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나온 부장님처럼 늙는 건 싫다고요!

이들은 남자 셋만 모이면 술 마시던 '선배'들과는 다른 삶을 꿈꿨다. 퇴근하고 회사 정문을 나서자마자 헬스장부터 달려갔다. 사원증을 풀어놓고 아령을 잡았다. 닭 가슴살과 파프리카로 저녁을 때우고, 술 생각날 땐 생수를 벌컥벌컥 마셨다. 그렇게 버틴 6개월. 회사 동료와 어울려 삼겹살 한 번 마음껏 못 먹었고, 여자 친구마저 "같이 놀 시간도 없이 운동만 하는 남자는 못 견디겠다"며 떠나갔다. 하지만 이들은 "인생에서 가장 후회 없는 시간"이라고 말한다.

지난달 열린 '8회 쿨 가이 선발대회'에 뽑힌 27명. 삼성·LG·SK·GS· 등 대기업에 다니는 회사원과 한의사, 의학 전문 기자, 대학생들이 최종 선발자다. '쿨 가이 선발대회'는 자기소개서와 무대 퍼포먼스, 몸매 등을 보고 '지·덕·체(智·德·體)' 세 항목을 평가해 '멋진 남자'를 뽑는 대회다.

1차 예선에 응시했던 인원만 1480여명. 이 중 200여명이 현직 의사였고, 800여명이 대기업 회사원이나 연구원이었다. 이들은 왜 운동에 몰입하게 됐을까. 그리고 왜 굳이 대회에 지원했을까. 지난 18일 오후 8시 서울 강남구 청담동 한 피트니스센터에서 최종 선발자들을 만났다. 이들은 "아버지 세대와는 다르게 살고 싶어 운동을 시작했다"고 털어놓았다.

◇'삶의 균형'을 꿈꾸다

효성중공업 해외영업팀 함종훈(29)씨는 아버지를 '늘 늦게까지 일하고 술에 취해 퇴근하셨던 회사원이자 가장'으로 기억한다. "아버지를 존경했지만 전 다른 아빠가 되고 싶었어요. 회사 다니면서도 몸과 인생을 관리할 줄 아는 사람이요."

그는 아내가 첫 아이를 임신했을 무렵 '쿨 가이 선발대회'에 응시했다. 본선을 통과하고 나선 술을 딱 끊고 운동을 시작했다. 그는 "몸이 달라지는 걸 보면서 '내 삶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본선 무대에 올랐을 땐 관중을 향해 "아들에게 훗날 멋진 아빠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출전했다"고 말했다. 함씨는 "그 꿈의 첫 계단을 이제 막 오른 느낌"이라고 했다.

GS건설 플랜트IT에서 일하는 염동호(31)씨도 "회식 빠질 때면 눈치가 보였지만 목표를 생각하며 참았다. 진짜 성공은 몸과 마음을 모두 다스릴 수 있을 때 얻게 된다고 믿었다"고 말했다. TV를 볼 때도 아령 들고 근육운동을 했고, 닭 가슴살과 채소만 먹으며 주말을 버텼다. 그는 "워낙 운동에 몰입하다 보니 여자 친구와도 헤어져야 했지만, 그 과정에서 조직 생활과 내 삶을 조화시키는 법을 터득할 수 있었다. 후회는 없다"고 했다.

◇과시 넘어 성취로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 때문에 대회에 나온 이들도 많았다. 다우콘스에서 일하는 김주영(27)씨는 한때 108㎏까지 나갔지만 28㎏를 감량하고 무대에 서서 박수를 받은 경우다. 김씨는 "대학에 붙고, 취업하고 나면 목표를 잃는 경우가 많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검증된 대회에 나가 보여주고 인정받고 싶었다"고 말했다. "매일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10㎞씩 달렸다. 식단 조절을 하고, 주말이면 운동하면서 책을 읽었다. 내 몸을 잘 통제할 수 있다면 내 삶도 그렇게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연세대 체육교육학과 2학년인 김태일(24)씨는 "처음엔 박수받고 싶어 시작했지만 나중엔 나 자신을 이기고 싶어 달렸다"고 말했다.

대회가 끝나고도 최종 선발자들은 소위 '운동 번개'를 갖는다. 유한양행 약품사업본부에 다니는 정우영(31)씨는 "술 마시고 진탕 취하는 대신 함께 모여 윗몸일으키기 하고 운동한다. 서로 읽은 책 목록을 공유하기도 한다. 이것 자체가 내겐 새로운 성취"라고 말했다.

대회를 주관한 '멘즈헬스' 백승관 편집장은 "예전 남자들은 조직 내에서 성공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지만, 요즘 젊은 세대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도 중요하게 여긴다. 몸짱 대회에 소위 사회적으로 성공한 인텔리가 몰리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