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人] "은행 해킹했던 내가 금융인 된 건 鄭 총리 덕분"

'국내 1호 해커'가 한국 대표 금융그룹의 IT 분야 총책임자로 발탁됐다. KB금융지주 신임 최고정보관리책임자(CIO)로 임명된 김재열(43) 전무의 이야기다.

20년 전인 1993년, 그는 해커로 구속됐다. 청와대의 PC통신 ID를 도용, 은행 전산망에 접속해 휴면계좌 예치금을 자신의 계좌로 이체하려 한 혐의로 6개월간 구치소에 수감됐다 집행유예로 풀려났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국내 첫 해킹 범죄였다. 1988년 전남 순천고를 졸업하고 대학 입시에서 3번 떨어져 군대를 다녀온 뒤 유학을 준비, 미국 시카고 대학에서 입학 허가를 받은 상태였다. 범행 동기는 유학 자금 마련이었다.

당시 사건을 수사한 검사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3과장(부장검사)이던 정홍원 국무총리다. 그가 1994년 대우그룹 회장실에 입사, 세상을 다시 한 번 깜짝 놀라게 한 것도 IQ 140인 그의 능력을 아깝게 여긴 정 총리의 주선이 계기였다. 그는 비서실 인사팀과 기획팀에서 전산망 감사 등의 업무를 맡았다. 당시 그는 주변의 소개로 김종인 전 경제수석에게 컴퓨터를 가르쳤고, 김 전 수석과 친한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도 알게 되는 등 인맥을 넓혔다. 그는 "정홍원 총리가 제 인생의 멘토(스승)가 돼 주셨다"면서 "너무나도 큰 신세를 졌다"고 말했다.

1998년에는 공무원으로 변신했다. 민간 전문가로 기획예산위원회(기획예산처의 전신) 정부개혁실의 5급 공무원(사무관) 공채에 합격했다. 국유재산관리시스템 아이디어 등으로 기획예산처가 선정하는 '신지식 기획예산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기획예산처에서 3년간 근무한 뒤 그는 컨설팅 회사로 자리를 옮겼다.

2001년 미국계 컨설팅 회사인 딜로이트 투시에 입사, 2005년에는 회사에서 최연소 파트너(상무 이상 임원)가 됐다. 국민경제자문회의 자문위원, 금융허브추진위원회 위원 등도 맡아 실력과 인맥을 키웠다. 2007년에는 대주그룹 경영전략실장(부사장)으로 스카우트됐고, 2008년 국민은행연구소 소장으로 임명되면서 KB금융과 인연을 맺었다. 2010년부터 국민은행 녹색금융사업본부장으로 일하다 이번 인사에서 발탁됐다. 그는 "내가 뭘 하든 국내 해커 1호라는 호칭이 따라다니는데 젊은 시절의 업보라고 생각한다"라며 "해커 출신이라는 데 너무 관심을 갖지 않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