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에도 특근·잔업… 造船業 수주 살아났다

사천만(灣)을 끼고 있는 경남 사천시 사남면의 중견 조선소 'SPP조선'. 지난 19일 사천대교를 바라보며 조선소로 들어섰다. 하늘 높이 솟은 '골리앗 크레인' 3기가 눈에 들어왔다. 최대 600t을 들어 올릴 수 있는 골리앗 크레인 1기에서 '삑삑삑' 경고음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머리를 들어 위를 보니 150t 무게의 철제 구조물이 공중에서 느린 속도로 옮겨지고 있었다.

골리앗 크레인 2대가 솟아 있는 육상 도크(선박 건조장). 복잡한 파이프 라인이 설치된 선박을 작업자가 쉴새 없이 드나들고 있다. 휘발유·경유·나프타 등 다양한 석유화학 제품을 저장하는 PC선이었다. 석유화학 제품 운송 과정에서 부식을 막기 위해 탱크를 3중으로 특수 도장(塗裝) 처리 중이었다.

SPP조선 직원들은 요즘 신바람이 나 있다. "지난해의 수주 가뭄이 언제적 일이었느냐" 기억을 더듬을 정도로 최근엔 일감이 밀려들고 있기 때문이다. SPP조선은 5만t급 안팎의 MR PC선(중형 석유화학제품운반선) 건조 분야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조선소로 평가받는다.

◇"그 가격엔 수주 못 해"… 찾아온 선주 돌려보내기도

SPP조선은 지난해부터 중형 PC선만 수주하고 있다. 지난해 수주량은 40척. 올 상반기에만 30척을 수주, 2015년까지 일감을 일찌감치 확보해 놓았다. 중형 PC선 분야의 다른 강자인 현대미포조선도 상황이 비슷하다. 지난해엔 22척을 수주하는 데 그쳤지만, 올해는 벌써 40척 이상을 수주했다. 한국 조선업계의 PC선 시장 점유율은 70%를 넘는다. 발주가 늘면서 중형 PC선 가격도 확실한 상승세로 돌아섰다. 지난해 말 1척당 3000만달러까지 떨어졌던 5만t급 PC선 선가(船價)는 현재 10% 이상 오른 3400만달러대까지 상승한 상태다.

최근 들어선 "그런 싼 가격엔 발주하려면 일본이나 중국 조선소로 가라"며 저가 수주를 요구하는 선주를 돌려보내는 경우도 늘고 있다. 수주 가뭄 상황에서 선주에게 넘어갔던 가격 결정 주도권이 다시 조선소로 넘어오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곽한정 SPP조선 사장은 "올 하반기에는 적극적인 영업 활동을 자제할 방침"이라면서 "선가가 올 연말쯤 3500만달러 이상으로 올라갈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느긋하게 기다릴 생각"이라고 말했다.

◇해운업 공급 과잉에도 컨테이너선도 회복세 완연

PC선이 상선 시장 회복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이후 컨테이너선 발주도 완연한 회복 조짐이다. 컨테이너선은 극심한 불황을 겪고 있는 해운 업황과 상관없이 발주가 크게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올 들어 세계 컨테이너선 발주량은 90척으로, 이미 지난해 발주량 74척을 넘어섰다. 특히 8000TEU (1TEU는 6m 컨테이너 1개를 의미)급 이상의 초대형 컨테이너선의 발주량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올 상반기 초대형 컨테이너선의 발주량은 53척. 이미 지난해 발주량(21척)보다 2배 이상 많다. 척당 2억달러가 넘는 고부가 LNG선(액화천연가스운반선)도 미국의 셰일가스 개발 열풍으로 발주량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셰일가스를 정제해 나오는 LNG를 최대 수요처인 아시아로 운송하기 위해선 LNG선을 새로 발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고유가로 노후 선박 교체 수요 급증

PC선·컨테이너선·LNG선을 시작으로 상선 시장이 회복 조짐을 보이는 것은 고유가에 따른 친환경 선박으로 교체하려는 수요가 늘었기 때문이다. 배럴당 100달러대에 머물던 선박 연료(벙커C유) 가격은 최근 600달러대로 치솟았다. 연료 소모량이 많은 노후 선박을 폐선하고 친환경 선박을 운영해야 할 필요성이 커진 것이다.

실제 현재 건조 중인 선박은 4~5년 전에 건조된 선박보다 연비가 최고 50% 좋아진 것으로 평가받는다. SPP조선의 주력 선종인 5만t급 PC선만 하더라도, 5년 전엔 하루 연료 소모량이 30여t이었지만 지금은 20여t에 불과하다. 연간 운항 일수를 250일 정도로 생각한다면, 100만달러 이상을 줄일 수 있는 셈이다.

여기에 2015년 이후 해운 시장이 살아날 것이라는 전망도 확산되고 있다. 보통 선박 건조 기간이 2년 정도 걸리기 때문에 2015년에 선박을 인도받으려면 지금 발주해야 한다.

SPP조선 곽한정 사장은 “최근 만난 대부분 선주가 지난해 하반기를 상선 시장 바닥으로 판단하고 있었다”면서 “상선 시장이 회복되면 고부가 선박 건조에 강한 한국 조선업계가 직접 수혜를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반기 상선 수주는 증가… 실적은 더 나빠질 듯"

전문가들은 올 하반기에도 상선 부문의 강세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세계 최대 경제 지역인 미국 경제가 살아나고 있고 고연비 선박 교체 수요가 꾸준히 늘어날 전망이기 때문이다. 유럽 지역 경제가 서서히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점도 긍정적 신호다. 선박금융 시장 활성화로 그동안 움츠리고 있던 유럽 선사의 발주가 급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양종서 수출입은행 선임연구위원은 “올해 전체적으로 한국 조선업계의 수주량은 전년에 비해 52% 늘어나고 수주액은 17% 늘어난 350억달러를 기록할 전망”이라면서 “대형 컨테이너선 같은 고연비 선박에 대한 수요가 얼마나 늘어나느냐가 최대 관건”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상선 시장이 회복되더라도 국내 조선업계의 하반기 실적과 수출은 그다지 좋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올 하반기 실적엔 조선업 침체가 본격화한 2011년에 저가 수주한 물량이 반영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