 일이다. 예컨대 메르세데스-벤츠, BMW 같은 독일차의 경우 귀에 거슬리는 고주파대 소음을 차단하지만 저주파대 엔진 소리는 그대로 살리는 경우가 많다. 그런 엔진 소리에 열광하는 마니아층도 생겼다. 이 연구위원은 "정숙성에서 세계 수준에 올랐다면 이제 세부 소음 항목 간 조화를 통해 현대차만의 개성을 만들어내는 것이 우리가 한 단계 더 도약할 과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