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人] 케네디부터 오바마까지… 백악관 기자실의 '퍼스트레이디(첫 여성 백악관 출입기자)'

50년간 미국 백악관을 출입해온 기자이자 칼럼니스트 헬렌 토머스(92)가 20일(현지 시각) 별세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보도했다. 사인(死因)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오랫동안 신장 투석을 받아왔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고인(故人)은 존 F. 케네디부터 버락 오바마까지 역대 미국 대통령 10명을 50여년간 근거리에서 취재해온 전설적 언론인이다. 항상 백악관 브리핑룸 맨 앞줄의 지정석에 앉아서 "감사합니다. 미스터 프레지던트(Mr. President)"라는 인사를 건네며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마무리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백악관 기자실의 퍼스트레이디'가 그의 별명이었다.

토머스는 1943년 UPI통신에 입사한 뒤 1960년 대선 당시 케네디 후보를 취재했다. 이듬해 케네디 대통령 취임과 더불어 백악관 취재를 시작했다. 백악관의 첫 여성 출입기자였다.

1972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방중(訪中) 당시 신문·통신사 여기자로는 유일하게 동행 취재했다. 1981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피격당했을 때는 사건 3주 만에 대통령을 직접 인터뷰하는 등 왕성한 취재력을 과시했다. 결혼도 1971년 라이벌 통신사 AP의 백악관 출입기자였던 더글러스 코널(1906~1982)과 했다. 당시 이들의 결혼을 가장 먼저 공표한 사람은 당시 영부인 팻 닉슨 여사였다고 AP는 전했다.

고인은 2006년 뉴욕타임스(NYT) 인터뷰에서 자신의 성격에 대해 "타협하지 않고 사과할 줄 모른다"고 설명했다. 역대 대통령은 고인의 집요한 질문에 꽤 고생했다고 WP는 전했다. 1983년 레이건 대통령에게는 그레나다 침공의 근거를 따졌고, 조지 H W 부시 대통령에게는 동유럽과 소련 붕괴 이후에도 방위비가 줄지 않는 이유를 물었다.

미국을 방문한 쿠바 지도자 카스트로는 미국과 쿠바 민주주의의 차이를 묻는 그의 질문에 "(쿠바 사람은) 헬렌 토머스의 질문에 답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고인은 "기자에게 무례한 질문이란 없다" "사랑받는 존재가 되고 싶다면 기자가 되지 마라" 같은 말을 남겼다고 NYT는 전했다.

고인은 2000년 허스트 신문 그룹으로 옮긴 뒤에도 칼럼니스트로 10년간 백악관을 더 출입했다. 레바논 이민자의 딸이었던 고인은 지난 2010년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을 떠나서 (예전에 살던) 폴란드나 독일로 돌아가야 한다"는 발언으로 논란이 일자 현역에서 은퇴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헬렌은 미국 언론계에서 여성에게 존재했던 장벽을 무너뜨리고 문을 열어젖힌 진정한 선구자였다"며 "그녀는 나 자신을 포함해 미국 대통령들이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도록 해줬다"고 추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