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과 "언니""동생"할 정도… 의류판매원들 代母

지난해 12월 정년퇴직을 2주 앞둔 장영숙(56) 신세계 인터내셔날 부장에게 인사팀에서 "면담하자"는 연락이 왔다. 장 부장은 '퇴직 절차를 말해 주려나 보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인사팀에서는 "직급, 월급을 지금처럼 유지해 줄 테니 계속 일했으면 좋겠다"고 요청했다. 장 부장은 "퇴직하면 여행 가려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다 취소하고 계속 일하게 됐다"고 말했다.

장 부장은 신세계그룹에서 처음으로 정년퇴직(55세 이상) 후 원래 조건 그대로 재취업시킨 사람이다. 그는 고졸 학력으로 20년 넘게 의류 매장 판매직으로 근무하며 경력을 쌓아 관리직으로 올라온 유일한 신세계맨이었다.

지난 18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 신세계 인터내셔날 사무실에서 만난 장 부장은 판매를 담당하는 센존 브랜드의 분홍색 니트를 입고 있었다. 장 부장은 "판매하는 브랜드 옷을 입는 것이 판매 사원의 기본"이라고 말했다.

매장 판매직은 까다로운 손님들과 실적에 대한 부담감으로 이직이 잦다. 하지만 장 부장의 '센존' 팀원 40명은 대부분 5년 이상 근무하고 있다. 10년 이상도 여럿 된다. 비결은 '팀워크'와 '칭찬'. 장 부장은 "일이 힘들어 그만두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 인간관계가 힘들어 그만두는 것"이라며 "팀워크를 최우선으로 두고 팀원들의 기분을 파악해 여성 특유의 감성으로 다독여주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어느 날 한 여직원이 기분 나쁜 일이 있었는지 표정이 좋지 않더라고요. 옷을 포장하는 손길도 거칠고. 그래서 제가 '오늘 너 화장 잘 됐다. 피부가 아주 좋아'라고 했죠. 그랬더니 금방 얼굴이 환해지더라고요."

그가 직원들 감정을 세심하게 배려하는 이유는 그것이 판매 실적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센존은 올 상반기 신세계 인터내셔날이 취급하는 브랜드 가운데 매출이 가장 많아 회사에서 우수 브랜드상을 받았다.

장 부장은 디자이너 이상봉, 앙드레김이 나온 국제복장학원 출신이다. 1982년 마담포라 보조 디자이너로 직장 생활을 출발했다가 나중에 마담포라 캐주얼 꼼베땅의 판매 직원으로 전환했다. "디자이너로 일하다 매장 판매 파견을 갔어요. 사람들이 내가 권하는 대로 물건을 사니까 너무 기분이 좋았죠." 디자이너 경력은 판매에 큰 도움이 됐다. 손님들에게 옷을 권할 때 그 자리에서 핀을 들고 옷을 재단하며 보여주는 식이었다. 신세계 인터내셔날에는 1993년 10월 그룹 경력사원 공채를 통해 들어왔다.

장 부장은 "언니" "동생" 하며 지내는 고객도 적지 않다. 옷을 팔기에 앞서 손님들과 여성 특유의 '대화'를 통해 먼저 친해졌기 때문이다. "옷을 잘 파는 판매 직원이 되기보다 마음을 터놓고 믿고 얘기할 수 있는 친구가 되려고 노력했어요. 옷을 권할 때도 매출보다는 '(친구 같은) 내 고객이 아름다워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했고요. 그랬더니 마음이 통했나 보더라고요. IMF 외환 위기 등으로 실적이 안 좋을 때면 오히려 고객들이 자기 친구들을 데리고 절 살려야 한다며 매장을 방문해 한 손 가득 사가곤 했지요."

특히 1996년 갤러리아백화점으로 파견을 나가 에스까다 판매직으로 일할 때 맺은 고객과는 아직까지 연락을 주고받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500여명의 고객 카드를 만들어 신상 명세와 좋아하는 색, 취향, 취미 등을 적어놓고 관리했어요. 새 옷이 들어오면 손님들 스타일로 코디를 해놓고 전화를 하기도 했죠." 자연히 매출도 따라왔다. 1999년 그는 독일 에스까다 본사에서 전 세계 8명의 판매 사원에게만 주는 '최우수 숍마스터'상을 받았다.

장 부장은 현재 신세계 인터내셔날 판매 사원 400명의 '대모' 역할을 하고 있다. 교육도 맡고 있다. 판매 직원은 스트레스가 많은 '감정 노동자'다. 장 부장은 "스트레스는 내가 일을 완벽하게 하지 못할 때 생기는 것"이라며 "주변 사람들이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일이 없도록 사전에 일을 철저하게 해서 그런 빌미를 없애려고 한다"고 말했다.