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本이 찍은 문화재 사진 보고 카메라 들었죠"

"유물들이 하는 이야기를 마음으로 들어요. 석굴암 십일면 관음보살이 '나는 이쪽이 예뻐'라고 하는 말, 연화문 당간지주가 '아니, 그쪽이 아니지!'라고 외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죠."

검게 그은 피부에 등산복을 입고 나타난 사진작가 오세윤(50)씨는 "나는 꼴통"이라며 호방하게 웃었다. 자신이 찍은 '석굴암 십일면 관음보살' 사진 앞에서는 "이 사진을 찍을 땐 흡사 여인이 말을 거는 것 같았다"며 얼굴을 붉혔다. 오는 21일까지 서울 종로구 통의동 사진갤러리 류가헌에서 열리는 '신라를 찾아서' 전시장에서다.

오씨는 문화재 전문 사진작가다. 문화재청이나 국립박물관이 발간한 도록이나 연구서적에 실린 문화재와 유물 사진 대부분을 그가 촬영했다. 문화재에 빠져들게 된 것은 동국대 경주캠퍼스 국문과 재학 시절이다. 삼국유사를 읽으며 신라에 매료됐다. 1990년대 초, 경주의 옛 모습과 문화재를 기록한 사진 대부분이 일본인이 촬영한 것이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아 직접 카메라를 들었다. "안타깝지만 인정해야 해요. 우리 세대가 할 일은 지금의 경주, 지금의 문화재들을 그대로 찍어서 남기는 일이죠."

오씨가 촬영한 문화재 사진으로 채워진 컬러 도판·도록은 168권. 연구서적은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개인전은 이번이 처음이다. 신라 유물 사진 30점을 선보였다. '20여년간 활약해온 사진작가치고 개인전이 너무 늦은 것 아니냐'는 질문에 그가 태연하게 답했다. "돈이 많이 들잖아요. 먹고살아야 하는데…. 문화재 사진을 찍는다는 건 춥고 배고픈 일이거든요." 그래도 자부심이 가득했다. "문화재를 가지고 개인전을 연 사람은 제가 처음일걸요? 군대 간 아들이 전화를 걸어 '존경스럽다'고 하더라고요. 아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듣는 게 모든 아버지의 바람이지요(웃음)."

켜켜이 세월이 쌓인 문화재를 찍는 요령이 따로 있을까? 그는 "불상, 석조물 등 유물마다 특징이 있다"며 "경주 진평왕릉 인근의 연꽃무늬 당간지주는 신라의 역사가 끝났음에도 우뚝 서 있는 당간지주와 새로운 내일을 맞는 노을이 잘 어울릴 거라 생각해 시간을 맞춰 촬영했다"고 말했다. 가장 까다로운 피사체는 석굴암이었다. "2000년에 이르러서야 '아!'하고 무릎을 치게 됐지요. 마침내 석굴암의 소리를 듣게 된 겁니다. 득도하듯이 말이죠."

오씨는 인터뷰 내내 '경주가 좋다'고 했다. 고향은 경북 김천이지만, "경주는 내게 신앙과도 같은 곳"이라는 그는 "비를 막아주고, 바람을 가려주는 느티나무처럼 내게 큰 은혜를 베푼 땅"이라고 말했다. 가족도 모두 경주에 산다. "1000년 전에도 사람이 살았고, 지금도 사람이 사는 역사적 도시가 바로 경주입니다. 할머니가 손자, 손녀에게 옛이야기를 들려주듯 제게 끊임없이 과거 이야기를 들려주는 곳이죠." 이쯤 되니 문화재에 미쳐 사는 가장을 둔 식구들 생각이 궁금해졌다. "가족이요? 이젠 동화됐지요, 뭐. 부인이 도망가지 않은 걸 보니.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